엄마가 낮에 다녀가셨다.
일년 전 오늘, 동생이 수술 끝나고 퇴원했던 날이란다.
나는 잊고 사는데, 엄마는 동생 생각이 났는지 연락도 없이 집으로 오셨다.
저녁을 드시고 가시라고 해도 기어이 아버지 저녁 챙겨드려야 한다고 낮에만 서너시간 계시다가 가셨다. 엄마의 흰 머리가 마음이 아팠다.
이사를 하면서 시댁에서 아주 오래된 전축을 옮겨왔다.
십년 넘게 듣지 않아 거의 고장난 것 같은 전축을 가져와 먼지를 털어내고 AS 기사를 부르니, 요즘 이런 전축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스피커도 크고, 전축도 얼마나 큰 지 서재 한 쪽 벽을 떡 차지하고 앉았다.
시아버님 퇴직 기념으로 몇백만원 주고 산 전축이라 그런지, 옛날 전축임에도 CD를 넣을 수도 있다.
저녁을 먹고 남편이 켜 둔 이미자 LP 레코드를 듣고 있으니 70년대로 돌아간 듯 하다. 엄마가 이미자 노래 좋아하시는데, 낮에 이 레코드를 들려 드리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글샘 님의 법정 스님 관련 페이퍼를 보다가, 문득 오래되고 낡았으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도 물건도 오래되고 낡은 것은 가볍게 여기고 폐물처럼 생각하는 세상이지만, 부모님이 살아계시고 법정 스님처럼 나이 많은 스님이 계시고, 오래된 레코드가 남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싶다.
용돈을 은행으로 송금하지 않고 일부러 드리러 간다. 용돈도 드리고 매 달 한 번씩 부모님 드라이브 시켜 드리고 맛있는 음식 대접하는 것으로 효도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시어머니도 친정 부모님도 한 해 한 해 늙어 가시는 것을 보니, 우리 걱정 하느라 저렇게 늙으셨나 싶어, 우리가 드리는 그 모든 것이 부모님이 베풀어주신 은혜의 십만 분의 일도 되지 못하다는 것을 알겠다.
부모님을 등에 업고 수미산을 수천 생을 오르내려도 부모의 은혜를 갚기 어렵다고 한다.
태어나면 누구나 늙어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늙어가고, 낡아간다는 것은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고 아끼라는 삶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늙고 낡아서 힘 빠지고 제 구실을 못할 때,더욱 더 소중히 여겨서 제 생을 다할 때까지 거두는 것이 우리의 의무가 아닐까 싶다.
"노인문제"라는 말이 그래서 나는 참 싫다.
어째서 늙어가는 것이 문제란 말인가?
그렇게 늙기까지, 지금 이 삶을 이룩해 놓은 공이 누구에게 있는지 생각해 볼 문제다.
엄마가 다녀가시고 이미자 노래를 듣다보니 늙어가는 것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느끼게 된다.
법정 스님도, 시어머니도, 친정 부모님도 오래오래 사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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