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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라예프 사건 ㅣ 빛소굴 세계문학전집 16
빅토르 세르주 지음, 조재룡 옮김 / 빛소굴 / 2026년 8월
평점 :
혁명은 성공시키기 보다 유지하기가 더 힘들다. 그만큼 기대가 높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저항하는 존재들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혁명이 성공하면 외부의 위협도 있지만, 내부의 위협도 있다. 이렇게 혁명은 성공 직후 내외적으로 어려움이 발생한다. 외부의 위협이야 명확하니까, 대처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사람들을 설득하기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내부의 위협은 (여기서 내부라 함은 혁명을 이룬 나라의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혁명을 이룬 사람들, 또는 지지자들을 의미한다) 적이 명확하지 않다. 사람들에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혁명의 지지자와 반대자를 구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들 모두 한때 혁명에 가담했던 사람들이기에.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혁명이 성공하고 지속하기 위해서는 내부 단속이 필요하다는, 하나가 되어 나아가야 한다는 쪽이 권력을 잡으면, 그것을 비판하는 세력들은 모두 반혁명 세력이 될 수 있다.
아니 반혁명 세력이라고 불린다. 그들을 용인하면 혁명의 속도가 정체된다. 어떤 때는 후퇴하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른 생각들을 억압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억압은 혁명의 대의에 어긋난다. 혁명이란 무엇인가?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며 행복하게 사는 세상 아닌가?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과 공존하는 사회 아니던가. 이런 사회를 꿈꾸었는데, 내부에서 반발이 나온다고 억압을 한다면 그것은 혁명 정신을 배반하는 것이 아닌가?
이때 택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혁명이 지지부진해지는 책임을 묻는 것이다.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그러면 이중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혁명이 제대로 완수되지 못하는 것이 권력자의 책임이 아니라 반대 세력 때문이며, 동시에 자신의 권력을 위협하는 존재들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방법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은 사건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 그것도 혁명에 반대한다는 의미를 지니는 사건이...
툴라예프라는 고위 관료가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범인이 현장에서 잡히지 않았다. 기회다. 만약 범인이 잡혔어도 그 과정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지만, 잡히지 않아야 일이 더 쉽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관련자로 잡혀들어간다. 그 많은 사람 중에는 권력자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도 있다. 그를 지지했던 사람도 있고, 혁명의 이념에 맹목적인 충성을 바친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을 엮어서 하나의 사건을 만들어낸다.
반혁명 사건... 그 다음은 일사천리다. 만들어낸 사건에 사람들을 집어넣으면 된다. 자백을 받아야 한다. 어떻게? 고문이라는 방법도 또 혁명의 이념에 호소하는 방법도 있다.
여러 방법으로 결국 세 명이 처형된다. 이들이 살인에 가담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권력자에게 위협이 되느냐 아니냐, 권력자의 뜻을 효율적으로 집행했느냐 하지 못했느냐가 중요하다. 또한 이들에게 혐의를 덮어씌움으로써 권력자가 말하는 혁명을 지속시키는 힘을 얻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니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권력자의 의지다. 다음은 권력자의 의지를 실현하는 관료들이다. 그 다음은 이런 사건 결과를 받아쓰기 하는 언론들이다. 이렇게 사건은 만들어지고 결론지어진다. 진실은 없다.
아니, 진실은 있다. 다만 밝히지 않을 뿐이다. 진실이 밝혀져서는 안 된다. 진실은 어둠 속에 묻혀야 한다. 그것이 이 소설이 보여주는 점이다.
이런 사건 과정에 해당하는 인물들을 통해 작가는 그들이 왜 하지도 않은 일을 인정하는지, 그들이 생각하는 혁명이 무엇인지도 생각하게 한다. 권력자에게는 반대하지만 자신이 몸담았던 혁명의 대의는 배반할 수 없다는 신념으로 혐의를 인정하는 사람도 있으니...
개인보다는 당을 생각하는 사람의 모습,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수없이 고민하는 사람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는데, 이 점이 이 소설을 진실을 왜곡하는 사건을 건조하게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 속에서 사람들이 대처하는 여러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러시아 역사 중에서 스탈린 치하의 역사를 알면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기도 한데... 소설 시작 전에 작가의 말인 듯한 '이 소설은 문학적 허구일 뿐이다. 소설가가 창조해낸 진실은 역사학자나 연대기 작가의 진실과 어떤 정도라도 혼동되어서는 곤란하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이 소설을 읽으면서 스탈린 숙청 당시의 사람들과 소설 속 인물을 일 대 일로 대응시키려고 할 필요는 없다. 굳이 대응시키려 하지 않아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고, 또 이것이 단지 스탈린 치하에서만이 아니라 독재자들이 군림하는 사회에서 독재권력을 정당화하고, 공고하게 하기 위해서 벌어졌던 일들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좋은 작품은 현실을 반영하고, 그 반영을 통해서 현실을 겉모습만이 아니라 감춰진 속도 볼 수 있는 관점을 지니게 하는 것이다.
빅토르 세르주의 이 소설 [툴라예프 사건] 하나의 조작 사건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진실이 어떻게 가려지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