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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97
오스카 와일드 지음, 임종기 옮김 / 문예출판사 / 2011년 12월
평점 :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란 작품은 아주 유명한 소설이다. 이번에 처음 읽었던 나라도, 그 소설에서 나오는 줄거리는 이미 많이 알려진 내용이다. 어느 사람이 세월이 흘러도 나이를 먹지 않고, 대신 그의 나이를 초상화가 대신 늙어간다는 것이다. 인간이란 영원히 살 수 없는 존재이다. 영원성을 가질 수 없기에 그 자신의 아름다움을 계속 원하는 것이다. 흔히들 나이 먹은 어르신 혹은 어르신이 아니라도 주변에 보이는 아직까지 늙지 않은 어른들도 가끔 이런 말을 한다.
내가 어릴 적에 말이야, 옛날에 내가 좀 이랬는데 말이야. 물론 그런 말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말을 그들은 왜 하는 것인가? 가끔 내가 종종 이해하기 싫은 부류가 70년대 이야기를 하는 부류다. 그 당시의 현실적 조건과 상황은 분명 지금과 다르다. 그런데 그 상황적 배경으로 현실을 바라보는 이들을 보면 어리석기 짝이 없다. 만일 그들에게 70년대 딱 마치 나이가 80 정도의 어르신이 조선왕조 시대의 사대부로서의 자질을 이야기하면 그들의 반응은 어떨 것인가?
인간이란 늘 자기가 보고 듣고 자라온 환경 속에서 모든 것을 판단한다. 어차피 개인이 세계일주를 하더라도 그것은 자신의 경제적, 시간적, 문화적 조건이 가능하기 때문에 여행을 한 것이지 그 자신 자체가 하나의 기준점은 아니다. 기준점의 가치에서 보편성을 말하기란 어렵다. 단지 보편성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은 언제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늙어가는 점이고, 어느 일정 시간이 되면 죽는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죽음의 세계는 어쩔 수 없더라도, 늙어가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인간은 지금 당장 죽는다는 생각보단 지금 당장 내 모습에 신경을 기울인다. 내 외모가 어떻게 되는지 내 의상이 어떻게 되는지, 오늘 가방을 무엇을 들고 가고, 구두는 무엇을 신을지 말이다. 인간의 외적인 아름다움은 결국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늙고 병드는 자신에게 무한한 아쉬움을 느낀다.
TV를 잘 보지 않은 내가 어느 날 저녁시간에 어느 방송을 보았다. 화장품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춘 사람인데, 그 사람이 말하긴 모든 여성의 이상적인 나이는 24세라고 했다. 여성의 화장은 항상 24살처럼 보이려 하는 것이다. 아직 나이가 어린 소녀들은 성인여성의 성숙함을 추구하고, 25살 이후의 여성은 젊고 예쁜 모습을 찾기 위해 화장을 한다. 24세라는 기준은 여자가 아마 가장 외모가 절정에 이르고, 신체적으로 성숙되었으며, 사회적으로 대학을 졸업하여 취직을 하는 나이다.
화장의 목적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조건에서도 완벽한 시점을 노릴 수 있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며, 얼굴의 윤기가 사라지고 주름살이 늘어가며 예전에 늘 바라보던 미모는 사라진다. 인간의 죽음보다 무서운 게 늙어가는 이유는 자신의 모습을 늘 거울로 통해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기 때문이다. 젊고 아름다운 모습, 흔히들 청춘이란 이름을 그리워하는 것과 같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만든 오스카 와일드는 그런 유미주의적인 요소를 작품에 반영했다.
소설을 읽다보면 유미주의적 요소가 잘 보이는 게 일본의 공예품들이 종종 등장하는 점이다. 일본의 유미주의적 요소는 가장 아름다울 때 사라지는 것이다. 일본에서 자주 등장하는 행사에서 불꽃놀이가 매우 중요하다. 불꽃이 공중으로 올라 일정높이에 다다르면, 불꽃의 화약이 터지면서 아름다운 불꽃을 연출한다. 하지만 불꽃이 보이는 것은 불꽃이 사라지면서부터다. 일본인이 좋아하는 벚꽃, 흔히 사쿠라라고 불리는 이 꽃잎들은 일본의 입학시절이 다가오는 4월부터 흩날리기 시작한다.
벚꽃이 상쾌하고 시원한 봄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벚나무 꽃잎들은 마치 하양 눈처럼 퍼져 흩날린다. 일본인들은 벚나무 아래 벚꽃이 떨어져 흩날리는 것을 구경하면서 정취를 맛을 본다. 가장 아름다울 때가 바로 사라지는 것, 어떻게 보면 인간에게 가장 아름다운 시기는 청춘이 머무는 자리다. 10대 후반에 20대 초반은 인간에게 가장 열정이 넘치고 아름다운 시기다. 세상의 때도 아직까지 묻지 않았음에도 어른의 매력까지 담고 있다. 육체적으로 가장 빛나는 시기인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성인남성들은 아름다운 소년들을 자신의 애인으로 삼았다. 그리고 플라톤의 <향연>을 읽으면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에서 가장 아름다운 남자 중에 하나였다. 알키비아데스는 플라톤의 스승인 소크라테스를 흠모하였으며, 그의 애인이 되기를 자청했다. 알키비아데스가 가장 아름다움을 뽐낼 때가 바로 20대 청년이었던 시기다.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화가 바질이 가장 좋아했던 도리언의 나이가 20대 초반이었을 때이다. 도리언의 모습은 너무 아름답고, 빛이 났으며 세상 그 모든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우아함이 숨어 있었다.
도리언은 바질의 친구 헨리 경을 만나고, 헨리 경의 댄디한 모습과 재치는 넘치는 비관적인 말투를 듣고, 그에게 빠진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진정한 인생이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라 듣는다. 지금은 젊고 아름다워도 언젠가는 주름지고 늙으며 머리숱도 빠져 흉측한 모습이 될 것이란 공포감으로 괴로워한다. 이때 바질의 초상화를 두고, 자신의 모습이 영원히 멈추었으면 좋겠다고 여기고, 결국 그것은 현실화되었으며, 도리언은 늙지 않은 영원한 꽃미남이 되었다.
도리언의 고민은 사라진 것처럼 보이나,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그것은 자신의 아름다움 모습에 자신의 미적 감각에 어울리지 않으면 거부하게 된 것이다. 아름다운 연극인 소녀 시빌에게 사랑을 처음 느꼈지만, 어느새 그녀를 거부하게 된다. 그녀는 여태까지 연극인으로 살아왔다. 자신의 인생에 주인공이지 못한 그녀는 오로지 연극 안에서만 비극의 히로인이 되었다. 그러나 도리언의 만날 후 그녀는 자신의 인생이 도리언에게 모든 것이라는 망상에 빠져, 그녀가 죽기 전날 연극을 망쳐버린다.
도리언은 그런 시빌에게 실망하여 시빌에게 이별을 고한다. 시빌의 자살로 도리언은 죄책감을 느껴야 하나, 오히려 그러지 못하게 되었다. 대신 도리언의 죄를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이 대신 받아들인다. 얼굴 입가 주변에 교모하고 잔인한 미소는 그의 오만과 죄를 그대로 담아내었다. 초상화의 변신과 도리언의 부동은 도리언 스스로에게 쾌락과 지적인 열망으로 가득 차게 만들었다. 어느 주제에 대해 세상 모든 것을 입수하고, 어떤 학문에 대해 깊이 파며, 그런 과정에서 수많은 인간을 만난다.
문제는 도리언이 만난 자들은 모두 인생이 잘못된 길로 빠진 것이다. 누구는 파산하고 누구는 자살하고, 어떤 여자는 부두가의 창녀로 살아간다. 도리언의 피할 수 없는 매력은 쾌락과 아름다운 감각을 주지만, 그것은 지울 수 없는 치명타가 된 것이다. 도리언이 저지른 탐욕과 향락의 죄악은 처음에 자신과 세상의 분리되었다는 오만에 빠지나, 점차 자신의 뒤를 쫓아오는 두려움과 죄책감은 그를 괴롭게 만들었다. 누가 자신의 초상을 보면 어떻게 될 것인가?
아무도 올라갈 수 없는 다락방, 그곳의 열쇠는 도리언만 가지고 있다. 그 방은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가 자신에게 준 방이나, 외할아버지는 도리언의 아버지를 미워했고, 도리언의 아버지를 어느 청부인의 고용하여 대결시켜 죽게 만든 인물이다. 도리언에게 외할아버지란 잊고 싶은 과거이고, 그 과거를 만든 외할아버지는 거부의 귀족이었기 때문에 유일한 혈손인 자신에게 유산과 명예가 돌아갔다. 도리언의 외모는 어머니로부터 시작하여 어머니의 조상에게 이어받은 유산이다.
아름다운 외모는 가졌지만, 외적인 미가 변하지 않을수록 초상화의 표정은 마치 괴물처럼 변해갔다. 손 주변에 묻은 자주색, 마치 피가 스며든 것처럼 도리언의 어두운 모습을 내비추었다. 도리언의 초상화가 도리언의 어린 시절에 머문 방에 있는 이유는 그곳은 도리언이 그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공간이었다. 자신의 어두운 기억, 슬픈 과거, 감추고 싶은 비밀이 바로 옥상방에 있었던 것이다. 겉으로 화려하고 빛나 보이나, 가려진 모습 뒤에는 잔인하고 어두운 악취가 숨겨져 있었다.
그런 가운데 도리언은 점차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으로 마지막 장면에는 최악의 선택을 결정한다. 마지막 모습은 추하게 변해버린 도리언의 시체와 아름다운 도리언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만이 남았다. 진정 아름다운 것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오히려 존재하지 않기에 우리는 그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자신의 인간적인 타락에 다른 자의 눈을 속여도 자신의 불안은 속일 수 없다. 아름다운 모습은 한 때이나, 아름다운 삶은 지속적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설사 지금 당장 사라져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