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두발 ㅣ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48
카렐 차페크 지음, 정보라 옮김 / 휴머니스트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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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번역판이 나왔다. 읽지는 않았지만 2013년에 '지식을만드는지식' 출판사에서 발간했다. 그러다 시일이 지난 다음 소설가 정보라의 번역으로 새로운 판이 나왔다. 예전 판을 읽지 않았으니 이번 판은 읽어야지. 누구 작품인가? 카렐 차페크 작품 아닌가. 누구 번역인가? 정보라 번역 아닌가. 소설가니까 소설의 묘미를 살리는 번역을 했겠지 하는 믿음.


그렇게 차페크의 철학소설 3부작이라고 하는 소설, 이 소설에 첫소설이니 읽기 시작. 처음부터 사건의 결말이 보였다고 생각했다. 이거 뭐야? 불륜 소설이야? 아니 불륜으로 인한 치정 살인?


설마? 이렇게 결말이 뻔히 보이는 소설이라고? 그런데 왜 소설이 1ㅡ2ㅡ3권으로 나누어 있지? 뭔가 반전이 있나? 지금까지 읽었던 차페크 소설들엔 멋진 반전이 있었는데... 게다가 이 소설엔 철학소설 3부작이라는 이름도 있지 않은가.


1권에서 호르두발의 행동에 답답함을 느끼면서 읽어가는데, 아, 이렇게 노동자들의 삶이, 과거 자신의 삶을 지키려는 그의 노력이 헛되게 되는 장면, 세상이 변해가는데, 과거를 고수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가 지키려는 삶의 방식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


변해가는 세상, 하지만 지켜야 할 자신의 삶.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 그리고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문맹이라 편지를 보내지 못하고 떨어져 있던 삶. 외국에서 돈을 부치다 부치지 못하고, 그렇다고 소식도 전하지 못하고 8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호르두발.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중동으로 일하러 간 사람들이 있었다. 호르두발과 같이 돈을 벌기 위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자신들의 고향을 등지고, 자신들이 그동안 살아왔던 삶과는 다른 삶으로 나아간 사람들.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사람들. 하지만 우리는 남겨진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저 보내주는 돈으로 편하게 살았겠거니 한다. 그들이 겪어야 하는 일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1권은 호르두발의 시점에서 전개가 된다. 그럴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8년을 일하다 집으로 돌아온 호르두발에게는 거리를 두는 딸과 자신을 존중하는 것 같지만, 자신에게 전혀 살갑게 대하지 않는 아내가 있을 뿐이다.


여기에 하인이라고 하는 사람, 그가 하는 일은 자신이 과거에 하던 일과는 전혀 다르다. 자신이 아끼던 밭마저도 팔아버렸다. 삶의 방식이 달라진 집이다.


삶의 방식이 달라졌음에도 호르두발은 과거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내를 믿고 딸도 언젠가는 자신에게 살가워질 것이라고 기대를 한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싸늘한 반응. 친구들의 말은 호르두발의 기대와는 다르다. 모든 것이 변했다. 삶의 방식도 아내도.


어떻게 할 것인가? 보통은 아내를 꼼짝하지 못하게 하거나 그 시대 남자들이 쉽게 생각했던 것처럼 아내를 폭행할 수도 있다. 가부장적인 시대고, 아내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마을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고, 그 정부가 바로 집에 있는 하인이라는 사실이니...


호르두발은 자신이 잘하면 아내가 돌아올 것이라고, 자신이 해왔던 삶의 방식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자신이 죽을 것을 대비해 유언장을 쓰는데, 거기에 모든 재산을 아내에게 준다는, 이유를 바로 '부부간의 정절과 사랑에 대한 보답'이라고 적는다.


마을 사람들과 달리 그는 아내를 믿고, 자신의 삶이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에게 온 것은 죽음.


2권은 이 죽음을 둘러싼 수사로 진행된다. 용의자가 특정되고 증거들이 하나하나 모이게 된다. 여기서 호르두발은 없다. 그가 지닌 마음, 그가 한 행동은 사라지고, 범죄 현장과 범인이 어떻게 살인을 했는지, 이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만 남는다.


가정 일이라고 이것은 참 복잡한 문제라고 하는 헌병도 있지만 모든 것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고 하는 헌병도 있다.


세상 일이 간단명료하게 정리되면 좋겠지만 과연 그런가? 호르두발이 어떤 마음을 지녔는지, 그가 아내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중요하지 않다. 명확하게 결론을 내고 싶어하는 헌병에게는 사건만이 있을 뿐이다. 사람은 없다. 


아내가 어떻게 8년을 지냈는지, 호르두발이 돌아왔을 때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8년 동안의 삶과 앞으로 펼쳐질 삶에 대해서, 그리고 하인인 슈테판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등등에 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하인인 슈테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 


사건은 있지만 사람은 없다. 이것이 헌병, 특히 신참 헌병이 지닌 태도다. 이와 좀 다른 관점을 지닌 것이 시골에서 자란 고참 헌병이다. 그는 사건의 복잡성을 안다. 삶의 복잡성도 안다. 하지만 그는 사건을 조사해야 할 헌병이다. 신참과 함께할 수밖에 없다.


3권으로 가면 재판이다. 재판 역시 마찬가지다. 여러 증인들이 나온다. 이 증인들, 자신들이 보고자 하는 것만 본 사람들. 자신들의 잣대로 상대를 평가한다. 시골 마을에서 불륜은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 특히 여성에게는 더더욱. 마을 여성들이 특히 호르두발의 아내 폴라나를 적대한다.


용서할 수 없는 여자. 그들의 증언은 그렇게 흘러가고, 호르두발의 유언장이 증거로 채택이 되지만 변호인이 판단하는 내용과 검사가 판단하는 내용이 전혀 다르다. 같은 유언장임에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마니.


재판에서도 호르두발은 없다. 호르두발 사건을 둘러싼 사람들의 반응만이 있을 뿐이다. 하여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증거는 명확하기에.


다만 이 과정에서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 호르두발이 지녔던 마음, 그가 했던 행동은 묻혀버리고 만다. 


바로 이것이다. 삶의 복잡성. 사람의 복잡함. 사람을 어느 하나로 규정지을 수 없음을, 도대체 그 사건이 일어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중첩이 되는지,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오가는지, 그것을 알 수 없다는.


하여 작가는 1권에서 호르두발의 심리를 펼쳐보이지만, 아내 폴라나나 하인인 슈테판의 마음은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호르두발이 아무리 애를 써도 이들의 마음은 알 수가 없다. 이들이 이야기한다고 해서 과연 진실을 이야기했다고 할 수도 없고.


이렇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는 것, 그 마음을 결과만 보고 판단할 수는 있겠지만 과연 그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 오히려 사건을 자신들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평가하고 단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사람을 그렇게 판단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하는 것.


철학소설이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소설의 결말이 긴 여운을 남긴다. 그렇게 죽은 호르두발. 


'유라이 호르두발의 심장은 어딘가에서 사라져버렸고, 끝내 매장되지 못했다.'(228쪽)


이 말은 호르두발의 진실은 결코 다른 사람들에게 가 닿지 않았다는 말. 한 사람의 진실을 과연 우리가 알 수 있을까 라는 의문. 그것이 아닐까. 2부 소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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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국 인문 기행 ㅣ 나의 인문 기행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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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이크가 쓴 여행기를 읽고, 이번엔 서경식이 쓴 여행기다. 이제는 세상을 뜬 그. 그의 형제들이(서승, 서준식) 한국에서 독재정권에 의해 불의하게 탄압을 받을 때, 많은 고통을 겪었던 사람.


불의를 이기기 위해 여러 노력을 했지만, 단순히 정치적인 활동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에게는 예술이 바로 자신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기도 했다.


형제들의 구명을 위해 외국에 가서 미술관에 간다? 누군가는 이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아니다. 왜 그가 미술관에 가면 안 되는가? 이는 어쩌면 '피해자스러움 또는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마음, 행위일지도 모른다.


피해자라면, 또는 불의를 호소하는 사람이라면,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 세상에 사람을 하나의 범주에 가두는 행위 아닐까. 그런 사고방식 자체가 인문 정신에 어긋나는 것 아닐까.


하여 이 책의 제목이 된 '미국 인문 여행'은 하나의 틀에 갇히지 않는다. 시간 역시 마찬가지다. 서경식이 미국에 처음 간 1980년대와 트럼프가 정치 권력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2016년, 그리고 다시 2020년이다.


세 시기에 걸친 미국 여행에서 그는 여러 일들을 겹쳐서 회상한다. 하나의 사건이 다양한 시기 속에서 새롭게 자리 매김하기도 하고, 또 처음의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 하기도 한다. 그렇게 서경식의 미국 인문 여행이 펼쳐진다.


이런 그에게 '피해자다움' 또는 '호소인다움'이라는 말은 적용이 되지 않는다. 그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자신을 보고, 또 세계를 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는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지닌 다양성, 그러한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는 현재의 모습에 안타까워하면서도, 과연 미국이 과거에도 마냥 정의로운 나라였을까, '선한 아메리카'였을까 의문을 제기한다.


미국이 주장하는 '인권'도 미국의 국익을 위한 '자원'이라는 점(261쪽)을 그는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선한 사람들이 있어, 미국의 희망이 된다고, 그때나 지금이나 이러한 선한 사람들이 미국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게 한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그러니 그는 '선한 아메리카'가 아니라 이러한 선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동조자를 얻고 그 선한 힘이 영향을 미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 인문 기행을 통해서 바로 그러한 선한 사람들 이야기를 하는 것도 그 이유일 터이고. 그것이 미국의 희망이기도 하겠지만, 세계의 희망이기도 할 것이다.


인문 기행이라고 제목을 붙인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고... 하지만 현재의 미국은 서경식이 이 책을 쓸 때보다 더 안 좋아졌다. 미국만이 아니라 세계도. 이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미국은 이제 이란도 폭격하고 있으니... 그럼에도 미국에 선한 사람들의 영향은 미미하다.


언론이 다뤄주고 있지 않아서라고 할 수도 있지만, 선한 영향력보다는 국익이라는 또는 자신들의 이익이 더 중시되고 우선시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선한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의 말미에 서경식은 ''이상'을 잃어버리고 무력만이 살아남았다'(258쪽)고 하고 있다. 그만큼 세계는 과거로부터 배운 것이 없이, 오히려 더 강대국의 이익에, 자신들의 욕망 추구에 몰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세상에, 트럼프가 두 번이나 미국 대통령이 되는 그러한 현실 아닌가.


그는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병들고, 괴로워하는 상황. 진실은 거기에 있다'(257쪽)고 하고 있다. '평화롭게 살아온 나는 '허구'의 산물에 지나지 않'(257쪽)을지도 모른다고.


이런 상황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바로 '선한 사람들'이다. 그러한 선한 사람들이 많아지고 함께하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세상에 희망이 될 수 있다.


인문 기행을 읽는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절망의 늪에서 한 줄기 희망의 밧줄을 발견하는 것. 그 줄을 잡고 절망의 늪에서 나오려고 하는 것.


인문 기행을 통해 그가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예술은 언제나 어떤 악몽의 시대에도 관용, 연대, 공감을 추구하려는 인문 정신이 살아 있음을 가르쳐준다'(157쪽)고 그가 말하고 있으니.


하여 우리 역시 이 절망의 시대에, 선한 아메리카가 아니라 악한 아메리카라고 할 수 있는 지금 미국을 보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러한 미국에서도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예술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새롭게 알게 된 작가 특히 '벤 샨', 그리고 이름을 많이 들었던 '에드워드 사이드'에 대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서 더 좋았던 이번 책. 그가 이 책을 낸 이유를 마음에 담는다.


'나는 지금도 전혀 나아지지 않는 세계 여기저기에서 하루하루 현실에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내 경험의 작은 조각이라도 제시하여 참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인간 그 자체에 절망하지 않기 위해. 그것이 나의 끝나지 않는 '인문 기행'의 한 페이지다.'(261-2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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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제1회 김학철문학상 수상 작품집
황정은.최진영.전춘화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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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많은 문학상이 있다. 이름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문학상이 있는데, 그 중에 또 하나의 문학상을 보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학상도 문학상 나름이다. 상 이름에 자부심이 묻어 있다면, 그 상을 받는 사람들도 기꺼워하면서 상을 수상하리라.


어떤 상처럼 받는 것 자체를 거부한다거나 또는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을 테니. 그런 상, 반드시 필요한 상이 바로 '김학철 문학상' 아닌가 한다.


일제시대 항일투쟁을 했던 분. 평생을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았던 분. 식민 세력과 맞서, 또 독재와 맞서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갔던, 그야말로 자신의 삶이 문학 자체였던 분.


그렇다고 마냥 무거운 작품만을 쓰지는 않았다. 그의 작품에는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이 있다. 즐거움이 있다. 사실 항일무장투쟁을 할 때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럼에도 이 수상작품집에 실린 김학철 실록소설인 '맹진나루'를 보면 웃음이 있고, 낙관이 있다.


포기하지 않는, 그러한 신념이 어려움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게 해주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낙관성, 그것이 바로 김학철 문학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김학철 문학상은 어떤 작품이어야 하는가? 선정에 참여했던 홍기돈이 밝힌 바에 의하면 '첫 번째 원칙은 불완전한 현실에 맞서서 그 너머로 이월하려는 치열한 작가정신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원칙은 친일 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수상자를 배제한다는 것입니다.'이다.


이만큼 수상작들은 지금-여기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세 명의 작가가 수상자가 되었는데, 황정은, 최진영, 전춘화이다. 이 세 작가의 작품들이 따로 발표가 되었지만 수상 기준이 있으니 어떤 공통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세 작가의 작품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력을 대하는 자세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황정은의 작품은 세계 곳곳에서, 특히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학살을 다루고 있는데, 우리는 그 학살을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또는 군사작전이라는 이름으로 가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눈 감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에 눈 감지 못하는 누군가에겐 그것이 너무도 큰 고통일 수 있음을 외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황정은은 바로 이러한 문제를 가만두지 못하는 사람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누군가의 고통을 외면하는 일, 그러한 일을 사소한 일로 치부하는 일, 당장 내가 겪는 일이 아니니 너무 신경 쓰는 것이 오히려 과한 일이라고 하는 사람들.


그러한 사람들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 세상의 불의가 이러한 무관심 속에서 지속되고 있음을, 그 무관심 속에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내 무관심이 누군가의 고통일 수 있음을, 따라서 작가는 그러한 고통받음에 무관심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필요함을 작품을 통해서 말하고 있다.


소설 제목은 '문제 없는, 하루'지만, 세상에 문제 없는 하루는 없다. 그 문제를 생각하지 않으려 할 뿐이다. 그러니 작가는 문제 없는 하루가 아니라 문제 없어 보이는, 아니 문제 없다고 여기면서 살아가는 하루에서 문제를 보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최진영의 소설 역시 마찬가지다. 의로운 일을 하다 죽은 아빠. 그러나 아들이 기억하는 아빠의 모습은 늘 훈계하는 아빠일 뿐이다. 자신의 사소한 것까지도 지적하는 아빠. 그러한 아빠가 일찍 죽어 화해할 수 없게 된 상황.


하지만 단절로 끝나지 않는다. 비록 아빠와 직접적으로 화해할 수는 없지만 아빠와의 연결을 끊을 수는 없다. 시간을 몇 년으로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더 길게 길게 연장한다면, 결국 어느 순간 아빠와의 끊어진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작가는 '우리에겐 그를 되살릴 기회가 있다. 다만, 시간이 필요하다'(89쪽)고 하고 있다. 가족이라는 한 번의 만남으로 모든 것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영겁의 시간 속에서 가족의 자리를 보는 것. 그러면서 자신의 마음 속에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을 좀더 길게 본다면, 어쩌면 다른 관계를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아주 짧은 시간 안에서 모든 것을 확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작품에서 아빠가 자식에게 훈계를 일삼던 이유도 바로 짧은 시간 속에서 자식의 삶을 보려는 것에서 나온 것 아니었을까? 마찬가지로 자식 역시 아빠를 짧은 시간에 잃었으니, 다른 아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이 시간을 만났던 시간에 한정짓지 않고 더욱 확장한다. 


확장된 길고 긴 시간 속에서 다시 관계를 생각한다. 단기적인 눈에 보이는 성과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길게 길게 보면서 관계를 맺어가는 것, 그러면 다른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음을 작가가 말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황정은의 소설에서는 무관심이, 최진영의 소설에서는 짧은 시간이 삶에 문제를 일으켰다면 전춘화의 소설에서는 자본주의적 욕망이 문제가 된다.


이것을 거르는 체를 가동시키는 주인공이지만, 그 체는 가끔 뚫리기도 한다. 왜냐하면 누구나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고 또 미래의 삶에 어떤 일이 닥칠지 불안하기 때문이다.


'웰컴 투 빌라'라는 제목... 왜 '웰컴 투 아파트'가 아니지? 하는 생각을 먼저 하게 한다. 우리나라에서 '집은 아파트'이기 때문이다. 단지 살기 위한 집이 아니라 팔기 위한, 투자를 위한 집이기도 한 아파트.


하여 주인공은 빌라에 살지만 바로 뒤에 아파트 단지가 있다. 이렇게 비교되는 삶 속에서 최소한의 물질로 살아가려는 주인공들에게 최소한 이것은 해야지 하는 욕망들이 제시된다.


이 속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는 인물들. 그가 지녔던 체망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한다. 구멍이 뚫리면 그 동안의 삶을 다시 보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이 살아왔던 과정에서 문제를 느끼게 된다.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신념도 흔들리게 되고.


하지만 그렇게 체망이 뚫린 상태로 끝나지 않는다. 제목이 '웰컴 투 빌라'인 이유가 있다. 그렇다. 소설은 '빌라에서도 허리를 펴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중'(154쪽)이라고, 자신의 체망이 조금 넓어졌다 해도 그 체망을 버리지 않는다.


이것이다. 수상작품집에 실려 있는 세 작품이 모두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 그것은 바로 자신들의 삶의 자세다. 균열이 생기고 흔들리고는 있지만, 마지막까지 버리지 않고 있다. 이것이 바로 '김학철 수상작품집'에 실린 소설들의 힘이다.


자, 당신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지 생각해보라고 하는 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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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은 뉴스 보기가 겁난다. 누가 그랬었지. 뉴스를 보거나 듣지 않는다고.


  왜? 안 좋은 일이 너무도 많아, 사실 신문이나 방송에서 내보내는 뉴스는 좋은 소식보다는 안 좋은 소식이 더 많으니, 마음이 깨진다고...


  [물은 답을 알고 있다]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좋지 않은 소식이 우리에게 좋을 리가 없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세상사에 눈 감고, 귀 닫고 살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가끔 듣거나 보는 뉴스에는, 생각하기 싫은 소식들이 실린다.


  헤어졌다고 무참하게 살인을 하는, 또는 보복을 하는 이야기. 한때 좋은 관계였을 텐데, 아니면 좋은 관계를 만들려고 노력했을 텐데, 헤어지는 순간, 또는 헤어지자고 하는 순간 상대를 증오하고, 무슨 불구대천의 원수를 보는 듯이, 한 하늘에서 살 수 없다고 너가 없어져야 한다는 식의 폭력을 휘두르고 있으니...


최근에 읽은 클레르 마렝이 쓴 [단절(들)]이 생각났다. 헤어짐 역시 단절일 텐데, 우리 삶에 일어나는 수많은 단절(들)에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대응을 한다면 어떻게 인간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겠는가.


헤어짐을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계기로, 또 헤어짐을 자신이 맺은 관계를 다시 되돌아보는 기회로 삼을 줄 알아야 하는데, 아니다. 


헤어짐은 죽음이다. 죽음을 각오해야 헤어질 수 있는 관계(들)이 너무 많은 사회, 그런 사회는 행복할 수 없는 사회다.


세상에 목숨을 걸고 상대와 관계를 맺어야 한다. 사랑한다고 했던 사람들도, 그렇지 않고 같은 공간에서 일하던 사람들도 관계 맺기의 어려움을 겪는 요즘이지만, 관계 맺기의 어려움만큼이나 헤어짐의 어려움도 겪고 있지 않나 싶다.


잘 헤어짐, 그러니 헤어짐에도 예의가 있어야 한다. 헤어짐에도 존중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존중을 보여줘야 할 존재들이 앞장서서 헤어짐을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몰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권진희 시집을 읽다가, 헤어짐의 존중이라고 할 수 없지만, 관계 맺기의 진실성을 만날 수 있는 시, 이 시를 읽으면서 이것이 헤어짐의 예의 아닐까, 헤어지는 대상에 대한 예의, 존중, 그리고 그 대상을 만나는 새로운 존재에 대한 예의와 존중.


우리 사회는 보내는 예의, 존중도 잃고, 나를 떠난 존재와 관계 맺는 새로운 존재에 대해서도 예의와 존중을 잃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하게 됐다.


이 시를 헤어짐에 대한 예의와 존중, 또 새로운 관계를 맺을 존재에 대한 존중과 예의로 읽었으니... 오독(誤讀)이라면 오독일 수 있는 이런 시 읽기가 그래도 내 마음을 따스하게 하고 있다.


하, 어렵더라도 뉴스보다 시다. 시!


계단길 되짚어 오르는 사이


폐지 줍는 할머니가 있길래

묵은 책들을 끈에 묶어서 내놓았다.


종이가 많은 것은 반가우나

저걸 들고 어떻게 계단을 내려갈꼬-

서너 차례 계단길을 내가 오르내렸다.


내게 없어도 그만인 책과

종이 몇 묶음 나르는 것이야 대수롭잖은 것이

누구에게는 대수로운 것임을 모르지 않지만


고맙고 또 고맙다며

당신보다 새파랗게 어린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휜 허리 깊이 숙이고 있는 모습을 보며


여태 내가 내놓지 못한 것들이,

아래까지 함께 들어주지 못한 것들이

얼마나 깊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지

계단길 되짚어 오르는 사이 세고 또 세었다.


권진희, 죽은 물푸레나무에 대한 기억, 푸른사상. 2012년.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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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운명의 집 ㅣ 쏜살 문고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이미선 옮김 / 민음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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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 많은 글을 쓴 사람. 그의 소설 몇 편을 읽어보긴 했다. 그가 쓴 평전을 읽은 적도 있고. 여행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여행기. 그가 많은 나라를 여행했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그 많은 여행 기록 중에서 몇몇을 발췌한 것이 이 책이다.


1902년 벨기에 브루게가 제일 먼저 나온다. 근대 도시지만 중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도시. 그는 브루게를 통해서 도시가 간직하고 역사, 그 역사가 쉽게 지워져서는 안 됨을 이야기하고 있다.


근대적인 건물들 역시 중세 건물들을 가리거나 없애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공존하는 모습을 지닌 도시가 바로 브루게라고. 


'오래된 집들이 전혀 변형되지 않은 채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고, 드문드문 새로 지은 건물들 (그중 하나는 역이다)마저 끝부분이 세 갈래로 갈라진 벽돌 박공을 높이 올린 옛 건축 양식과 아주 정확하게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그저 주민들만 바뀌었다.'(8쪽)라는 표현에서 츠바이크가 브루게에 갔던 당시 건물들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브루게 여행을 통해 젊은 시절의 츠바이크는 과거는 현재에 묻혀 잊혀져서는 안 됨을, 과거는 현재 속에 살아 있음을 이미 발견하고 있다.


이 브루게란 도시에 관한 글이 그가 죽은 이후에 나온 글인 이 책의 마지막에 실린 '1946 과거의 빈'이라는 글과 통한다. 빈이 대단한 이유는 바로 예술에 있다는 것. 그러나 예술은 '자유 없이 번창할 수 없다'(191쪽)는 그의 말.


두 번에 걸친 세계적인 전쟁이 그를 더욱 견디지 못하게 했으리라. 브라질에서 결국 세상을 버리고 말았으니... 


빈에 대해 그가 한 말. 


'모순의 혼합 그리고 이렇게 끊임없이 조화하려는 시도에서 유럽 문화의 새로운 요소를 만들어 내는 것, 이것이 바로 이 도시가 지닌 본래적 천재성이다'(171쪽)


이 모순의 혼합에는 상대를 배제하거나 억압한다는 생각 자체가 들어있지 않다. 유럽 곳곳에서 온 사람들이 그 자체로 인정받으며 살 수 있었던 도시가 바로 빈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예술이 꽃필 수가 있었다고.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예술은 자리를 잡을 수가 없다. 


그가 꿈꾸던 세상. 


'내 생각에 인간은 -마찬가지로 한 민족은 - 지배해서도 헌신해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인간은 자유로워야만 하며, 각각의 타인에게 자유를 주어야만 한다.'(184-185쪽)


이런 그에게 전쟁은 견딜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자유로운 인간, 자연과 함께하는 인간. 그가 영국에 머물 때 전쟁 소식을 듣고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 영국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왜 그럴까라고 의문을 가지면서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데...


영국인들이 전쟁 소식에도 담담하게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을 자연과 함께하는 생활에서 찾고 있다. 바로 영국인들이 정원을 가꾼다는 것. 이 정원이 특별히 아름답다거가 크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자신의 집에 자신들이 가꿀 수 있는 만큼의 정원이 있다는 것.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정원에 들러 식물들을 가꾸며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사는 모습들이 전쟁을 견디도록 했다는 것.


츠바이크가 쓴 이 글을 읽으면서 리베카 솔닛이 쓴 [오웰의 장미]가 생각났다. 아, 오웰도 영국 사람이었지. 그가 정원에 장미를 가꾸는데 그렇게 열심이었던 것도 이러한 영국인들의 성품이었나 싶은 생각을 했고.


이렇게 츠바이크가 쓴 여행기를 읽으면서 단지 그 도시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러한 도시 속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다른 삶을 본다는 것. 여행기를 읽는다는 것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다. 츠바이크 역시 그런 말을 하는데... 아마도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바로 이 구절에 다 들어가 있다고 보면 된다.


'집에서 안내서와 함께하는 여행의 매력은 정말 환상적이다. 자신의 공간을 낯선 세계로 바꿀 뿐 아니라 현재의 시간을 과거와 바꿀 수도 있다. 집에서 여행기를 읽는 우리는 갑자기 먼 과거의 낯선 집에서 살 수도 , 빛바랜 옛날 옷을 입을 수도, 우편 마차와 작은 돛배를 타고 여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 세기의 사라진 공기를 들이마시며, 활발한 유희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할 수도 있다.' (91-92쪽)


이런 여행. 바로 이것이 여행기를 읽는 재미다. 단순한 재미만이 아니라 자신을 집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이 방법에만 안주하면 안 된다. 츠바이크 역시 집 안에서 여행기만을 읽지는 않았다. 여행기를 읽는 것도 좋지만, 직접 여행하는 일 역시 필요하다. 다만, 직접 여행할 때는 편한 여행을 추구하지 말고 예측하지 못한 일이 발생하는 여행을 하기를 그는 권장하고 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여행이라는 단어에는 모험과 위험, 변덕스러운 우연과 유혹적인 불확실성의 은은한 향기가 맴돌았다.'(131쪽)


'진정한 여행을 하려면 차라리 불편함, 성가심, 불쾌함이 낫다. 이것이 제대로 된 여행이다.' (132쪽)


이러한 여행을 한 사람이 집에 있을 때 여행기를 펼친다면, 츠바이크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자신의 여행과 다른 사람의 여행이 합쳐지는 또 다른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런 여행을 하는 사람은 자유로운 사람,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자유롭게 하는 사람이지 않을까. 이를 확장하면 그런 민족은 닫힌 민족관을 지닌 민족이 아니라 열린 민족관, 즉 세계시민을 지향하는 민족이 된다.


이런 민족들이 있다면 지구에 전쟁은 없을 텐데. 한 민족이 다른 민족 위에 군림하려 하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 


그렇게 처음 글에 나오는 조화, 그리고 마지막 글인 자신의 고향 '빈'을 이야기하면서 '삶이란 ... 근심 없이, 또 자유롭고 시기심 없이 친절하게 사는 것'(184쪽)이라는 츠바이크의 말을 마음에 심는다.


그가 살았던 시대처럼 전쟁이 끊이지 않는 지금 이 시대, 츠바이크의 이 책은 과거에 머무는 책이 아니라, 또 개인의 경험으로 끝나는 책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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