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 선거, 사전투표일이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많은 사람들이 사전투표에 참여했다고 한다. 현재까지 저번 선거 때보다 투표율이 높게 나왔으니... (아직은 진행형이지만)
투표하기 전까지 수많은 소리들을 듣는다. 자신을 지지해달라는 소리들. 자기가 무엇을 하겠다는 소리들. 이 일에는 자신이 적임자라는 소리들. 상대를 비방하는 소리들. 소리, 소리, 소리 들.
수많은 소리들에 싸여 살아가고 있지만 평소에는 그 소리들을 잘 듣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지낸다. 그러다 선거철이 되면 다른 모든 소리들을 누르는 후보자들의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이래도 안 들을래? 이래도 안 들려? 하는 듯이 사방에서 여러 소리들이 들려온다. 그 소리들, 색깔로 바꾸면 무슨 색깔일까?
소리를 볼 수 있을까? 볼 수 없겠지. 듣다와 보다는 다르니까. 하지만 듣다와 보다가 같을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 몸의 감각기관이 다를 뿐, 외부의 존재를 내게로 들여오는 과정이 바로 '보다/듣다'일 테니.
장시우 시집을 읽다가 와, 이 시인, '소리'에 대해서 이렇게 많은 시를 썼나 하는 생각을 했다. 시집에 실린 시들이 대부분 소리다. 소리, 소리, 소리. 그런데 소리를 볼 수 있겠단 시들이 있다. 또 시 중에 '소리에 빛깔이 있다면'(114-115쪽)이라는 시도 있다.
그래, 소리에 빛깔이 있다는 말은 색이 있다는 말이니까. 소리 역시 자신들만의 색채를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말소리로 사람을 구분하기도 하니... 소리에 색깔이 있고, 그 소리들은 그 사람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소리, 개성 있는 소리, 자신만의 소리를 듣지/보지 못하고 그것을 뭉뚱그려 보고/듣는다면 어떨까?
그런 세상은 참 삭막하지 않을까? 그런 세상이라면 사람을 어느 한 쪽으로 딱 규정하고 다른 면은 마치 없는 것처럼 여기고 대우하지 않을까? 이런 세상이라면 사람들끼리 교류가 없어지고, 오로지 내 편 아니면 다 편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이 지배하지 않을까.
시인이 시에서 말하고 있는 많은 소리들을 읽으면서, 문득 색깔이 떠올랐고, 그러다 아주 오래 전 학창시절, 미술 시간에 배웠던 삼원색을 합치면 검은색이 되고, 빛의 색깔을 합치면 하얀색이 된다는 것이 떠올랐다.
'검은/하얀'의 짝을 '어둠/밝음'으로 치환한다면(이렇게 나누는 것도 색깔에 대한 고정관념이겠지만) 지금 세상에 나도는 수많은 소리들을 합치면 무슨 색깔이 될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무슨 색깔이 들까? 2024년 겨울부터 2025년 봄까지 광장에 모였던 사람들, 그들을 '빛의 혁명'을 이룬 사람들이라고 한다. '빛의 혁명'이라는 이름 기가 막히다. 바로 이 빛의 색깔들이 합쳐지면 흰, 밝은 색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계엄이라는 어둠을 몰아내는 밝은 빛, 이것이 바로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내는 소리들의 합이었다. 그렇다. 이렇게 소리는 빛의 색깔을 띨 수 있다.
하지만 소리가 다 그런가? 빛의 색깔이 아닌 어둠의 색깔을 지닌 소리들도 있지 않은가? 사람을 벼랑으로 내모는 소리. 그런 소리들이 합쳐지면 검은, 어둠의 색깔로 변한다. 세상 역시 캄캄한 어둠의 세상이 된다.
지금 선거에 나선 사람들의 말,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말. 과연 빛의 말일까 아닐까. 그들의 말이 합쳐져 밝은 색이 될까, 아니면 어두운 색이 될까? 그것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바로 그러한 판단, 어두운 색으로 가는 말들을 막을 수 있는 귀, 그것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빛의 말들이 더 우세해지도록 하는 일. 우리 스스로 빛의 말들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남에게 상처주는 말, 남을 비방하는 말, 자신만을 드러내는 말, 그 말들은 합쳐지면 어두워진다. 다른 존재를 가린다. 그리고 자신마저도 가린다. 아니 자신의 좋지 않음을 가린다. 그런 어두운 존재와 함께 어둠 속에 갇힐 것인가, 아니면 빛과 같은 밝은 말, 합쳐져 더 밝은 세상이 되는 그런 말들을 하는 사람은 다른 존재들도 환한 세상에 있게 한다.
합쳐져 어두운 소리를 내는 소리들이 합쳐지지 않게. 그 소리들이 합쳐지지 않고 각자의 소리만을 낸다면, 그 소리 역시 제 색깔을 지닌 소리일 뿐이니까. 물론 합쳐져 밝은 소리가 되는 소리는 홀로 소리를 내도 좋지만 합쳐 소리를 내도 좋다. 밝은 세상을 만드는 소리니까.
우리가 추구해야 할 소리들은 어떤 소리인가? 우리의 소리에는 어떤 빛깔을 입혀야 하나? 아니 인위적인 색이 아니라 자연스런 빛의 색깔이 되도록, 그래서 우리 소리들이 합쳐져 하얗고 밝은 색이 세상을 뒤덮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장시우 시집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말도 어두운 색으로 가는 말이 아니라 밝은 색으로 가는 말이 되도록 해야겠다는...
자, 시인처럼 우리 주변의 소리들은 무슨 색깔일지, 우리도 한번 생각해 보자. 특히 사람들이 내는 소리를..
소리에 빛깔이 있다면
소리에 빛깔이 있다면
이 방 안에 가득한 고요는
창밖에서 가끔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는
세탁기 빙빙 돌아가는 저 소리는
벽 너머 들려오는 누군가 씻는 물소리는
타닥타닥 글을 쓰며 내가 만드는 소리는
주전자에서 물 끓어오르는 저 소리는
아침 산책길에서 만난 나팔꽃 벙그는 소리는
참새 떼 달음박질하듯 나무를 옮겨 가며 지저귀는 저 소리는
온 종일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가 방 안에 가득할 때
그 색들은 무슨 빛깔이어야 할까
그저 가기 서운했던가
검정 비닐을 데리고 가는 저 바람의 색은 또,
지금 후두둑 떨어지는 소나기
저 빗방울 소리는 어떤 색일까
소리에 맞는 색을 찾아 주느라
나는 온종일 햇살을 켠다
장시우. 이제 우산이 필요할 것 같아. 걷는사람. 2021년. 114-1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