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들)
클레르 마랭 지음, 류재화 옮김 / 사람in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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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어려운 이야기를 할 것 같은 제목이지만 아니다. 단절이 우리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책이다.


사실 우리 삶은 하나로 주욱 이어지지 않았다. 여러 단절들이 모여 삶을 이룬다. 생애 주기라는 말을 쓰는 것 자체가 바로 단절들의 이어짐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저자도 말하고 있지만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단절을 경험한다. 아니 단절이 없으면 태어나지 못한다. 사실 태어나기 전에 잉태하는 과정을 봐도 그렇다. 단절 아니겠는가. 남자의 몸에서 단절되어 나온 정자가 난자와 만나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


자궁 속에서 단절을 넘어 새로운 출발을 하지만 여기에 계속 머물러서는 안 된다. 또다시 단절해야 한다. 이번엔 자궁 밖으로 나와야 한다. 탯줄로 이어진 것을 끊어야 한다. 단절이다. 이 단절이 삶으로 이어진다. 새로운 삶.


그러므로 단절은 삶이다. 단절들이 모여 우리 삶을 이룬다. 그리고 마지막 단절은 죽음이다. 죽음은 한 개체로서의 완전한 단절이지만 이 개체의 삶은 다른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새로운 모습으로.


죽음이라는 단절이 인간이라는 종 전체를 보면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한다.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준다. 단절이 없다면 생각하지 못했을 것을.


그래서 인간의 삶 자체는 단절들의 연속이다. 우리가 늘 보는 시계를 보라. 시간은 단절이다. 연속이 아니다. 단절들이 순서대로 이어질 뿐이다. 이 시간을 좀더 길게 끌며 단절이 되면 계절이 된다. 계절 역시 단절이다. 그렇지만 이 단절이 끝이 아니다. 다른 단절을 이끈다. 계절을 더 길게 끌자. 바로 생애 주기가 된다. 유아기, 청소년기, 청년기, 중장년기, 노년기 등등.


더 길게 늘려볼까? 바로 인간의 역사가 된다.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단지 시간만? 아니다. 공간 역시 단절들이다. 이 단절들이 모여 지구를 이루고, 우주를 이룬다. 우주 역시 처음에 단절로부터 시작했다. 나중에 팽창하다 다시 수축해서 원점으로 돌아간다면(과연 그런지는 과학자가 아니라 확신할 수는 없다) 역시 단절들의 연속이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단절을 단지 상실이라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잃어야 얻는 것이 있다. 비워야 채울 수 있듯이.


당장은 단절이 괴롭고 힘들다. 고통스럽다. 맞이하고 싶지 않다.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것이 단절이다. 하지만 단절을 피하기만 하면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다. 바로 자신을 알 수 없기 때문. 즉 단절이 없다면 자신도 없다. 자신이 없는데 어떻게 자신과 다른 존재를 단절시킬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삶에 단절은 필수적이다. 피할 수 없는 단절. 이 단절을 통해서 성장해갈 수 있음을 저자는 여러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단절을 하지 못했을 때 더욱 괴로워질 수 있음을 '불면증'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불면증은 내려놓지 못함이다. ... 잠들지 않는 의식은 과거를 무한정 늘린다. 과거가 사라지는 것을 거부한다. 불면증은 현재를 확장하고, 과거와의 단절을 거부하는 통에, 헛된 노력을 하는 줄도 모르고 지쳐간다.'(183쪽)고...


이것은 과거와 단절하지 못한 모습이다. 단절을 해야 하는데, 단절을 하지 못해 괴로움에 처한 상태를 보여준다. 그렇기에 '과거가 현재를 장악하더라도 한계를 정하고, 살아있는 순간을 과거가 침범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182쪽)고 한다. 이것이 바로 '단절'이다.


따라서 우리는 단절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저자는 아니라고 한다. 우리 삶에서 이러한 단절들이 없다면 주체적인 삶이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단절은 결국 주체를 찾아가는 방법이다.


이런 극단적인 예가 폭력을 휘두르는 부모를 둔 아이다. 그 아이는 부모와 단절하지 못하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죽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한다. 그래서 이 아이에게는 단절이 반드시 필요하다. 부모로부터의 단절. 


남과는 다른 나를 찾아가는 과정, 내 삶을 살아가는 과정, 그 과정 속에서 겪게 되는 수많은 단절들. 이 단절들을 다름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그것으로 삶을 지속해가는 과정. 사람들이 다 똑같아서는 안 되니까. 똑같다면 이런 단절이 생길 일도 없겠지만, 자아라는 것도 없게 될 테니까.


읽다가 뜬금없이 [장자]에서 '혼돈'에 관한 글이 떠올랐다. 이 책과 연결될 것 같지 않은데, 그것은 단절이 아니라 같음을 이야기하는데, 결국은 같은 이야기 아닌가 하는.


혼돈에게 대접을 잘 받은 두 바다의 왕이 자신들에게는 있지만 혼돈에게는 없는 구멍을 만들어주려 한다. 하루 하루 구멍을 만들자 결국 혼돈이 죽어버렸다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혼돈은 이미 다른 바다의 왕들과 다르다. 그들과 단절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이들이 이런 단절을 부정하고 같아져야 한다고 한다. 즉 단절을 거부한다. 그 결과가 바로 혼돈의 죽음이다. (단절을 다름이라고 한다면)


단절은 그런 것이다. 죽음이 최후의 단절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생물이 피해갈 수 없는(불멸을 추구하는 실리콘밸리의 노력이 진행 중이지만...) 숙명이라면 죽음의 당사자는 빼고, 이 죽음으로 인한 단절을 겪는 사람들을 비롯해 살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단절들, 태어남에서부터 사춘기 때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것, 연인과 사귀다 헤어지거나 부부가 이혼하는 경우, 질병 특히 치매와 같은 질병으로 자신을 잃어가는 것 등등이 바로 단절이다.


이 중에 인생에서 겪지 않을 수도 있는 일도 있지만 겪는다고 해서 삶을 포기하거나 무너져 내려서는 안 될 단절들이다. 이 단절들 속에 나란 존재는 단일한 하나만의 존재가 아니라 여러 존재가 있음을, 하여 나 자신조차도 단절되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저자는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단절들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그러면서 결론은 참 단순하다. 각 단절의 순간들은 고통스러울지 몰라도 그 속에서조차 우리는 '기쁨'을 찾을 수 있다는 것. 아니, 기쁨을 찾아야 한다는 것. 저자는 이렇게 말하면서 책을 끝내고 있다.


'삶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 그것은 가능한 모든 기쁨을 느끼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비극적인 밤을 보낼 때조차, 자신 안에 깃든 기쁨의 작은 불꽃을 기억하는 힘을 갖기.'(195쪽) 


그렇다. 우리가 삶에서 겪는 단절들은 그것이 끝이 아니라 또다른 출발을 의미한다. 그러니 단절들 속에서도 기쁨을 찾을 수 있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기쁨을.


너무도 당연하게 들리는 말이지만 단절들을 통해 얻은 상처들이 삶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할 수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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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의 시 (표지 3종 중 랜덤) - (팔레스타인을 위한/향한)
김혜순 외 지음 / 얼굴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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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공존을 향한 시인들의 목소리. 팔레스타인을 향해 응답한 시들. 이 시들로 우리는 팔레스타인과 연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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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숨 - 해양 포유류의 흑인 페미니즘 수업
알렉시스 폴린 검스 지음, 김보영 옮김 / 접촉면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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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마치 시와 같이 들려온다. 속삭이듯이. (번역을 잘했다고 해야 할 듯)


해양포유류 이야기지만, 결국은 인간의 이야기다. 세상 만물은 모두 연결되어 있고, 저자도 말하듯이 지구는 둥글고,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살아가고 있으니.


돌고 도는 삶들. 관계들. 이 돌고 도는 원의 관계를 끊으면 생태계가 위험해진다. 그러한 위험을 초래한 존재가 누구인가? 바로 인간이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또는 단순한 즐거움을 위해 해양포유류를 대량학살했던 과거의 인간. 대놓고 학살하지는 못하지만 그들이 살아갈 서식지를 파괴함으로써 또다른 대량학살을 유발하고 있는 지금의 인간. 해양포유류의 대표격인 고래를 생각해 보자. 인간으로 인해 멸종위기에 처한, 또 이미 멸종한 고래들을...


이러한 학살적 인간과 더불어 그들과 공생하려는 인간도 있다. 이렇게 해양포유류를 보면서 저자는 바로 인간의 이야기를 한다. 인간이 그들과 맺는 관계가 인간이 인간과 맺는 관계와 다르지 않음을.


해양포유류를 인간의 관점에서 재단하고, 그들의 삶을 인간이 주도하려고 하고, 그들에게 쓸모 있음과 없음의 딱지를 붙이는 인간들은, 다른 인간들에게도 그렇게 해왔다는 것.


결국 우리가 다른 종을 대하는 태도는 다른 인간을 대하는 태도와 다르지 않음을, 그래서 해양포유류의 삶을 살피면 인간이 살아가야 하는 방향을 알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때로는 객관적으로, 때로는 서정적으로, 해양포유류에게 말을 거는 듯한 표현을 하기도 하면서 이렇게 모든 존재가 연결되어 있음을, 그 연결고리를 끊으면 안 됨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관점을 지니고 있기에 저자는 용어 하나하나에도 신경쓰고 있다. 차별적인 언어를 쓰지 않으려 하는 것. 그래서 저자에게는 기존에 나와 있던 해양포유류에 관한 책들의 문제가 눈에 들어온다.


'해양포유류에 관한 안내서 연구에서 발견한 주요 사항 중 하나는 인종차별, 성별이분법 등의 억압을 부추기는 언어가 해양포유류에 관한 '과학적' 설명에서도 사용된다는 사실입니다.'(132쪽)


이렇게 과학의 껍질을 쓰고 차별을 조장하는 사례를 우리는 역사에서 많이 보아왔지 않은가. 인간에 대해서도 그랬는데,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에 관해서는 더더욱 심했으리라.


그러니 인간중심의 관점을 버리고 그들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눈을 지녀야 한다. 그런 눈을 지니기 위해서는 먼저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단지 귀로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저자가 처음을 '듣기'로 시작하는데 (저자는 이를 장이라고 하지 않고 주제별 운동이라고 한다) 각 부분의 제목이 그러한 주제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 주제는 '듣기 - 숨쉬기 - 기억하기 - 연습하기 - 협력하기 - 취약해지기 - 존재하기 - 맹렬해지기 - 갈등의 교훈 - 경계 존중하기 - 털 존중하기 - 자본주의 끝내기 - 거부하기 - 항복하기 - 깊이 들어가기 - 감정으로 있기 - 속도 늦추기 - 휴식 - 축복 보살피기 - 활동'이다.


'듣기'로 시작해 '활동'으로 끝난다. 그렇게 듣기의 중요성, 단지 듣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활동으로 나아가야 함을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주장하고 있는데...


해양포유류의 다양한 삶들에서 인간의 삶을 이끌어낸 저자의 통찰력을, 저자의 말 그대로 창발적 전략(21쪽)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해양포유류의 삶에서 어찌 평화만 있겠는가? 그들의 삶에서도 갈등이 있고, 죽음이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것이 대량학살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러한 갈등, 죽음 속에서 자신들의 종만이 아니라 다른 종들과도 맺는 관계들 속에서 인간의 삶을 살필 수 있는 여러 모습이 있다.


어느 한 종이 다른 한 종을 멸절시켰을 때 자신들의 생존에도 문제가 생김을 생각해야 하는데, 하물려 인간들이 인간을 분류하고 배제하고 제거하려 한다면 과연 인간이라는 종이 지속적으로 생존할 수 있을까?


해양포유류가 익사하지 않기 위해서 숨을 쉬는 방법을 찾아냈듯이, 인간 역시 자신들의 숨을 위해 어떻게 다른 존재들과 관계맺으며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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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라예프 사건 ㅣ 빛소굴 세계문학전집 16
빅토르 세르주 지음, 조재룡 옮김 / 빛소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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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성공시키기 보다 유지하기가 더 힘들다. 그만큼 기대가 높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저항하는 존재들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혁명이 성공하면 외부의 위협도 있지만, 내부의 위협도 있다. 이렇게 혁명은 성공 직후 내외적으로 어려움이 발생한다. 외부의 위협이야 명확하니까, 대처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사람들을 설득하기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내부의 위협은 (여기서 내부라 함은 혁명을 이룬 나라의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혁명을 이룬 사람들, 또는 지지자들을 의미한다) 적이 명확하지 않다. 사람들에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혁명의 지지자와 반대자를 구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들 모두 한때 혁명에 가담했던 사람들이기에.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혁명이 성공하고 지속하기 위해서는 내부 단속이 필요하다는, 하나가 되어 나아가야 한다는 쪽이 권력을 잡으면, 그것을 비판하는 세력들은 모두 반혁명 세력이 될 수 있다.


아니 반혁명 세력이라고 불린다. 그들을 용인하면 혁명의 속도가 정체된다. 어떤 때는 후퇴하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른 생각들을 억압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억압은 혁명의 대의에 어긋난다. 혁명이란 무엇인가?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며 행복하게 사는 세상 아닌가?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과 공존하는 사회 아니던가. 이런 사회를 꿈꾸었는데, 내부에서 반발이 나온다고 억압을 한다면 그것은 혁명 정신을 배반하는 것이 아닌가?


이때 택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혁명이 지지부진해지는 책임을 묻는 것이다.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그러면 이중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혁명이 제대로 완수되지 못하는 것이 권력자의 책임이 아니라 반대 세력 때문이며, 동시에 자신의 권력을 위협하는 존재들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방법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은 사건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 그것도 혁명에 반대한다는 의미를 지니는 사건이...


툴라예프라는 고위 관료가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범인이 현장에서 잡히지 않았다. 기회다. 만약 범인이 잡혔어도 그 과정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지만, 잡히지 않아야 일이 더 쉽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관련자로 잡혀들어간다. 그 많은 사람 중에는 권력자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도 있다. 그를 지지했던 사람도 있고, 혁명의 이념에 맹목적인 충성을 바친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을 엮어서 하나의 사건을 만들어낸다.


반혁명 사건... 그 다음은 일사천리다. 만들어낸 사건에 사람들을 집어넣으면 된다. 자백을 받아야 한다. 어떻게? 고문이라는 방법도 또 혁명의 이념에 호소하는 방법도 있다.


여러 방법으로 결국 세 명이 처형된다. 이들이 살인에 가담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권력자에게 위협이 되느냐 아니냐, 권력자의 뜻을 효율적으로 집행했느냐 하지 못했느냐가 중요하다. 또한 이들에게 혐의를 덮어씌움으로써 권력자가 말하는 혁명을 지속시키는 힘을 얻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니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권력자의 의지다. 다음은 권력자의 의지를 실현하는 관료들이다. 그 다음은 이런 사건 결과를 받아쓰기 하는 언론들이다. 이렇게 사건은 만들어지고 결론지어진다. 진실은 없다.


아니, 진실은 있다. 다만 밝히지 않을 뿐이다. 진실이 밝혀져서는 안 된다. 진실은 어둠 속에 묻혀야 한다. 그것이 이 소설이 보여주는 점이다.


이런 사건 과정에 해당하는 인물들을 통해 작가는 그들이 왜 하지도 않은 일을 인정하는지, 그들이 생각하는 혁명이 무엇인지도 생각하게 한다. 권력자에게는 반대하지만 자신이 몸담았던 혁명의 대의는 배반할 수 없다는 신념으로 혐의를 인정하는 사람도 있으니...


개인보다는 당을 생각하는 사람의 모습,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수없이 고민하는 사람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는데, 이 점이 이 소설을 진실을 왜곡하는 사건을 건조하게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 속에서 사람들이 대처하는 여러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러시아 역사 중에서 스탈린 치하의 역사를 알면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기도 한데...  소설 시작 전에 작가의 말인 듯한 '이 소설은 문학적 허구일 뿐이다. 소설가가 창조해낸 진실은 역사학자나 연대기 작가의 진실과 어떤 정도라도 혼동되어서는 곤란하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이 소설을 읽으면서 스탈린 숙청 당시의 사람들과 소설 속 인물을 일 대 일로 대응시키려고 할 필요는 없다. 굳이 대응시키려 하지 않아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고, 또 이것이 단지 스탈린 치하에서만이 아니라 독재자들이 군림하는 사회에서 독재권력을 정당화하고, 공고하게 하기 위해서 벌어졌던 일들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좋은 작품은 현실을 반영하고, 그 반영을 통해서 현실을 겉모습만이 아니라 감춰진 속도 볼 수 있는 관점을 지니게 하는 것이다.


빅토르 세르주의 이 소설 [툴라예프 사건] 하나의 조작 사건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진실이 어떻게 가려지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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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부일기 ㅣ 눈빛사진가선 72
전제훈 지음 / 눈빛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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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거의 사라져가고 있는 탄광촌.


이곳에서 나온 석탄은 여러 연료로 우리에게 다가왔지만 특히 연탄으로 요리를 하거나 추위를 물리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의 일이 되어가고 있다. 연탄이 아직도 곡 필요한 사람들이 있지만,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연탄은 과거의 물건이다. 드라마나 영화, 소설 속에서나 보는.


이런 연탄으로 대표될 수 있는 탄광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광부라고 한다. 이들에 대한 기사가 심심치 않게 나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기사들이 즐거운 기사가 아니라 대부분 사고 기사였으니...


이들의 일터는 너무도 힘든 곳이었다. 막장이라고 했다. 지하로 땅을 파고 들어가 석탄을 캐야 하는 직업. 방진 마스크를 쓰고, 온몸을 잘 가리려고 해도 온몸에 들러붙는 석탄가루들, 몸 속으로 들어오는 미세가루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갱도로 들어갈 때 그들의 모습과 갱도에서 나올 때의 모습은 다르다. 색깔이. 완전히 검은 색으로 뒤덮인 그들의 모습. 그들이 사진기 앞에 서기 좋아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그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이 책에 실려 있다. 사진작가 역시 갱도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이다. 그는 화약기사로 광산에서 일을 한다고 한다. 함께 일하면서 그들의 모습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소중한 기록들. 결코 부끄러워해서는 안 될 노동들. 당당한 그들의 모습이 이 사진집에 있다. 


그렇다. 그들의 노동이 있었기에 우리는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누군가의 힘듦을 바탕으로 편안함을 추구하던 생활. 그러니 더더욱 그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들의 노동을.


지금은 사라져가고 있지만 우리들의 생활에서 필수적이었던 그들의 노동 생산물을... 그런 기록들. 사진으로 남은 기록.


이렇게 사진이라는 기록으로 남아 있도록 한 작가의 노력이 고맙기도 하다. 이런 작가들이 있기에 우리의 과거가 사라지지 않고 기억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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