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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소설, 한국을 말하다 ㅣ 소설, 한국을 말하다
성해나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6년 4월
평점 :
[소설, 한국을 말하다] 두 번째 책이다. 2024년에 나온 소설집을 읽고, 이렇게 한국의 상황을 작가들이 작품으로 표현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단 생각을 했다.
신문에 연재하고, 그 결과물을 단행본으로 냈다고 하는데, 신문에 연재한다는 조건인지 분량이 매우 짧다. 아주 짧은 소설들. 어떤 이는 엽편(葉片) 소설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손바닥 소설이라고도 하는데, 예전에는 그냥 외래어를 써서 '콩트conte'라고 하기도 했었다.
생각해 보라. 이번 소설집은 214쪽인데, 참여한 작가가 19명이다. 즉 19명의 작가가 214쪽에 걸쳐, 그것도 기획의 말이 9쪽까지 있고, 각 소설이 시작하기 전에 한 장에 걸쳐서 작가 소개와 제목이 있으니 한 소설 당 10쪽 정도의 분량이라고 보면 된다.
10쪽 정도의 분량에 한국 현실을 담고 있다? 신문에 한번에 연재가 끝나야 한다면 이 정도 분량일 수밖에 없고, 이 정도 분량이면 묘사보다는 설명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 이런 설명, 요약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김기태가 '효율'이라는 주제로 쓴 '진취적 시민을 위한 15분 읽기'라는 작품이다.
아예 이 작품에서는 묘사를 포기한다. 요약 설명을 하겠다고 대놓고 선전한다. 바쁜 시대, 빠름을 추구하는, 느림이란 비효율적이라는 이 시대를 반영한다고 작가는 이렇게 썼다.
'나는 이 '소설, 한국을 말하다' 지면의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실제로는 약 250장인 소설 전문을 압축하여 그 줄거리와 주제만 설명하기로 했다. 독자들은 단지 소설처럼 보이려고 늘어놓은 묘사들을 애써 읽을 필요없이 핵심만 취하면 되겠다. 즉 이것은 소설 읽어주는 소설이다.'(김기태, '진취적 시민을 위한 15분 읽기'에서. 이 책 29쪽.)
이런 소설들이 모여 있다. 하여 소설집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책의 편집이나 기획 자체가 요즘 추세에 맞게 쇼츠(반바지라는 뜻이 아니라 짧은 영상이라는 뜻으로)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내용이 조금만 길어져도 다른 영상으로 넘어가는 모습들. 하여 짧은 영상들, 누구 말대로 3초 안에 시선을 잡지 못하면 실패한 영상이라고 하는 쇼츠들의 홍수 속에서 소설 역시 긴 흐름의 장편소설보다는 짧은 소설이 더 잘 읽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점들을 떠나서 이렇게 쇼츠와 비슷한 이 소설집은 우리에게 2026년 한국에서 무엇이 문제가 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 점에서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문제점을 우선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니까.
문제를 인식한 다음에는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마음이 생길 수도 있겠지. 아무리 쇼츠가 유행하는 이 시대라 해도, 쇼츠로 인해 흥미를 느낀 점을 좀더 자세히 알아보려는 사람이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이 소설집에서 다루는 2026년 한국의 문제는 무엇일까. 무엇이 지금 우리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가. 주제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주제 역시 작가 수에 맞게 19개다.
'인공지능, 효율, 갓생, 탈덕, 도파민 중독, 배달 음식, 챗GPT, 나이 듦, 7세고시, 입시, 퇴사, 불임, 금쪽이, 정치 갈등, 계엄, 그루밍, 노벨문학상, 목소리, 전세 사기'
하나같이 지금 한국에서 다루지 않으면 안 될 문제들이다. 그것을 작가들이 자신의 관점에서 아주 무겁지 않게 툭 툭 작품을 통해 건드려주고 있다.
자, 이게 한국에서 사람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이야. 이것이 우리 현실이야. 이런 현실을 무시할 수 있어? 하는 듯하다.
짧은 분량으로 결말을 내지 않는다. 아니, 결말을 낼 수 없다. 모두 진행 중인 문제이기에. 다른 사람들만이 겪는 일이 아니라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고, 또 겪어야 할 일이니까. 겪어야 할 일에서 이 중 몇몇이라도 빠졌으면 좋으련만, 빠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그것 또한 문제다.
이 작품 중에 좀 섬뜩한 느낌이 드는 결말을 지닌 작품이 성혜령이 '도파민 중독'을 주제로 쓴 '방콕'이란 소설이다. '방콕'이 사람들이 여행을 자주 가는 태국의 방콕이 아니라 '방에 콕 박혀 있다'는 뜻의 방콕이다.
그러니 '방콕'이라는 말에는 외부에 관심을 끊고 자신의 세계에서만 지낸다는 의미도 들어 있다. 자신의 세계에서 지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도파민'이다. 즉 자신의 기분을 좋은 상태로 유지해주는 요소가 있어야 하고, 그러한 상태에서는 외부의 일에 대해서는 무관심할 수밖에 없다.
외부에서 끊임없이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를 보내도 나는 도파민에 중독되어 외부로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하기는 해도 행동으로 나서지는 않는다. 그냥 방 안에서 스마트폰을 통해 남들에게 물을 뿐이다. 이 역시 방콕을 벗어나지 않는 행위다.
직접 부딪히는 이웃의 일에 관심이 없고, 오로지 이웃이 자신을 방해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니 이웃의 신호를 알 수가 없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렇게 작가는 '방콕'이란 소설을 통해서 도파민에 중독된 우리들이 어떻게 외부와의 관계를 끊고 단절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도파민'에 해당하는 것들이 지금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짧은 소설이지만 긴 울림을 주는 소설이다.
이 작품집에 실린 소설들이 이 소설과 마찬가지로 짧지만 그 속에 담겨 있는 내용들을 상상으로 채워가기 시작하면 무지무지하게 긴 소설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긴 소설은 바로 우리가 삶에서 살아가면서 쓰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 소설을 읽고 우리 사회를, 자신의 삶을 다시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