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광금지, 에바로드 - 2014 제2회 수림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연합뉴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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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광금지 에바 로드>를 읽는 순간, 전에도 지금도 <에반게리온>에 빠져있는 내 모습을 생각했다. 물론 소설에서 박종현이란 인물은 현실에 존재하던 에바 로드 완수자 2명을 합친 가상의 존재이나, 기본적으로 그 현실의 2사람을 토대로 만든 인물이다. 에바로서 가는 세계와 그리고 나의 현실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먼저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보지 않고서는 절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등장한 파일럿 이카리 신지군을 보는 순간 우리는 우리의 현실을 다시금 보게 된다.

 

언제나 로봇이 나오는 전쟁 애니메이션에서 주인공은 항상 강한 정신과 불굴의 의지로 적과 마주한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에 우리로 대체된다면 우리는 그렇게 강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언제나 현실의 벽이란 보이지 않은 투명한 유리 앞에 부딪힌다. 하늘을 날아가는 새가 건물의 유리창이 막힌 곳도 모른 채 부딪히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부딪히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에게 선택은 정해져 있다. 그런 벽에 부딪혀서 몸이 박살나는 것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벽을 피해 영원히 그 사선을 넘지 못할 것인가.

 

우리에게 벽을 둘러갈 수 없는 현실이다. 사실 벽의 높이가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유리 너머의 세계가 정말 존재하는 것인지 모른다. 처음부터 유리의 장갑수준도 알 수 없다. 미지의 세계라도 어느 정도 각오를 다지고, 준비성을 갖춘 채 한 발씩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판단조차 잴 수 없다. 그렇다고 그 길을 포기해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열광금지 에바 로드>는 바로 그런 시대에 살아가는 젊은 청춘들의 또 다른 이야기다. 최근 한국 소설계에서 새로이 등장하고 있는 작가 장강명 씨의 소설에서 그런 현실을 다룬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전에 읽은 <한국이 싫어서>는 평균 정도의 학교를 나온 20대 중반여성이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질 모습이 없는 자신에게 지쳐, 결국 호주로 유학가고 거기서 정착하는 일대기를 보여준다. 호주라고 하여도 별 수 없는 낯선 곳이오, 온갖 모순과 부조리가 존재하는 곳이다. 단지 그 정도가 한국보다 덜한 것밖에 없었다. 적어도 노력해서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이 유학 간 남학생은 요리 실력이 좋아도 한국에서 인정받지 못했으나, 호주에서는 나름 인정받는 요리사로 된다.

 

자신에게 꿈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꿈이란 자신의 성공이나 출세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이 싫어서>란 책은 자신의 성공이 가로막힌 한국을 떠난다면, <열광금지 에바 로드>는 자신의 성공을 출세로 여기지 않고, 대신 다른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취미생활이나 취향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할 게 없다. 가령 내가 가장 듣기 싫은 말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내가 어느 사람에게 “당신은 무엇을 좋아합니까?” 라고 질문한다면 대부분 “저는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해요.”, “저는 음악을 좋아해요.”, 혹은 “TV 드라마를 보는 것을 좋아해요.”, “여행을 가는 것을 좋아해요.” 등등 식상한 말만 나온다.

 

영화라도 장르가 매우 세분화되어 나누어지고, 영화감독에 따라 관람해보는 감독주의 혹은 작가주의적인 요소도 찾을 수 있다. 음악이라면 재즈를 좋아하는지 아니면 그저 댄스를 좋아하는지, 그리고 그 뮤지션에서 누구를 좋아하고, 어떤 부분에서 와 닿는지가 없다. 즉 타인들의 이야기에만 집중하지 자신만의 스토리텔링이 존재하지 않는다. 스토리텔링이 없다는 것은 자신만의 개성과 표현성이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신의 존재를 자신의 느낌으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 맞추어 수동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인간들에게 진정한 삶의 가치를 어떻게 찾아야 옳은 것인가? 가족 안의 행복, 사회생활에서의 안정 등이란 너무 속보이는 답이다. 그 이상으로 자신의 삶에 아무런 목표의식이 없는가? 주변에서 들으면 집이 어느 동네 35평 내외, 차는 2000CC 이상, 돈은 얼마정도 있으면 좋겠다는 말만 들린다. 물론 부의 재력이 있으면 좋다. 자본주의시장경제구조에서 돈의 이동이 없다면 무역이나 교역, 심지어 일상생활에 필요한 필수품조차 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 그 자체로 하나의 가치가 고착되는 순간, 인간은 자신의 가치를 자본으로 매기고, 자신의 존재는 돈에 의해서만 말할 밖에 없는 인간이 된다.

 

자신이 그렇게 되는 순간, 그는 평생 외적인 삶이 아니라 내적인 인생에서도 돈의 지배를 받게 된다. 열심히 뛰고 뛰어 마지막에 그의 삶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열광금지 에바 로드>는 바로 그런 시대에 젊은 청춘이 과연 자신의 원하는 삶이란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단지 그 여정은 <한국이 싫어서>와 다르게 진행된다. 벽이 높고 높지만, 그 벽이라도 여러 가지 벽이 있다. 자신이 둘러싼 벽 사이에 유일하게 자신에게 주어지는 선택권이란 말도 안 되는 벽을 선택할 것이다. 단지 벽을 넘어갈 수 있는 기회는 처음부터 주어지지 않는다.

 

<열광금지 에바 로드>는 책제목만 보듯이 에바, 즉 EVA라는 <신세가 에반게리온>을 좋아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이때까지 좋아하는 것을 찾지 못하다, 어느 순간 일본애니메이션을 접하고, 그때 에반게리온을 만났다. 에바에서 보는 주인공은 처음에 못났고 겁쟁이에 아무 짝에도 쓸모없을 것만 같은 아이였다. 하지만 그 주인공 파일럿은 어느 누구도 아닌 우리의 모습이고, 우리가 늘 외면해오던 익숙한 자신이었다. 너무 익숙하기에 그것을 인정하기 싫은 점도 많았다. 늘 도망치고 싶었고,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은 가혹했다. 거기에 맞선다고 뭔가 새로운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늘 우리는 강요받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고, 그 인생을 강요하던 어른들 역시 과거에 그런 부조리에 굴복했다. 인간의 부조리한 모습에서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면 결국 소설에서 등장하는 주인공 박종현처럼 전혀 있지 않을 벽을 찾아서 그 벽을 넘어 가는 것이다. 박종현은 어릴 때부터 불우한 삶을 산다. 가난한 집안, 무능한 아버지, 가출하는 어머니, 형과의 불화, 학교생활의 마찰, 어느 곳이든 그가 벗어날 구멍이란 없다. 사람에게 가끔 미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이유는 자신이 사는 세계는 언제나 자신을 속박하는 사슬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박종현은 버림받은 인생처럼 살다, 시장에서 일하고, 학교에 다녀보고, 컴퓨터를 배워 늘 야근과 잔업에 시달렸다. 그리고 섬광처럼 드러난 에바 로드, 일본과 미국, 중국과 프랑스를 경유하여 마지막에 일본에서 가이낙스(카라)의 선물을 받는 것, 어찌 보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박종현이나 혹은 실제 현실 속의 2명의 남자들이 보여준 결실은 일반인에게 본다면 정말 무단한 일일 것이다. 왜 쓸데없이 열을 올리는지, 그 먼 곳까지 시간과 돈은 얼마나 걸리는가? 게다가 말은 어째 할지 말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면 나 같이 제대로 일어를 공부하지 않아도, 간단한 회화정도는 구사할 수 있다. 한자도 조금 읽으면 혼자 간신히 목적지까지 찾을 수 있다. 불어와 중국어의 경우 조금 다르다. 중국어는 우리가 아는 한자와 다르다. 한국, 일본, 중국 모두 한자어를 사용하는 것은 맞으나 한자의 표기와 사용방식이 조금씩은 다른 것이다. 낯선 땅에 아무런 지식이나 도움 없이 꿈을 향하여 달려간 젊은 친구들의 무모함에 분명 모두가 비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녕 비웃는 자들은 이때까지 자신이 어떤 허황된 꿈일지라도 거기에 목숨까지 아니더라도 자신에게 스스로 떳떳하게 설 수 있을 때까지 그 길을 찾아갔는가?

 

아마 대부분 없을 것이다. 그 열정은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자 한 길도 아니고, 오로지 자신과의 외로움 싸움이다. 그 외로움 싸움에서 얻은 것은 물질적으로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그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었다. 돈은 많이 들어갔지만, 돈으로 따질 수 없는 황금보다 더한 보물을 얻었다. 우리에게 황금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보물은 있는가? 88만원 세대가 나오고, 경제적으로 소외된 청춘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그 공간에서 과연 무엇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가?

 

성공의 꿈이란 이룰 수도 없이 너무 머나먼 곳에서 나를 비웃고, 그 꿈이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을 향하여 걸어가야 하는가? 성공의 꿈은 현실세계에 있어도 비현실적 영역이고, 에바 로드는 비현실적인 세계에 대해 현실의 인간이 그 꿈을 향하여 걸어가는 것이다. 어떻게 보자면 진정한 진실은 현실이 아닌 환상의 세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환상에서만 오로지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 나갈 수 있으니 말이다. 에바를 향한 그 머나먼 로드가 끝이 났다면 또 다른 여정이 박종현을 아니 현실의 2남자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 허무하고도 엉뚱한 에바 로드를 완주한 그들에게 현실의 어려움이 있더라도 자신은 언제나 스스로 살아있는 인간이라고 솔직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도 과연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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