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소설, 한국을 말하다 ㅣ 소설, 한국을 말하다
성해나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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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한국을 말하다] 두 번째 책이다. 2024년에 나온 소설집을 읽고, 이렇게 한국의 상황을 작가들이 작품으로 표현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단 생각을 했다.


신문에 연재하고, 그 결과물을 단행본으로 냈다고 하는데, 신문에 연재한다는 조건인지 분량이 매우 짧다. 아주 짧은 소설들. 어떤 이는 엽편(葉片) 소설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손바닥 소설이라고도 하는데, 예전에는 그냥 외래어를 써서 '콩트conte'라고 하기도 했었다.


생각해 보라. 이번 소설집은 214쪽인데, 참여한 작가가 19명이다. 즉 19명의 작가가 214쪽에 걸쳐, 그것도 기획의 말이 9쪽까지 있고, 각 소설이 시작하기 전에 한 장에 걸쳐서 작가 소개와 제목이 있으니 한 소설 당 10쪽 정도의 분량이라고 보면 된다. 


10쪽 정도의 분량에 한국 현실을 담고 있다? 신문에 한번에 연재가 끝나야 한다면 이 정도 분량일 수밖에 없고, 이 정도 분량이면 묘사보다는 설명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 이런 설명, 요약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김기태가 '효율'이라는 주제로 쓴 '진취적 시민을 위한 15분 읽기'라는 작품이다.


아예 이 작품에서는 묘사를 포기한다. 요약 설명을 하겠다고 대놓고 선전한다. 바쁜 시대, 빠름을 추구하는, 느림이란 비효율적이라는 이 시대를 반영한다고 작가는 이렇게 썼다. 


'나는 이 '소설, 한국을 말하다' 지면의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실제로는 약 250장인 소설 전문을 압축하여 그 줄거리와 주제만 설명하기로 했다. 독자들은 단지 소설처럼 보이려고 늘어놓은 묘사들을 애써 읽을 필요없이 핵심만 취하면 되겠다. 즉 이것은 소설 읽어주는 소설이다.'(김기태, '진취적 시민을 위한 15분 읽기'에서. 이 책 29쪽.)


이런 소설들이 모여 있다. 하여 소설집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책의 편집이나 기획 자체가 요즘 추세에 맞게 쇼츠(반바지라는 뜻이 아니라 짧은 영상이라는 뜻으로)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내용이 조금만 길어져도 다른 영상으로 넘어가는 모습들. 하여 짧은 영상들, 누구 말대로 3초 안에 시선을 잡지 못하면 실패한 영상이라고 하는 쇼츠들의 홍수 속에서 소설 역시 긴 흐름의 장편소설보다는 짧은 소설이 더 잘 읽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점들을 떠나서 이렇게 쇼츠와 비슷한 이 소설집은 우리에게 2026년 한국에서 무엇이 문제가 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 점에서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문제점을 우선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니까.


문제를 인식한 다음에는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마음이 생길 수도 있겠지. 아무리 쇼츠가 유행하는 이 시대라 해도, 쇼츠로 인해 흥미를 느낀 점을 좀더 자세히 알아보려는 사람이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이 소설집에서 다루는 2026년 한국의 문제는 무엇일까. 무엇이 지금 우리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가. 주제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주제 역시 작가 수에 맞게 19개다.


'인공지능, 효율, 갓생, 탈덕, 도파민 중독, 배달 음식, 챗GPT, 나이 듦, 7세고시, 입시, 퇴사, 불임, 금쪽이, 정치 갈등, 계엄, 그루밍, 노벨문학상, 목소리, 전세 사기'


하나같이 지금 한국에서 다루지 않으면 안 될 문제들이다. 그것을 작가들이 자신의 관점에서 아주 무겁지 않게 툭 툭 작품을 통해 건드려주고 있다.


자, 이게 한국에서 사람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이야. 이것이 우리 현실이야. 이런 현실을 무시할 수 있어? 하는 듯하다.


짧은 분량으로 결말을 내지 않는다. 아니, 결말을 낼 수 없다. 모두 진행 중인 문제이기에. 다른 사람들만이 겪는 일이 아니라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고, 또 겪어야 할 일이니까. 겪어야 할 일에서 이 중 몇몇이라도 빠졌으면 좋으련만, 빠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그것 또한 문제다.


이 작품 중에 좀 섬뜩한 느낌이 드는 결말을 지닌 작품이 성혜령이 '도파민 중독'을 주제로 쓴 '방콕'이란 소설이다. '방콕'이 사람들이 여행을 자주 가는 태국의 방콕이 아니라 '방에 콕 박혀 있다'는 뜻의 방콕이다. 


그러니 '방콕'이라는 말에는 외부에 관심을 끊고 자신의 세계에서만 지낸다는 의미도 들어 있다. 자신의 세계에서 지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도파민'이다. 즉 자신의 기분을 좋은 상태로 유지해주는 요소가 있어야 하고, 그러한 상태에서는 외부의 일에 대해서는 무관심할 수밖에 없다.


외부에서 끊임없이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를 보내도 나는 도파민에 중독되어 외부로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하기는 해도 행동으로 나서지는 않는다. 그냥 방 안에서 스마트폰을 통해 남들에게 물을 뿐이다. 이 역시 방콕을 벗어나지 않는 행위다.


직접 부딪히는 이웃의 일에 관심이 없고, 오로지 이웃이 자신을 방해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니 이웃의 신호를 알 수가 없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렇게 작가는 '방콕'이란 소설을 통해서 도파민에 중독된 우리들이 어떻게 외부와의 관계를 끊고 단절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도파민'에 해당하는 것들이 지금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짧은 소설이지만 긴 울림을 주는 소설이다.


이 작품집에 실린 소설들이 이 소설과 마찬가지로 짧지만 그 속에 담겨 있는 내용들을 상상으로 채워가기 시작하면 무지무지하게 긴 소설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긴 소설은 바로 우리가 삶에서 살아가면서 쓰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 소설을 읽고 우리 사회를, 자신의 삶을 다시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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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번역가의 이중생활
알라 알카이시 지음, 서제인 옮김 / 글항아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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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번역은 잊혀지는 것에 대한 기억이고, 보지 않으려 하는 것을 보게 하는 저항임을 잘 보여주고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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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킬 제너레이션 - AI 시대, 생존을 위한 언어력 수업
김재인 지음 / 오리지널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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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보라. 믿을 수 있겠는가? 혹시 가짜 뉴스 아니냐고? 아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우리나라는 문맹률이 거의 0에 가까운 나라니까. 하지만 문맹률과 문해율을 구분해야 한다. 단지 글자를 읽을 줄 안다는 것과 글자를 읽고 그 의미를 이해한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니까.


'2024년 12월 10일자 <<이코노미스트>>는 '성인이 읽는 법을 잊어가고 있나?'라는 기사에서 OECD의 2023년 조사 결과를 소개합니다. 조사는 언어력, 수리력, 응용문제 해결력 등 세 가지 능력에 대해 이루어졌습니다. 그중 언어력에 관련해서 충격적인 내용은, 28%의 한국 성인의 언어력이 10세 아이 수준에 못 미친다는 것입니다. (OECD 평균은 25%), 반면 고급 수준의 성인은 7%에 불과했습니다.(OECD 평균은 14%)' (23쪽)


이런 상태라면 저자의 말처럼 탈숙련 세대의 등장이라고 할 수 있다. 책 제목인 '디스킬 제너레이션 The Deskill Generation'은 이렇게 인간이 지닌 기본적인 능력이라 할 수 있는 읽기 능력이 퇴화된 세대를 의미한다.


왜 읽기 능력이 퇴화되었을까? 아니 퇴화가 아니라 10세 수준에서 더 이상의 발달을 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는데, 인공지능과 같은, 또는 스마트폰을 공기처럼 여기는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10세 수준이 아니라 더 낮은 연령 대로 낮추어야 할지도 모른다.


왜냐? 생각을 하지 않으니까. 그냥 입력만 하면 출력이 되니까. 너무도 편하게 결과물을 얻을 수 있으니 굳이 힘들게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과제도 마찬가지다. 인공지능에게 맡기면 된다. 그러면 빠른 시간 안에 과제를 해결하고 나머지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이때 자신이 원하는 일이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일들이었으면 좋겠지만, 원하는 일 또한 생각을 하지 않는, 힘들지 않고 쉽고 빠르게 할 수 있는 일들이 태반이니 더욱 생각할 틈이 없다.


이러니 점점 생각을 하지 않게 되고, 어려운 글을 읽으려 하지 않으니 언어력이 떨어질 수밖에. 저자는 언어력을 단순한 어휘 구사와 이해 능력으로 국한시키지 않는다. 언어력에는 수학, 과학, 철학 등이 포함된다.


즉 언어력은 글자를 이해하는 차원을 넘어서 세상을 이해하는 능력인 것이다. 이 언어력은 그래서 소통력, 협업력으로 나아가게 된다. 우리가 흔히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는 말 그대로 언어력과 소통력, 협업력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그러한 요소를 인공지능에게만 맡길 수 있는가? 자신의 모든 것을 인공지능에게 맡기면 언어력이나 소통력, 협업력이 길러질까? 아니다. 절대로 그럴 수 없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인간의 언어력, 소통력, 협업력은 점점 줄어들고, 인공지능의 능력은 나날이 발전해 갈 테니, 그 결과는 우리가 우려하는 쪽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인공지능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필요에 의해 우리의 능력을 보강해주는 존재로 인공지능을 활용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의 능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


이 능력 키움이 그냥 되는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렵고 지겹고 괴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지식을 암기하기도 해야 한다. 무언가 자신이 알고 있어야 검증할 수 있지 않겠는가.


자신이 모르면서 인공지능에게 의존하다 보면 어느새 인공지능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지금, 성인들의 읽기 능력이 떨어진 것도 딱히 인공지능 탓이라고 할 수 없지만, 인공지능 전에 나온 온갖 스마트 기기들이 원인을 제공했을 수는 있다.


그래서 스마트 기기를 어린 시절에는 규제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단지 어린 시절만이 아니라 어른이 되어서도 전적으로 스마트 기기 또는 인공지능에 의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결국 우리 인간이 생각의 근육을 키워야 하는데, 그런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것이 인공지능과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함께 읽기, 쓰기, 말하기, 듣기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여 저자는 언어력을 기르는 법으로 세 단계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독해력, 소통력, 협업력'을 키우는 단계다. 읽고 이해하고 상대와 소통을 하면서 함께 무언가를 이루어나가는 것, 이것이 바로 인간의 사회 생활이고, 이것을 이루는 기본적인 요소가 바로 언어이니, 언어력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사회에 잘 적응해서 살아가는 중요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인공지능에만 의존하지 말고... 인공지능이 지니고 있지 못한(적어도 현재까지는) 것이 바로 '취향'이라고 한다. 즉 취향은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중요한 것을 고르는 내적 일관성 coherence'(212쪽)이라고 한다. 이러한 취향은 '노이즈 속에서 특별한 신호를 식별해내는 능력'(212쪽)이니, 인간이 이러한 '취향 지능'을 지니게 된다면 인공지능 시대에 길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자, 이 책을 읽어보자. 앞으로 인공지능 시대가 될 것이니 힘들게 공부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사람, 생각을 바꾸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가 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 공부를 해야 한다.


내가 더 많이 알면 알수록 인공지능은 내 능력을 더 강화시켜 줄 것이지만 내가 알지 못하고 있으면 나는 인공지능에게 의존하는 종속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이 점을 저자는 책을 통해 강조하고 있으니...


인공지능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도 우리 생각의 근육을 키우자. 기본적인 지식은 외부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 있도록 머리 속에 집어넣자. 적어도 기본적인 지식은 내면화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를 인공지능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을 내 필요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저자의 주장이다.


또한 그렇게 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언어력(소통력, 협업력)을 키워야 한다. 이런 언어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이 이 책에 구체적으로 나와 있으니,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언어력이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필수적이라는 사실, 이 점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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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티
패티 스미스 지음, 정혜윤 옮김 / 아트북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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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가수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관심이 없으니 기껏 아는 가수라고 해야 '마이클 잭슨, 밥 딜런' 정도였다고 할까. 이들보다는 조금 더 많은 사람을 알고 있지만 거기서 거기다. 그들 음악 중에 밥 딜런의 음악 말고는 제대로 들었다고 할 수 있는 노래가 없으니...


그런데 어떤 책이 좋을까 검색을 하다가 순간 이 책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낡은 드레스를 입고 있는 사람의 모습. 책 제목이 '패티'다. 그렇담 이 사람이 패티겠군. 패티하면 우리나라 가수 '패티 김'이 떠오르는데,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표지 사진이 독특해서, 이 사람의 세계 역시 단순하지 않겠구나, 한번 읽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첫장을 넘기니 노래 부르는 사진과 그 옆 장에 '장애물이 우리의 날개다'라는 니콜라이 고골의 문장이 나온다. 


장애물, 그렇다.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도 있지만 장애물을 넘어 나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대부분 장애물을 넘어서 나아간 사람들이 우리에게 이름을 남긴다. 그냥 평탄한 삶을 산 사람이 아니라.


책의 시작이 이러니, 패티란 가수, 분명히 많은 고난을 겪었으리라. 어떤 고난을 겪었는지,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음악활동을 했는지 이 책을 읽으면 알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


시작하자마자 순식간에 읽게 된다. 중간에 끊기 싫어진다. 와, 이 사람, 이런 과정을 거쳐서 자신의 자리를 잡았구나, 단순히 노래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좋은 쪽으로 바꾸려고 노력했구나.


그런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 또 자신의 음악을 지키기 위해서 포기해야 했던 것들. 또한 삶을 위해 노래를 포기해야 했던 순간, 다시 노래로 돌아오는 과정이 이 책에서 펼쳐진다.


패티 스미스라는 가수의 일생이 책에 담겨 있다고 보면 된다. 출생에서 최근의 모습까지. 한 사건 사건이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진술되기보다는, 전 생애를 담고 있기에 스치듯 지나가는, 회고조의 내용인데도 읽기에 몰입이 된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통해서 가족 간의 끈끈한 유대, 그리고 자신을 끝까지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동생들과의 관계. 남편과의 만남과 사별. 다른 음악가들과의 만남과 활동들... 이들 중에 내가 아는 이름도 꽤 나온다. 특히 밥 딜런과의 인연... 패티 스미스는 밥 딜런과의 만남을 이렇게 쓰고 있다.


'밥 딜런은 여전히 내 마음속 롤모델이었고, 내가 그보다 더 동질감을 느낀 사람은 없었다'(127쪽)고. 나중에 밥 딜런과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고 하니... 내가 모르고 있었지 음악을 좀 안다고 하는 사람에게 패티 스미스는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냥 넘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니구나. 이런 가수가 있었구나. 자신의 음악 세계를,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꾸준히 일해왔던 사람이 바로 패티 스미스구나 하는 생각. 이런 활동들로 인해 패티 스미스는 2007년 로큰롤 명예의전당에 헌액되었다고 하니 음악으로 인정을 받은 사람이다.


게다가 글과 한시도 멀어지지 않았던 사람, 자신의 고민이 있었을 때 또 삶 내내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남긴 사람. 그러니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정리해서 책으로도 펴낼 수 있었으리라.


젊은시절, 한참 반항의 혹이 왕성할 때 패티는 자신의 방에 이런 글귀를 적어놓았다고 한다. 


'우리는 예술/쥐들이다. 불결한 개새끼들이고, 우리가 탕진하는 말들이다'(124쪽)


이런 자세로 누구에게 끌려가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간 사람. 이런 패티에게 장애물은 자신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40이 넘어서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이 하나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뜨는 비극, 자신들이 아무리 외쳐도 전쟁이 끝나지 않는 상황에서 좌절도 한다. 그럼에도 해야할 일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 그렇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처음에 나온 '장애물이 우리의 날개다'라는 말을 평생 실천하면서 살아왔던 패티 스미스를 대변하는 말이다.


자신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패티는 '반항의 혹 반항의 혹 반항의 혹'이란 말을 쓴다. 이 반항이라는 말, 결국 장애물에 굴하지 않고 나아간다는 말이다. 그렇게 자신의 삶은 반항의 혹을 잃지 않고 나아가는 삶. 그런 삶을 살았던 사람의 이야기. 그것이 바로 이 책이다.


나처럼 패티 스미스를 잘 몰라도 이 책을 읽으면서 그를 알아가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검색하면 패티 스미스의 노래도 들을 수 있으니, 한두 번 들어도 좋겠다. 들으면서 그의 삶을, 또 그가 바라던 세상을... 이제 누가? 바로 우리가 이어서 만들어가려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우리에게도 많은 장애물들이 있겠지. 그 장애물은 우리에게 현실에 안존하라고, 그냥 그 자리에 머물라고 한다. 그때 패티 스미스가 쓴 이 문장 '반항의 혹'을 생각하면 된다.


반항, 저항, 그것이 장애물을 극복하는 길이고, 또 세상을 바꾸는 힘이지 않겠는가. 패티 스미스가 세계 전역을 돌며 평화를 노래했다고 하는데,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세계를 순회하면 평화의 메시지를 보내는 음악인들이 있으니...


패티 스미스의 삶은 본인에게만 또 그가 살았던 나라에만 국한되지 않고 이렇게 세계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기회가 되면 패티 스미스가 쓴 또 다른 책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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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로 보는 페미니즘 미술
고경옥 지음 / 현실문화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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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페미니즘을 미술 전시를 통해 실현했던 과정을 살펴본 책이다. 페미니즘이라는 말에서 연상할 수 있듯이 주로 여성 작가들의 전시를 다루고 있다. 그렇지만 페미니즘 전시가 여성 작가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남성 작가들도 참여하고 있음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즉 페미니즘이란 특정 성만이 주장하는 이론이나 실천이 아니라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성의 구분을 떠나서 사람들이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보장하고 누려야 한다는 주장이자 실천이다. 그러니 페미니즘을 특정 성으로 가두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이야 페미니즘에도 다양한 이론이 있고, 다양한 실천이 있으며, 이들이 같지 않음을 인정하고 있지만 한때 페미니즘을 단일한 운동으로 생각한 적도 있었다.


이렇게 단일한 운동으로 생각하면 페미니즘이 지닌 다양성을 보지 못하게 된다. 페미니즘 자체가 다양성을 포함하고 있는 운동이고, 나만큼이나 다른 존재들도 중요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운동이니, 어느 범주로 국한시켜 다른 범주들을 배제하는 것은 페미니즘과 맞지 않다.


이 책에 실린 여러 전시들을 보면 그 점을 뚜렷하게 알 수 있다. 여러 전시를 통해서 페미니즘 미술을 보여줬다고 하지만, 그들이 전시한 작품들을 보면 표현기법에서부터 주제까지 너무도 다양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함,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하는 모습. 이것이 바로 페미니즘 미술이고, 또 페미니스트들이 지녀야 할 자세 아니던가.


하여 이들 전시에는 페미니즘을 강조했다고 비판을 받는다든지, 페미니즘적 요소가 부족하다고 비판을 받기도 하고, 또 서로 다른 작품들이 한 공간에서 전시되는 바람에 전시의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한다.


하지만 그런 전시가 바로 페미니즘의 실천 아니겠는가. 어느 하나로 가두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열려 있는, 다름을 받아들이는 전시들.


많은 전시들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고, 그런 전시들이 어떻게 페미니즘과 연결되는지, 주요 작가들은 누구인지 잘 설명해주고 있는 책이다.


여기에 서울에서의 전시만이 아니라 부산에서 활동한 작가들에게도 한 장을 할애해서 설명하고 있으니, 이런 책의 구성 역시 페미니즘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페미니즘을 표방한 미술 활동이 서울에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오히려 다른 지역에서도 활발한 활동들이 이루어졌을 텐데, 그에 대한 연구들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그런 현실에서 부산 지역의 전시를 살펴봄으로써 지역을 확대한 점이 이 책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연구를 확장해서 부산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이루어진 전시들에 대한 연구, 그것들이 지닌 의미를 찾는 연구들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좋은 점은 지금은 만날 수 없는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인데, 바로 이 점이 아쉬운 점이 되기도 한다. 많은 경우 작품이 사라져 지금은 볼 수 없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자로만 남은 그림이나 또는 설명을 통해서 이런 그림이겠지 하고 짐작할 수밖에 없는 그림들이 있는데, 그나마 이렇게라도 이름이라도 남은 작품은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당대에 전시되었음에도 역사에서 사라져버린 작품들이 얼마나 많을까. 지금은 전시회에 도록들이 잘 되어 있어 작품들이 사진으로도 남겨지지만 당시에는 사진으로도 남지 않은 작품들이 꽤 있었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고, 자신들의 주장을 살린 전시회를 오랫동안 개최해왔다는 사실. 그러한 활동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 우리 미술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 책에 나온 80-90년대 페미니즘 전시를 했던 모임들... <시월 모임>, <터>, <30캐럿> <그리뮤패 둥지>, <만화패 미얄> 그리고 '여성미술연구회' 여기에 부산에서 활동했던 미술가들과 그들이 협업해서 했다는 전시 <99여성미술제:팥쥐들의 행진>


이런 여러 전시에 대한 설명을 만나볼 수 있는 책. 더불어 각 전시회에 참여했던 작가들과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 우리가 지나온 과거에 페미니즘이 미술작품의 전시를 통해 어떻게 실천되고 있었던가를 보여주는 책이다.


그림 하나를 보자. <시월 모임>의 두 번째 전시, [반에서 하나로]에 나온 작품이라고 한다. 제목이 현모양처인데... 과연 여성을 동등한 대상으로 대하고 있었는지, 과거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고 , 지금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고경옥, 전시로 보는 페미니즘 미술. 현실문화연구(....A). 2026년. 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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