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농부 바보 노무현
김정호 지음 / 생각의길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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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내내 반가운 얼굴들이 생각났다. 집안일로 몇 년 간 봉하마을에 봉사활동을 가지 못했지만, 당시 같이 논밭에서 제초를 뽑고, 공터의 잡초를 베며, 장군차도 같이 심었던 기억이 난다. 그 기억을 떠오르게 해준 서명은 <바보농부 바보노무현>이다. 책의 저자 김정호는 노무현대통령의 비서관이었고, 퇴임 후에는 같이 봉하마을에 넘어온 사람이다. 김해 진영읍 봉하마을은 상당히 작은 마을이고, 주변을 보면 낮은 산과 들판의 벼만 보이는 곳이다. 그런 곳에 대통령은 자신의 고향이라는 이유만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라 봉하마을로 돌아왔다. 김정호 비서관만 아니라 김경수 비서관 역시 그렇다. 김경수 비서관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지금은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었지만, 아내와 자녀를 이끌고 봉하마을로 내려와 노무현대통령 옆에 있었고, 노무현대통령이 그 육중한 육체에서 영혼이 분리된 이후에도 봉하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원봉사 하러 봉하마을을 찾아오면, 김경수 비서관은 찾아와 인사도 나누고 같이 식사도 하고 했다.

 

김경수 비서관을 보면 공부를 잘 했고, 안경을 낀 얼굴이 마치 샌님처럼 생긴 반면 김정호 비서관을 처음 봤을 때, 도회지에 나가 열심히 공부하고 일한 후 마지막 여생을 귀향한 농부처럼 생겼다. 옷도 편하고, 머리도 그냥 적당히 하고 다니고, 말투 역시 부드럽기보다 다소 쉰 목소리로 사투리도 적당히 섞었다. 그는 책에서 소개한 것처럼 제주도 옆에 있는 추자도가 고향이고, 대학은 부산대학교를 나왔다. 그러나 중간에 생략된 게 있지만, 고등학교는 영도에 있는 부산남고등학교를 나왔다.

 

영도가 섬이고, 제주도 옆 추자도 역시 섬이다. 섬마을 소년이 지금은 농부가 되어 벼를 베고 정미소에서 쌀을 도청한다. 내가 처음 봤을 때가 아마 20115월이었을 것이다. 2011523일은 노무현대통령이 서거한지 3년이 되는 날이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오면 준비할 게 많다. 내가 가서 한 것은 그 전에 수고한 사람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더위와 햇빛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찾아오면서 낫을 들고 구릉지에 있는 잡초를 베고, 제초기로 공터를 정비하고, 장군차를 심기 위해 구릉지를 오고가고 했다.

 

경남 김해가 부산하고 가까이 있지만, 사실 내가 영도에 살고, 그것도 영도도 태종대 입구 쪽에 살다보니 상당히 멀었다. 아침에 버스를 타고 김해경전철을 환승 후 다시 김해시내버스를 타고 진영역에 가서 마을버스를 타면 총 4번의 버스 지하철을 탔다. 아침 7시 반에 나와 아무리 빨리 들어가도 10시 반 전에 들어가기 힘들었다. 그나마 나갈 때 차를 가진 분에게 신세지고 지하철역에 가면 다행이다. 정말 쉽지 않은 먼 발길이었다. 하지만 무척 보람은 있었다. 책을 보니 나보다 더 많이 오래 활동하신 분들의 아이디가 나왔다.

 

오랜만에 보는 그들의 별명을 보면서 옛날 그때가 생각난다. 최근 몇 개월 전 봉하마을에 들른 적이 있었다. 봉하마을은 예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건물도 제법 몇 동 생겼다. 처음 20096월에 방문할 때 아무것도 없었다. 가게도 몇 군데 없었지만, 상점도 생기고, 식당도 잘 운영하고 있었다. 주차장도 당시 제대로 구비되지 않았는데, 조금씩 발전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세월이 참 많이 지나간 것을 느낀다. 김정호 비서관은 그런 봉하마을에서 마치 터줏대감처럼 지키고 있었다.

 

김정호 비서관라는 호칭보단 봉하마을에서 대표님으로 통한다. 영농법인 봉하를 만들고 운영하기 때문이다. 봉하마을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가장 유명한 역시 봉하막걸리이다. 봉하막걸리에 맛을 들이면 다른 막걸리를 쉽게 들어가지 못한다. 게다가 5월부터 9월 사이 뜨거운 태양아래 노동을 하게 되면 상당히 지친다. 그때 막걸리 한 잔에 두부김치, 부침개 등을 먹으면 다시 힘이 난다. 자원봉사하면 막걸리를 2통 넘게 마신 것 같다. 농사일이 쉽지 않은 것을 알지만 실제 경험하니 더욱 그렇다.

 

농사일과 관련하여 봉하마을 논에 매년 연중행사로 하는 것이 들판에 글과 그림 등을 새기는 것이다. 들판에 녹색으로 너울 걸리는 벼에 다른 색을 지닌 벼를 심는다. 시간이 지나 가을 추수할 무렵이 되면 제법 멋진 글과 신기한 그림들이 나온다. 하지만 성과물을 내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피사리, 흔히 우리는 피라고 불리는 잡초를 제거하여야 한다. 제초를 제거하지 않으면 벼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므로 잡초를 제거하러 논바닥에 들어가는 일은 참 어렵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들어가거나 혹은 긴 장화를 신고 들어가 몇 시간 정도 제초 제거를 했다. 날이 좋은 날도 하고, 비가 오는 날도 했다.

 

제초를 제거하고 저녁 5시 반이나 6시 되면 조금 쉬다가 저녁을 먹는다. 자원봉사를 하시는 분이나 혹은 그런 분들을 위해 주변에서 맛있는 음식을 제공해준다. 때로는 남는 음식을 집에 가져가기도 했다. 이런 시간들을 가지기까지 시간을 제법 걸렸고 많은 걸림돌이 있었다. 봉하마을은 처음부터 그렇지 않았다. 지금이야 정자가 놓여있고, 각종 들꽃과 야생화가 형형색색을 띄며 방문객을 맞이해주나, 논에 쓰레기나 슬러지가 가득했고, 공장에서 폐수가 몰래 방류되었다.

 

나의 전공이 환경공학이라 그런지 이 책을 보면서 노무현대통령의 환경적 마인드가 대단해 보였다. 사실 환경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문명의 혜택을 대신 넣으면 처음에 편리하고, 많은 이익을 주지만, 나중에 그 이익과 편리함 이상으로 재앙과 피해가 따르는 것이다. 물길을 막으면 물이 썩어 들어가고, 물이 썩으면 병충해가 일어나고, 병충해가 일어나면 작물조차 자라기 어렵다. 이런 순환적 모순을 이기기 위해선 자연 그대로의 조건을 받아 들이야 한다. 자연생태계는 자기 스스로 복구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 복구할 수 있는 능력을 존중하여 맞추면 병충해도 이기고, 품질도 좋은 작물을 거둘 수 있다. 봉하마을에서 나오는 막걸리가 괜히 맛있는 것은 아니다. 쌀의 품질이 좋아야 막걸리의 맛을 보장하고, 봉하마을에서 나오는 쌀을 밥으로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우렁이와 오리를 이용하여 친환경적 농업을 일구는 것은 곧 자연을 살리고, 대외무역에서 농촌이 살아남는 방법이다. 이제는 양보다 질을 추구하는 삶이다. 물론 모두가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나, 우리는 입맛을 조금 더 즐거운 곳을 찾는다. 봉하마을에 오면 쌀로 만든 막걸리와 각종 재래식으로 만든 반찬들이 입맛을 돋게 한다.

 

직접 내가 고생하여 수확한 작물을 다시 재가공하여 식품으로 마주하면 어떤 기분인가? 농부는 땅을 탓하지 않고, 농부가 일한 땅은 정직하게 답해준다. 한국에서 농사를 지는 분들을 그렇게 대우를 받지 못하나, 사실 농부가 있지 않으면 사회시스템이 붕괴한다. 왜냐하면 식량은 모두가 먹는 필수도수기이기 때문이다. 식량의 자급적 생산력에서 이미 한국은 외국에서 수입을 의존하고 있다. 중국을 중심으로 일본, 유럽, 미국 등에서 곡물과 고기, 생선을 받지 않으면 식단이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사를 지으면 대부분 농민에게 남는 것은 손바닥에 굳은살이, 얼굴에 까맣게 탄 흔적뿐이다. 자신이 직접 농지를 갖고 농사를 지는 것이 아니라 먼 곳에서 땅만 가지고 있다가 소작농 부리거나, 농지를 가진 이유로 각종 혜택을 보는 사람들도 많다. 한국사회가 도시화되면서 발전한 원인은 그만큼 농촌사회의 손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마트에 가서 쌀 204만원 조금 넘는다. 쌀이 가장 싸다는 말은 가장 필요하기 때문이다. 루소가 인간의 권리가 가장 저조한 이유는 인간의 용도가 가장 필요하기 때문이라 말했다. 가장 필요한 것은 가장 저렴해야 이용하기가 좋았던 것이다.

 

쌀농사를 지어도 남는 것도 없이 빚만 늘어가는 농부의 고민에 쌀 수입이 전면 개방되니 얼마나 힘든가? 그나마 쌀은 국내산이 좋다는 인식이 있기에 식단에는 한국 쌀이 올라와도 농민의 마음을 위로하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농사를 지는 것은 자연적 조건을 최대한 고려할 수밖에 없다. 자연을 파괴하는 농업보단 자연과 친환경적으로 만들어가는 농사는 잃어버린 새도 날아오고 물고기도 헤엄친다. 자연이 푸르고 물이 흐르지 않으면 인간의 마음은 황폐화된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필요한 이유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그 공간은 인간만이 아니라 자연동물 생태계도 공존해야 한다.

 

누가 이런 말을 했다. 새가 살 수 없는 곳은 인간도 살아갈 수 없다고 말이다. 노무현대통령이 고향에 내려오면서 가장 하고픈 일은 농촌을 다시 살리는 것과 농촌의 환경을 개선하여 농민은 경제적 이윤증대, 자연은 환경복원, 이곳을 찾는 방문객에게 휴식공간을 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꿈은 1년하고 3개월 만에 깨지고 말았다. 그가 세상에 없다고, 그가 꿈꾸던 세상은 포기할 수 없었다. 김정호 비서관은 그렇게 농부가 되어 갔다. 책에서 집에서 가출했다는 말이 나오는데, 나도 예전에 김정호 비서관의 따님을 본적이 있었다.

 

자주 오지 않은 모양인데, 오랜만에 찾아온 딸을 두고 계속 봉하마을에 10년 가까이 남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이 미련하면 바보 같다고 하나, 때로는 우리는 그런 미련한 인간을 원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머리만 굴리는 사람보다, 가슴으로 움직이는 인간이 때로는 너무 그립다. 바보는 분명 욕일 수 있으나, 그 바보라는 의미가 어떤 식으로 가는지에 따라 다르게 판단된다. 책을 읽으면서 노무현대통령이 서거하기 전 상황이 너무 잘 나와 있다. 옆에서 지켜본 사람과 언론의 관점은 다르다.

 

권력은 모든 정보를 통제하고, 정보는 사람들에게 정확한 정보보단 권력이 원하는 방향으로 설정한다. 미디어가 정치적, 경제적 이익에 따라 움직이므로 힘을 없는 자들은 대부분 진실과 먼 형태로 각인되어 그렇게 억압을 받는다. 그저 함께 하던 사람이 옆에서 사라지고, 그 자리를 대신해 이어가는 일이란 참으로 괴롭다. 김정호 비서관은 노무현대통령이 서거할 때 뒤처리로 너무 바빠서 슬퍼할 시간도 없었다. 하지만 처음 벼를 베고 쌀을 수확할 때 묘비 앞에서 서럽게 우는 장면에서 내 코끝이 진한 느낌이 다가왔다. 봉하마을에서 마지막으로 김정호 비서관을 본 건 작년이다.

 

그런데 책을 읽으니 몸이 좋지 않은 것을 알았다. 조만간 나이가 60세를 향해 가니 그럴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활기차게 쉰 목소리로 반기는 김정호 비서관, 바보농부도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건강도 중요한 것 같다. 조만간 봉하마을에 가서 얼굴을 비추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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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봉 - 5·18민주화운동 마지막 수배자
안재성 지음 / 창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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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봄 집안 제사일로 시골에 내려갔다. 시골에 가면 그동안 만나지 못한 친척들을 만날 수 있다. 나의 친가 쪽 친척들은 그래 많지 않다. 증조할아버지와 고조할아버지가 그 위의 할아버지들이 독자이거나, 다른 형제들이 있어도 모두 일찍 삶을 마감했다. 친가 식구가 6촌 이내나 10촌 이내의 숫자가 동일하다. 그 정도로 가족이 많지 않다. 그러나 촌수를 늘려 20촌까지 가면 말이 달라진다. 그때는 제법 사람이 많은 모양이었다. 친가의 식구들과 제사를 지내면서 이제 식구수도 계속 줄고 앞으로 묘관리가 어려우니 가족묘를 만드는 게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때가 되면 우리 직계식구들만 아니라 선대의 할아버지 기준으로 그 후예들은 모두 같은 무덤 내지 혹은 제삿날도 맞추자는 말이 나온 것이다. 여기서 나는 한국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518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먼 친척들은 강진군 칠량면 동백리에 살고 있고, 제사를 지냐면 동백리 벽송마을로 나는 찾아간다. 그곳에 아주 유명한 인물이 있다. 19805월 광주의 비극에서 마지막 수배자인 합수(合水) 윤한봉의 고향이 그곳이기 때문이다. 내 선대 할아버지 묘소를 가는 입구가 마을입구와 겹친다.

 

거기에 합수 윤한봉 생가라는 표지판이 쓸쓸하게 서있다. 윤한봉 선생이 살고 있는 집은 현재 그의 고모가 살고 있다고 한다. 윤한봉의 친척들이 제사를 지내는 시기와 우리 가족들이 제사를 지내는 시기가 비슷하면, 마을제각에 가서 그들의 친척들을 나의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찾아가 인사한다. 게다가 거기 계시는 어느 노인 분은 나의 아버지를 알고 계셨다. 나의 형이나 사촌들은 잘은 몰라도, 내가 합수 윤한봉을 알게 된 동기는 집안문중 홈페이지에 그의 존재를 알았고, 그가 동백리 출신이란 것은 최근 몇 년 전에 알았다.

 

아버지가 살아생전 윤한봉 선생을 아냐고 물어보니, 아버지가 하는 말에 아주 더럽게 독한 놈이라고 했다. 그리고 외국에 망명 갔다가 병으로 죽은 것도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노동운동이나 민주화운동에 전혀 발을 들인 사람도 아니나, 알고 있었다. 시골에 계신 작은아버지 역시 잘 알고 있었다. 518에 대해 물어보니 작은아버지는 마음이 많이 아팠던 모양이었다. 자신은 아직 광주에 있는 518묘지에 가보지 않았으나, 언제 자신을 대신하여 다녀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전에 윤한봉 선생의 자서전인 <망명>을 읽었다. 그가 살아온 인생을 처절했고, 상당히 지독한 신념을 지녔으며, 마지막은 가난한 인생을 살더라도 부와 명예 모두 버리고 세상을 떠난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한국 미술사학자로 유흥준 교수가 유명하다. 그가 언제 사람들을 데리고 윤한봉 선생 본가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가 왜 찾아갔었는지 알 수 없었다. 이번에 읽은 안재성 작가의 <윤한봉>을 읽으면서 그 이유를 알았다. 윤한봉 선생이 민청학련 사건으로 수감될 때 옆방에 유흥준 교수가 수감되어 있었던 것이다.

 

윤한봉 선생의 인생을 보면 지금도 한국에서 유명한 재야인사, 학자, 정치인 등이 많다. 김남주 시인과 박석무 다산연구소장, 그의 절친한 후배 윤상원, 윤상원과 영혼결혼식을 올린 박기순, 영혼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을 위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만들어준 황석영 작가 등, 지금도 한국사회에서 제법 명성이 높은 사람들의 이름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그러나 윤한봉이란 이름은 많은 사람들은 모른다. 진짜 민주주의 내지 노동운동을 하던 사람이나, 혹은 거기에 관심이 많은 시민들, 또는 그 사람들을 악의적으로 비난하고 왜곡하는 부류의 사람들일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왜 사람이 저렇게까지 되는지 생각해보았다. 그가 가진 평소 성품이나 인격이 어느 특정한 사건을 겪거나, 어느 특정한 인물을 만날 때 변화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훌륭한 인간은 그 자신이 뭔가 성과를 내어 보여주기보다 그 성과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더 좋은 삶과 가치를 주는 것이다. 윤한봉은 평생 가난하게 살았고, 멋을 부리거나 사치를 즐기지 않았다. 그가 가진 멋은 인간적인 정이었고, 그가 제일 사치를 누린 것은 주변에 모인 사람들이었다. 가진 것은 쇠불알 같은 가방이다. 세면도구와 속옷 그리고 필기도구가 전부이다. 가방 하나에 모든 것을 들고 다녔다.

 

자신은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남이 오면 좋은 것을 대접하고, 자신은 골방에 잠을 자도 그렇게 모은 돈으로 민족학교 내지 한청련 활동에 모두 투자했다. 세월호 비극이 터지자 뉴욕에서 세월호 관련 운동이 있을 때, 그 모임 주도세력의 창시자가 윤한봉 선생이었다. 미국에 망명갈 때 그는 나라를 잊지 않았다. 전봉준 장군과 김구 선생을 존경하여 민주, 민족, 민중을 사랑했다. 그리고 다산 정약용 선생의 정신을 계승하여 오직 배고프고 고통 받은 이웃을 도와야 한다고 여겼다.

 

<윤한봉>을 읽어도 그가 한 업적을 생각하면 보통 인간으로 도저히 할 수 없다고 여겼다. 아마 시골에 가서 윤한봉 선생의 친척들을 만나면 더욱 그럴 것이다. 윤한봉 선생의 아버지 윤옥현은 아들이 민주화운동으로 경찰에 끌려간 뒤 화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시골의 작은아버지가 윤한봉과 518의 이야기를 듣자 착잡한 기분을 드러낸 것이다. 역사에 획을 남긴 인물, 그리고 그가 살아온 인생이 마치 선구자 내지 순교자 같다면 그가 후세에게 큰 존경을 받는 것은 당연하나, 그가 살아온 인생도 그러하나 주변 가족들이 겪어야 할 고통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의 역사는 그렇게 희생으로 이루어져 오늘 자유민주주의를 맞이하게 되었다. 최근 대통령이 탄핵되고, 새로운 대통령이 등장했다. 새로운 대통령은 거의 10년 만에 518행사의 본질을 되살렸다. 유족을 찾아 위로하고, 그들과 같이 묘역에도 참배를 해주었다. 518 비극이 슬픈 이유는 그 당시 희생자는 계엄군에 저항하던 많은 시민들도 있지만, 어린 여중생과 여고생도 있었고, 심지어 세상의 빛을 얼마 보지도 못한 어린 아이들까지 있었다. 광주의 비극은 윤한봉 선생에게 평생 부채로 남았고, 거기서 죽지 않고 살아 혼자 미국에 있었다는 사실은 스스로 철저한 인생으로 빠지게 되었다.

 

그의 모습을 보면 최근 한국의 지성인이나 엘리트들을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느 현상이나 사건들을 보면서 어려운 말로 직시하여 고찰할 수 있지만, 때로는 너무 감정적으로 수사적으로 빠져든다. 논리라는 것은 정확한 통계가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인간의 기본적 윤리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최근 한국 지식인층은 어떤 특정 이데올로기의 도덕적 매너리즘에 빠져 대중과의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윤한봉 선생이 518 이전부터 활동할 때 농민을 위해 활약했다. 농민들은 제대로 아는 것이 없고 오로지 땅의 진실만 추구할 뿐이다.

 

그런 농민에게 어려운 말을 늘여놓고, 실질적 행동을 보이지 않으면 신뢰를 얻을 수 없다. 민주주의 내지 진보적 가치관을 지닌 지식인 내지 엘리트 한계는 바로 여기서 부터이다. 그들이 말한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들이 만든 지성과 감성은 필요하다. 문제는 그 지성을 위한 지식이 필요하기도 하나, 그 이상으로 그들이 가진 지성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할 사람이 진실로 필요한 게 무엇인지 잘 알아야 한다. 가장 높은 자들은 가장 낮은 곳을 찾아갈 용기가 필요하다. 서민이나 농민이나 모두 말을 예쁘게 하지 못한다. 욕을 반 섞어 가고, 때로는 농담 그 자체로 이끌어가야 할 때도 있다.

 

고상한 정신은 필요하나, 모든 사람들에게 고상한 정신을 강요할 수 없다. 윤한봉 선생의 호가 합수(合水), 똥과 오줌이 모두 모인 오물이란 의미이다. 오물은 더럽기도 하나, 우리 모두가 오물을 내보내는 생물이다. 깨끗한 것은 바라도, 그것을 위해서 누군가는 더러운 것을 받아들여 정화시킬 필요가 있다. 게다가 똥오줌은 과거 농초에게 소중한 비료가 아닌가? <윤한봉>을 읽으면서 우리 모두가 윤한봉 선생처럼 살아갈 수 없지만, 적어도 그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갔는지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집안 일로 알아 갈수밖에 없는 인물이나, 그래도 내가 관심을 제대로 가지지 못하면 그저 족보에 이름 세 글자 정도 올라갔다는 정도만 알 것이다. 합수 윤한봉이 이 세상과 작별한지 10년이 되었다. 독재군부가 물러가고 난 후 그가 귀국해도 여전히 한국은 어두운 안개에 가려워져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너무 극진적인 모습도 보였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사상과 가치관은 우리가 절실히 필요해보였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그가 합수라는 호처럼, 광주의 비극은 단순히 과거의 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라는 것을 그는 절실하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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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생각
윤태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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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생각>은 노무현 전 대통령 비서관인 윤태영 씨가 저술한 소설이다읽는 내내 이것은 소설이란 가상의 이야기로 구성된 것이라 하나거의 50% 이상은 사실에 가깝다소설을 읽는 감상을 보면 뭔가 강렬한 결과를 전달하기 위해 적은 책이 아니다결론을 제시하기보다는 그 결론에 이르기까지 모습에 아주 충실했다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조금 다르나그 등장하는 인물들의 원래 캐릭터는 그대로를 반영했다윤태영 작가는 노무현대통령을 보좌한 인물이기도 하나국회의원 노무현을 보좌한 경력도 있고학생운동을 한 실적도 있다.

 

이야기를 들으면 마치 이것은 윤태영의 자신의 이야기를 적어놓고 있으며또한 노무현과 함께 한 시간을 적고 있다읽는 동안 참 많은 생각이 오고간다노무현이란 인물을 우리가 아는 범위는 TV, 라디오신문 등과 같은 언론매체이다그러나 막상 그의 진짜 모습은 주변인들이 잘 알 것이다윤태영 작가가 자신의 이름이 아닌 진익훈으로 등장한다가난한 세입자의 아들이고어릴 때 친구들이 어느새 적이 되어 마주한다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이란 무엇인가책에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나과거에 조우한 시간보다 자신이 원하고 추구하는 이념이 더 소중하다.

 

익훈은 소꿉친구 인수와 희연을 20년 가까이 친하게 지낸 사이다그러나 익훈은 학생운동을 한 그 몇 년이 자신의 운명이 되었다가난에 힘겹게 살던 익훈그에 반해 건설업체 사장 아들인 인수유명내과 의원 딸인 희연, 3친구는 가까이 있으면서도 서로 멀어져 가는 운명이었다책을 읽으면 아주 씁쓸하다인수가 가입한 어떤 비밀조직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나없다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이 책이 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했다그리고 새로운 대통령은 이 소설 또 다른 주인공인 임진혁의 친구이다소설 속의 임진혁의 친구는 현실에서 대통령이 되자 국방무기체계 문제로 국방부와 마찰을 일으켰다그 문제의 발단에 깊은 원흉은 국방부 내 육군사관학교 내 친목단체가 있다는 것이다육군사관학교는 공군이나 해군사관학교와 다르게 군 장성들이 많고국방부를 주름잡는 곳이다국방부를 국방업무를 보는 기관이나 한편으로 육방부라고 부른다육군 장성들이 모두 군사 권력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김영삼 시절 절제되었다고 하나그 이전에 하나회 같은 경우 5공화국의 권력 핵심부였다하나회는 군사독재시대의 권력중추였다이런 일들이 있는데군사조직 내 권력유지를 위한 친목관계만 아니라 그들과 연계된 다른 권력이 없을 수 없다언론검찰경찰경제 인사 등 많은 이해관계자들은 카르텔을 형성되어 있었다우리나라의 카르텔은 대한민국이 아닌 조선왕조부터 시작되었다임진혁이 소설이 아닌 역사의 인물로 나올 때 600년 동안 약자들은 계속 핍박받고거기에 대항하던 자들은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보복을 당했다.

 

그 시대를 저항하던 임진혁은 결국 자신이 근절하고자 하던 세력에 의해 역사의 한축이 되었다임진혁 옆에서 계속 지켜보고 같이 지낸 진익훈생각하면 소설은 분명 맞으나 사실을 그대로를 편집한 것이다편집을 다소 유리한 상황에 맞추는 것보다 전후사정이 담겨진 채로 말이다내가 알던 제17대 대통령시절엔 재미있는 단어가 생겼다한국에서 좌파와 우파에 대한 논쟁이 참으로 바보 같다사실 좌파가 생긴 것은 1789년 프랑스대혁명 이후 로베스피에르를 비롯한 산악파가 반대편 지롱드당을 견제하는 차원에서 국민공회 의원자리에서 좌측에 앉았다.

 

이에 반해 지롱드당은 왕당파라 하여 오른쪽에 앉아 우파가 되었다만일 지금 자신이 아주 똑똑한 것처럼 말하면서 좌파를 민주주의 내지 자유주의를 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단지 멍청한 녀석일 것이다. 17대 대통령과 좌우파 내용에서 어떻게 연계되었는가그것은 좌파신자유주의자 라는 단어가 생긴 것이다보수세력은 좌파대통령으로 불렸고진보세력은 신자유주의자라고 불렀다신자유주의는 애덤 스미스의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조금 더 시장만능주의로 만든 사상이다.

 

하이에크가 만든 신자유주의사상은 20세기 초반 케인즈학파와 연속하여 대립되는 경제사상이다세계의 경제구조는 무역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지만과거의 거래방식은 화폐를 직접 주거나 또는 어음그 금액에 할당하는 금과 은으로 지불했다그러나 20세기 후반으로 갈수록 전자거래가 이루어지고금융경제가 모든 경제의 중심이 되었다외국의 주식을 국내에서 살 수 있고국내의 주식도 외국인들이 한국에 오지 않고 구매할 수 있다세계의 흐름은 이런 금융자본주의와 더불어 노동유연화가 유입되기 시작한다.

 

노동문제는 단순히 노동자만이 아니라 국가전체의 문제에 해당된다국민 대부분이 임금을 받아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나본인이 그런 처지라는 점을 망각하거나설사 알고 있어도 현실의 벽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국가라는 체계는 시스템 구축이 중요하다대통령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정부수장이기도 하나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관리자이기도 하다그 조율자가 현실의 벽에 맞히는 순간 아무 것도 할 수 없다이미 자신의 당에서 외면 받으며과거 같이 투쟁하던 동지들도 그를 외면했다.

 

상고출신 고등학교 졸업장을 평생 그를 괴롭혔다하다못해 명예졸업장까지 챙기지 않은 대통령힘이 없기에 언제나 정치권과 언론에 터지는 대통령소설 <오래된 생각>을 읽으면 10년 전의 한국이 생각난다그가 정말 뛰어나고 탁월한 능력을 갖춘 대통령이어도그 자신만이 아니라 주변에서 받쳐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나는 군복무를 노무현대통령 집권 하던 시기에 했다하사로 임관하여 하사로 전역했다내가 훈련소에서 한참 군사교육을 받을 때 탄핵을 당했다나는 훈련으로 그런 사실조차 몰랐다자대에 가서 안 것은 대통령이 이동할 때 항공기가와 헬기를 자주 이용했다는 점이다.

 

헬기를 이동하면 공중에서 인원을 수송하므로육로보단 빠르나 그 자리가 불편하다항공기 소음은 민간항공기가 아닌 군용항공기의 경우 소음진동이 그대로 사람에게 온다좋은 차에 육로로 가면 편하나대신 교통통제로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친다소설에서 헬기이동 장면은 군에 있을 때가 생각난다공군하사로 복무했기에 전시작전권 관련 업무도 맡았다당시에 비밀이나지금은 비밀이 아닌 것으로 공군 피스아이 사업을 할 때항공기 도입을 위한 시설사업을 계속 맡아왔다.

 

전시작전권 환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가 적의 정보를 파악하여 조기대응을 하는 것이다조기경보통제기를 도입하여 적의 동향을 파악하여 자체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지휘 타격 임무완료 시스템은 국방군사시설의 현대화를 일구었다공군작전시설 및 첨단장비도 이때 가장 많이 도입되었다그러나 현실은 아무도 그를 알아주지 않았다경포대란 말로 경제를 포기한 대통령이라 불렀다. DJ국정과 참여정부를 두고 누군가는 잃어버린 10년이라 하나지금을 보면 그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10년이 더 좋았던 시간이란 것을 많은 국민들이 알게 되었다.

 

읽는 내내 당시 많은 사람들과 언론에 서운해 하던 내 모습이 생각난다한편으로 거대한 권력을 잡은 자들은 무엇을 해도 적당히 넘어가도권력이 없는 자는 꼬투리만 잡혀도 목숨이 위태롭고조금이라도 틈이 보이면 여기저기서 공격한다가끔 생각한다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고뭔가 잘못된 것을 알아도 해명조차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당해야 하는 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고 말이다몸부림조차 냉소의 조롱거리로 만들어지는 현실에서 <오래된 생각>은 제목처럼 오래된 이야기는 아니다.

 

생각하는 축에서 오래된 과거이지현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과거라는 시간이 축척되어 만들어진 결정덩어리이다작가 윤태영은 이 책에서 그동안 뭔가 말하고 싶었지만 말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소설처럼 만든다하다못해 나 같은 일반인도 바보처럼 그 시대를 보냈는데윤태영 같은 보좌관들은 오죽할까? <오래된 생각>은 노무현대통령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책이 아니다노무현대통령이 나오는 순간 추모의 시간은 잠시 스쳐가겠지만정작 중요한 그가 처한 현실이란 점이다.

 

책을 보면서 섬뜩한 모습이 나온다인수는 익훈의 친구에서 완벽한 적으로 변한다그가 검사가 되고국회의원이 되어 자신의 당에서 대변인으로 활약할 때그는 자신의 이익과 성공이 이 나라의 성공과 미래라고 여기는 것이다어느 사회이든 엘리트들이 자신의 권력을 위해 비밀조직을 결성하고 거기서 정책과 각종 입안을 올려 현실에서 실행될 경우 국가의 운명은 제대로 돌아갈리 없다. <오래된 생각>을 보면 익훈은 자신의 이상과 이념을 위해 친구와의 관계를 끊고가족까지 민폐를 끼친다.

 

그의 선택은 대의적으로 옳을지 모르나그의 인생에서 많은 마찰음을 내었다자신을 사랑해준 희연을 인수에게 가버렸다공안사범으로 수송될 때 책을 읽는 도중책에 적힌 구멍 뚫린 글을 읽는다희연이 익훈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부분이다소설에서 반 이하는 허구로 구성되어 있으나임진혁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비리 경제인을 청문회를 할 때 증인이 위증을 하자위증을 잡기 위해 익훈의 증언을 통해 어느 기업의 거물을 구속시킨다그런데 그 거물은 인수의 아버지였다인수는 검사지만아무런 조치도 하지 못했다대의와 목적그리고 사적인 관계로 이어지는 원한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는 지식인의 역할은 군중 내지 민중의 의지를 대변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그러나 막상 현실의 지식인은 없고 엘리트만 존재한다엘리트들은 좋은 대학교를 나오고그 전에 유명한 고등학교를 졸업한다엘리트들은 고등학교까지 친구지만대학에 가면서 서로 갈라지게 되고어느 순간 적으로 위치하는 경우가 많다저번 정권의 총리와 진보정당의 한 위원은 고등학교 동기지만대학교 졸업 후 공안검사와 노동운동 현행범으로 만나기도 했다.

 

인생은 자신의 뜻처럼 되지 않는다과거 같이 고생하던 친구조차도 현재에 오니 오히려 비난하는 입장이 된다현실의 벽을 돌파하고 싶지만그것을 가로막는 또 다른 장벽은 더 높기만 하다이런 일을 겪은 작가 아니라면 그것을 같이 바라본 독자에게 책제목이 말한 것처럼 <오래된 생각>이라 말할 수 있을까오랫동안 생각하지 않은 과거가 아니라오랫동안 계속 생각한 과거라고 말한다면 어떨까항상 잊을 수 없지만언제나 표현할 수 없던 자신 안의 검열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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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7-06-08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소설도 있었군요! 한국 소설 읽지 않은 지가 넘 오래 되서뤼..^^;;

만화애니비평 2017-06-09 08:53   좋아요 0 | URL
소설이라 하나, 소설같은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모로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다이 시지에 지음, 이원희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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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름이 중국명이고, 작가가 적은 내용도 중국의 문화대혁명이 한참 활발하게 진행되던 시기이다. 그런데 출판사를 보면 원래 출판된 곳은 프랑스이고, 게다가 파리이다.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할 수 없기에 프랑스에서 발간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책 속에 문화대혁명 시기의 중국은 그야말로 어리석은 바보들의 축제였기 때문이다. 물론 지식인들과 엘리트들을 모조리 뒤집고, 중국의 유교문화를 파괴한다는 명제도 좋았으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 스스로 계몽할 수 있게 해주는 칸트의 계몽의식이 더욱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계몽이란 단어는 단지 기존의 관념을 억지로 다른 관념으로 바꾸어주는 하나의 폭력적 행위에 불과하다. 계몽이란 단어가 하는 행동에서 진실로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졌는가? 중국의 문화대혁명도 그러하거니와 프랑스대혁명에도 조금 문제가 있는 부분이 바로 여기이다. 혁명이란 것은 기존의 체계를 모조리 바꾸어도 그곳에 살아가는 인간이란 존재, 즉 삶에 대한 원초적인 요소까지 어렵다. 현대사회에서도 내가 가장 멍청한 슬로건으로 보는 것이 자기들의 세상, 사상을 외치는 자들이다.

 

새로운 사상과 세상을 말하고 글로 적는 것은 좋다. 문제는 인간의 생활에서 혁명이나 전쟁, 심지어 더러운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도 그 시대 사람에게 먹을 빵이 필요하고, 추우면 연료가 필요하다. 게다가 아프면 의사와 약사가 필요하다. 세상의 기본은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조건이 필요하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에서 가장 멍청한 짓은 바로 의사들이나 과학자들, 교사들에 대한 억압과 분서갱유질이었다. 물론 지식인들이나 엘리트가 부패하면 그 나라는 완전히 망한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행동이 더 치밀하고 교활하여 파급력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없다면 나라는 심한 문제에 빠진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에서 그 이유가 나온다. 의사가 잡혀가면 많은 사람들이 병에 걸려도 해결하기 어렵고, 소수의 의사가 다양한 환자를 돌봐야 한다. 주인공 친구가 노동갱생을 위해 끌려온 산자락에서 만난 어여쁜 소녀가 임신하자, 임신중절수술을 맡은 의사는 내과, 외과, 정형외과 등 다양한 진료과목을 요일마다 다르게 진료했다.

 

책이 있으면 반동군자이고, 책을 읽어본 사람은 반혁명분자이었다. 하지만 책에 대한 부제는 문화적 빈곤에 시달렸다. 인간들은 이야기하기 위해 생각하는 존재이다. 극장에서 영화를 본 후 그것을 이야기해주는 주인공과 친구의 모습에서 인간은 결론적으로 즐거움을 찾는 존재이다.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독재라는 슬로건에서 카를 마르크스는 그런 식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이름을 들어도 그들이 어떤 행동과 말을 했는지 일반인들은 전혀 모른다.

 

아니 심지어 그들의 얼굴조차 모른다. 주인공이 우연히 숨겨온 책을 떨어뜨리자 동네 건달은 그 책의 표지에 나온 사람이 카를 마르크스인지 레닌인지 스탈린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무식한 세상에 문자를 알고 이야기를 안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향유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간은 단순하게 사는 것을 원하지만, 한편으로 다른 재미를 원한다. 발자크가 나온 이유는 2친구가 다른 친구인 안경잡이로부터 받은 책이 발자크의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안경잡이가 숨겨둔 책은 발자크만 아니라 스탕달, 루소(신 엘로이즈를 안다면 그리 놀라지 않을 것이다), 위고, 뒤마 등 많은 저명한 작가의 서적들이었다. 보통 중국인들 그것도 산골짜기에 살아가던 문맹인들에게 그저 사치스럽고 때로는 반동의 세계일뿐이다. 이 책들이 이야기는 주인공 친구로 통해 바느질 소녀를 새로운 세상을 알게 해주는 길이 되어주었다. 관능적이고 달콤한 이야기 속에 사랑과 열정이 넘치는 낭만으로 가득했다.

 

낭만이 원래 혁명의 힘인데, 오히려 낭만이 혁명으로부터 죽음을 당하는 아이러니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옮긴이의 후기를 보면 분명 어둡고 위험한 시대지만, 책 속의 내용은 유머와 위트가 넘치고, 엉뚱한 모습도 종종 등장한다. 소설에서 보여주는 인물들은 대단한 인물이기보단 그저 삶의 한편에서 종종 보이는 인간유형이다. 인간이 어떤 위기에 닥친 상황에서도 어떻게도 삶의 묘미를 찾으려 한다. 하지만 현실의 조건은 여전히 암울하니, 즐거움이 되는 것은 비현실적인 세계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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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2-25 18: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말이네요..한해도 좋은 포스팅 글로 만났습니다..
며칠 남지 않았지만 마무리 잘 하시고
또 새해에도 더 알찬 리뷰 기대합니다...^^.

만화애니비평 2016-12-26 09:40   좋아요 1 | URL
유레카님도 좋은 연말 보내시고, 내년에는 꼭 박과 최가 국민의 심판을 받을 수 있도록 기원합시다!!
 
그 쇳물 쓰지 마라
제페토 지음 / 수오서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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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추워지고 있다. 아침하늘을 바라보면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입김이 구름이 되어 흐르고, 밤하늘을 바라보면 맑고도 어두운 세계가 끝없이 펼쳐진다. 이런 광경을 계속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름다운 것인가? 아니면 왠지 모르게 아쉬운 마음으로 가득한 것인가? 겨울은 여러모로 희비가 엇갈리는 계절이다. 추운겨울 하얀 눈이 내리며 도시에 크리스마스 캐럴 송이 흘러가지만, 한편으로 추위와 배고픔이 절실하게 다가오는 계절이다. 낭만이란 감정은 여유가 어느 정도 있는 사람에게 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낭만을 느끼기보단 낭만주의자가 원하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추운 겨울은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좋은 계절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여유가 있을 시간도 길지 않다. 짧은 여유를 위해 아득바득하게 살아가는 게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는 가끔 생각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 위로해주고 때로는 질책해야 한다고 말이다. 나는 지금 생각한다. 겨울이란 계절이 12월 입구에 다가선 현재가 아니라 마음속에도 존재한다고 말이다. 오랜 그룹사운드인 봄여름가을겨울이 만든 곡으로 <언제나 겨울>이 있다. 언제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겨울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겨울이란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은 늘 겨울이었기 때문은 아니다. 겨울만 존재하는 세상에 그 계절이 그 세상에선 겨울로 느낄 수 있는 것인가? 우리는 겨울이 아닌 때를 알기에 겨울을 아는 것이다. 세상에 뭔가 이상한 것을 느끼고 있다면, 이상하지 않았던 것도 있다는 의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가끔 우리 스스로 위로해야 하는 것이다. 마음의 겨울에 갇혀 자신의 마음이 얼어붙은 사실조차 잊어버릴 때도 있기 때문이다. 제페토 시인, 인터넷 뉴스기사에 덧글로 시()를 남기는 기류 시인이다. 인터넷 공간에 머물기에 그의 시에 울려진 언어의 미는 늘 딱딱한 세계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신비로운 존재다.

 

하지만 그가 남기는 시는 매우 아프고, 쓰라리며, 때로는 따스하고도 아련하다. 제페토 시인이 이때까지 남겼던 글들을 모아 시집을 냈다. 시를 평소 잘 읽지 않은 나라도 읽고 싶은 시였기 때문이다. 시집 제목은 <그 쇳물 쓰지 마라>, 여러 기사에 달린 시들 중에서 이 시가 아마 가장 인상이 깊고, 허무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가을 추석을 앞두고 어느 청년이 용광로에서 작업 중 낙하되어 뜨거운 용광로 속으로 빠졌다. 1600가 넘는 고온, 이미 그의 육체는 세상 어디에도 드러낼 수 없었다.

 

뜨거운 화염은 그의 육체를 모조리 갉아먹어 남은 것은 원통한 이름뿐이었다. 그 쇳물을 돈을 위해 쓰지 말고, 오로지 그의 모습을 닮은 동상을 만들어 가족들에게 위로를 해주라고 말하는 제페토, 시집 <그 쇳물 쓰지 마라>는 제목부터 이미 슬픈 우리의 현실이었다. 장애인, 독거노인, 불치병에 걸린 어린아이, 치매로 죽어가는 아내를 죽이고 자살한 할아버지, 가난 속에 배고픔에 쓰러져간 작가 등 많은 슬픈 사연들이 속속히 시로 운율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미 타인의 고통에 무디게 되었다.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많다. 너무 슬퍼서 너무 기뻐서 너무 피곤해서도 가능하다. 하지만 눈물의 이유는 우리 모두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서 흐르지 생각보단 내 자신의 인간적인 모습에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인간적이란 무엇일까? 인간이란 이성을 가진 존재고, 감성을 지닌 존재다. 동물에겐 본능적인 이성과 감정밖에 없다. 그들이 판단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본능적 이성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단순히 지금 느끼는 상태 그 자체가 감정만 가지고 있다. 인간에게 그 이상의 이성을 지니고 있지만, 때로는 동물보다 못한 이성을 가지고 있다. 인간에게 이성과 감성에서 무엇이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감성이라 말하겠다.

 

감성이 없는 이성은 오로지 논리고, 그 논리는 자신의 이기심을 위한 이성능력으로 발달할 것이다. 마음이 없는 이성은 차가운 얼음과 같은 벽이다. 자신의 삶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 모른 채 주머니 속 지갑만 가득하게 채워줄 욕망을 바란다. 욕망으로 넘치는 세상, 욕망 이외엔 아무 것도 없는 세상, 그것은 우리가 동물보다 더 동물 같은 존재로 바꾼다. 동물은 배가 부르면 쉬고, 졸음이 오면 수면을 취한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에게 충분한 것들이 들어와도 여전히 남을 것을 빼앗으려 하고, 남의 수면시간까지 빼앗아 착취한다.

 

어째 보면 제목 <그 쇳물 쓰지 마라>에서, 만일 그 청년이 안전장비가 충분했다면, 안전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그런 변을 당했을까? 이런 기사를 보고 우리는 하나의 가십거리 이야기로 스쳐지나간다. 사실 그 가족들은 얼마나 슬프고 친구들은 얼마나 괴로울까? 물론 타인의 이야기인 것은 분명하다. 타인이라 해도 그래도 그들도 살아있는 생명이고, 사랑하는 사람들하고 하루를 힘들게 살아가는 인간이다. 나의 마음을 죽이는 세계에 나를 위로해주는 책이 필요하다.

 

위로는 단순히 그 사람의 기분만 맞추는 게 아니다. 그 사람의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상처도 때로는 건들어야 하고, 그 사람이 일부러 외면하는 눈앞의 현실을 마주보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도 모른다. 모르는 것이 약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 약은 아픈 곳을 아프지 않게 하는 진통제이지, 그 자체로 치료해주는 처방전은 아니다. 진심의 눈물이 메말라 가는 세상, 비록 눈에 눈물이 흐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마음의 눈물을 다시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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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1 14: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만화애니비평 2016-12-11 15:43   좋아요 2 | URL
전에 예비군 훈련 중 예비군 동대장의 말에서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에게 보상이 어쩌고, 유공자 어쩌고 했는데, 그게 김기춘의 공작임을 밝혀지었죠..참 너무한 세상입니다. 자신들의 아이가 그러면 그럴 말을 할 수 있을런지

또 다른 일화입니다. 제가 삼성에 대해 비판한 적이 있을 때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이 겪은 암과 각종 질병으로 수십명이 죽었다고 하는데, 그래도 삼성에 가서 돈 많이 벌면 좋겠다는 회사직원, 게다가 그 죽은 사람이 아주 극히 일부라는 말을 듣고 아..진짜 무서운세상이구나 느꼈지요..만일 자기 아이들이 공장에서 일하다 산업재해로 불치병으로 쓰러지면 어떻게 할건지..기만이 넘치는 세상입니다.

2016-12-11 2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