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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휑덩그레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꾹새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거운 밤에는
이 세상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 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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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20-03-08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고 박경리 님의 글이군요. 유고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 홀가분하다 책은 저도 읽고 리뷰도 남겼던 것 같아요. 지금 저는 기억찾기 중... 혜덕화 님 고마워요^^
 

 마음 수련이 우리가 삶을 온전히 경험하지 못하게 막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마음 수련은 우리의 반응이 좀 더 온화해지도록 도와줍니다. 이것은 우리를 지루한 존재로 만드는 조리법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잠시 생각해본다면 거친 바다에서 이 방향 저 방향으로 흔들리는 작은 배 같은 마음을 가지는 것이 매우 만족스러운 상태는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방 불빛이 한 순간에는 너무 밝아서 무엇인가를 좀처럼 볼 수 없고, 그 다음 순간에는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볼 수 없다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주변 물체를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온화하고 일정한 빛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게 되면 우리는 일어나는 사건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것을 더 잘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2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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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너무나 많은 폭력 속에 살고 있고, 그 폭력에 의지하여 살기까지 한다. 긴급한 이유도 없이 강의 물줄기를 바꿔 시메트를 처바르고, 수수만년 세월이 만든 바닷가의 아름다운 바위를 한 시절의 이득을 위해 깨부수는 것이 폭력임은 말할 것도 없지만, 고속도로를 160킬로미터의 속도로 달리는 것도 폭력이고, 복잡한 거리에서 꼬리물기를 하는 것도 폭력이다. 저 높은 크레인 위에 한 인간을 1년이 다 되도록 세워둔 것이나, 그 일에 항의하는 사람을 감옥에 가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아이들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면서도 너는 앞자리에 서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폭력이다. 의심스러운 것을 믿으라고 말하는 것도 폭력이며, 세상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살아가는 것도 따지고 보면 폭력이다.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폭력이 폭력인 것을 깨닫고, 깨닫게 하는 것이 학교 폭력에 대한 지속적인 처방이다.(2012)

                                       페이지 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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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ween stimulus and response there is a space.

And in that space lies our power and freedom.

 

-서광스님 법문 중에서 인용된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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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과 양은 기가 달라서 그윽함과 드러남이 같지 않다. 물형은 어떤 것은 볼 수 없는 것이 있고 시력이 혹은 미치지 못하는 곳이 있다. 

 닭의 눈은 낮에는 밝고 밤에는 어두우며, 올빼미의 눈은 밤에는 밝고 낮에는 어둡다. 이것은 보는 것이 서로 같지 않은 바이다. 

 새는 공중을 날거나 물에 떠다닐 수 있으며 짐승은 땅 위를 달린다. 물고기는 물 속에 잠기고 새와 짐승은 육지에 산다. 이것은 사는 곳이 서로 다른 바이다. 더군다나 기가 다르고 품수가 달라서 맑고 탁함이 유사하지 않은 것은 理로써 알아낼 수는 있으나 情으로 찾을 수는 없다. 

깬 사람은 꿈 속의 물건을 볼 수 없고, 꿈 속의 사람은 깬 때의 물건을 볼 수 없다. 자신의 혼백도 서로 닿지 못하는 것이 있는데, 하물며 범상한 정식으로 능히 우주의 미묘한 理氣의 이치를 다 알 수 있겠는가. 

                                                                              술몽쇄언 177쪽  

품수:타고난 천품  

술몽쇄언을 다시 읽다 리뷰 대신 한 구절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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