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검찰과 언론, 혐오와 낙인의 카르텔
송요훈.이도경.전지윤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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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만들기' 또는 '마녀 사냥'


중세에나 있었던 일들. 아니, 현대에서도 심심치 않게 이루어졌던 일들. 미국에서는 매커시즘이란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을 배제시켰고, 유럽에서는 유대인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핍박을 받았는지... 우리나라에서도 빨갱이라고 하면 모든 것을 박탈할 수 있는 사람으로 취급한 적도 있었으니...


이름만 바뀌었지 마녀 만들기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할 수 있다. 마녀 만들기가 이성과 합리를 떠나 맹목으로 가는 길이었다면 그러한 역사를 거쳐온 우리들은 이제는 '마녀 만들기'를 해서는 안 된다. 해서는 안 된다고 하기보다는 '할 수가 없다'고 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민주화된 세상에서 '마녀 만들기'라니... '마녀 만들기'는 곧 '마녀 사냥'이 된다. 그냥 만들고 끝나지 않는다. 만드는 것은 사냥하기 위해서다. 배제하기 위해서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그러므로 '마녀 만들기 또는 마녀 사냥'에서 객관성은 필요 없다. 증거? 필요 없다. 그냥 마녀라고 하면 된다.


중세 시대에 마녀라고 의심이 되면 물 속에 던졌다고 한다. 물 속에서 죽으면 마녀이기 때문에 죽었다고 하면 되고, 살아서 나오면 마녀이기 때문에 살았으니 화형시켰다고. 어떻게든 '마녀'라는 낙인이 찍히면 '마녀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사회에서 배제되어야 할 존재일 뿐이다.


이런 '마녀 사냥'이 21세기에도 횡행한다고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해진다. 그러면서 내 태도를 생각하게 됐다. 나도 역시 이 '마녀 사냥'에 가담한 것은 아닌가.


내가 접할 수 있는 매체들에서 한 사람을, 한 집단을 마녀로 낙인 찍으면 그것에 따라서 나도 그들이 마녀구나 하고 말지 않았던가. 더 구체적인 사실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고 그냥 침묵하거나, 동조하거나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떤 자료를 내가 찾을 수가 있지? 대부분의 언론이 - 이 책에서는 진보 언론조차도 - 거의 같은 소리를 내는데, 자료 접근이 쉽지 않은 내가 어떻게 객관적인 자료를 찾을 수 있지? 그것이 힘들다. 이런 핑계를 댄다.


하지만 언론이 제시한 근거를 판단할 수는 있지 않았던가. 그 근거들이 개관적인가? 사실로 밝혀졌는가. 아니면 언론사의 심증을, 추측을 기사로 내보내고 있는 건가를 판단할 수는 있지 않았을까? 


기사의 이면을 읽는 연습, 미디어 리터러시를 키우려는 노력을 했는가 하면 그것이 아니었다는 반성을 한다. 그러니 부끄럽지만 '마녀 사냥'에 나 역시 가담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는 결론. 이 책을 읽으면서 앞으로는 그런 자세를 지니지 말아야지, 언론에 실린 기사들을 꼼꼼하게 살피고, 사실인지 추측인지, 일방적인 주장인지 검증된 주장인지를 살펴야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저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처음부터 반응을 하지 않고 조금 기다리는 자세, 즉 판단을 유보하고 더 살필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자세를 지녀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마녀 사냥'에는 가담하지 말아야지 하는 결심. 질문을 바꾸는 연습도 해야겠고. 이 시점에 왜 이런 기사를 썼을까? 의도하는 것이 무엇일까 등등.


마녀 사냥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 이런 구조를 인식하고 있는 것이 마녀 사냥에 가담하지 않도록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한번쯤은 의심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테니까.


'언론과 정치인의 문제 제기 -> 전문가와 논객의 유죄 단정 -> 극우, 보수 단체의 시위와 고발 -> 검찰의 수사 -> 언론 보도의 확대' (254쪽)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재판 과정과 결과에 대한 철저한 무시. 이미 마녀 사냥은 끝났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집단을 마녀로 낙인 찍기에 성공했기 때문에 결과에 대해서는 무시한다.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경우는 없다. 정정보도는 보이지 않는 지면에 작게 할 뿐이고, 무죄 판결이 나도 사과문 하나 없다.


그러니 마녀 사냥의 구조에서 한 단계를 더 첨가해야 한다. 바로 '재판 결과의 무시'를.


이 책은 윤미향과 정의연을 대상으로 어떻게 이들이 마녀로 낙인 찍혔으며, 그러한 과정에 참여한 정치인, 언론, 자칭 진보지식인, 검찰이 어떤 방식으로 이들을 마녀로 낙인 찍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정의연과 그 대표를 역임한 윤미향이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 일어날 파장을 우려하면서, 그것을 막기 위해 수구세력과 일본 또 검찰과 언론이 어떻게 결탁해서 마녀를 만들어내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정말 누구나 마녀가 될 수 있음을 이 책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데, 이것을 막지 않으면 앞으로도 이런 일이 반복될 수 있음을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윤미향과 정의연 마녀 사냥 이전에 조국에 대한 사냥이 있었고, 그 이전에는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이 있었으며, 또한 건설노조를 건폭이라고 몰아가며 분신 자살 사주 운운하는 사건(이 사건은 유서 대필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과 더 이전에 온갖 조작 사건들이 있었으니... 역사를 통해서 한두 번이 아니었음을... 이를 제대로 처벌하고 막지 않으면 또 일어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 책에서는 크게 언론과 검찰을 개혁한다고 하는데, 하긴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무어라 떠들든 언론에서 안 다뤄주면 되니 그것은 문제가 안 되고, 보수 단체가 시위를 하고 고발을 하는 것은 검찰 단계에서 해결이 될 수 있으니, '마녀 사냥'을 막는데 가장 중요한 열쇠는 언론과 검찰 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대략 언론 개혁으로는 '징벌적 손해 배상, 명예훼손법 중에 사실적시 명예훼손 법 폐지, 좋은 미디어에 시민들이 후원할 수 있게 정책적으로 지원해 주는 미디어 바우처 제도 도입, 그리고 공공 시민 공론장 확보, 미디어 리터러시 강화'등을 들고 있다. 충분히 할 수 있는 개혁 방안인데, 문제는 의지다.


검찰 개혁으로는 '억지 표적 기소의 방지와 검찰발 언론 조작을 막는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라 하는데, 이는 수사권과 기소권의 완전 분리와 피의 사실 공표 금지로 어느 정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또한 검찰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하는데...


결국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 피의 사실 공표 금지, 투명한 정보 공개가 이루어지면 검찰과 언론 카르텔이 주도하는 마녀 사냥을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281쪽)고 주장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미 검찰 개혁에 대 당위성은 국민 거의 모두가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어떻게 실행하느냐만 남아 있는데...


특정 정치권과 언론, 검찰의 유착 관계를 끊고 그들이 각자 자신들의 자리에서 자신들의 책임을 다하는 구조가 정착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감시가 필요하다. 


마녀 사냥을 완성하는 데는 '시민'들의 동조 또는 침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침묵하지 않는 시민, 동조하지 않는 시민이 되도록 개인은 자기 성찰의 자세를 지녀야 하고 정치권을 비롯한 거대 권력을 감시하는 눈을 감지 말아야 한다.


시민들의 깨어있는 눈, 그것이 궁극적으로 제도 개혁을 이끌어내어 '마녀 만들기와 마녀 사냥'을 막을 수 있다.


마녀 사냥에 관한 문학 작품으로 아서 밀러의 [시련]이 있으니 그 작품을 이 책과 함께 읽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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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와 오즈의 마법사 - 완역본 오즈의 마법사 시리즈 4
L. 프랭크 바움 지음, 존 R. 닐 그림, 최인자 옮김 / 문학세계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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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이번에는 지하세계다. 지하세계에서 탈출해 다시 오즈로 간다. 1권에서 사라졌던 오즈의 마법사와 함께.


작가는 독자의 바람을 실현하기 위해서 처음에 등장했던 인물들을 다시 등장시키고, 또 이들이 서로 만나서 행복한 시간을 지내게 한다. 모험을 통한 행복 추구. 이것을 읽는 독자들도 행복에 빠지리라.


지하세계. 식물의 세계와 나무의 세계를 거쳐 용들의 나라에 도착. 이들 세계는 결코 도로시 일행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자신들의 세계에 갇혀 있는 것.


하지만 현실에서 식물과 나무는 우리에게 도움을 많이 주는 것 아닌가. 이런 식물들을 어렵게 하는 것이 인간인데, 이 소설(동화)이 쓰일 당시에는 식물에 대한 관심이 크지는 않았을 테니.


이번 편에는 도로시와 함께 모험하는 존재들로 유레카라는 고양이와 젭이라는 농장 소년, 짐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그리고 지하세계에서 오즈의 마법사도 만나고. 이들이 겪는 모험이 잘 그려져 있는데, 물론 이들은 모험에서 위험에 처하더라도 현명하게 또는 운이 좋게 잘 벗어난다.


그리고 오즈마 공주의 도움으로 다시 오즈로 가서 시간을 보내다 현실 세계로 돌아오게 되는데...


이번 호에서 무엇을 생각할까 했더니 고양이 유레카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겠다. 본능과 이성.


배고픈 호랑이는 이성의 힘으로 자신의 식욕을 억제한다. 호랑이는 살생을 가능하면 피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고양이는 어떻게든 마법사가 데리고 있는 새끼 돼지를 먹으려고 한다. 다른 먹이가 있음에도 자신의 본능을 누르기 힘들다.


무조건 본능을 누르라고, 이성으로 제어하라고 할 수 있을까? 배고픈 호랑이는 그것이 가능하다. 그는 많은 일을 겪었기에 자신의 본능을 이성으로 누를 수가 있다. 하지만 성장기에 있는 고양이는?


배워야 한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도 있다. 그것들을 거치고 난 뒤 본능에 충실한 삶이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런 깨달음 뒤에 이성으로 본능을 제어하게 된다.


고양이는 새끼 돼지를 먹으러 간다. 우연으로 결국 먹지는 못하지만 이로 인해 재판을 받는다. 이 재판 과정이 지금도 참조할 만하다.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는 상태. 증거를 내 놓으라고 주장하는 피고인.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검사 측. 그럼에도 상황 증거가 명확하기에 돼지를 죽인 죄로 사형을 선고한다.


자, 이 과정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본능에 충실하면 위험에 처한다? 이것을 넘어서야 한다. 재판, 특히 한 생명의 목숨을 빼앗는 판결을 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증거가 필요함을, 고양이의 증거 요구가 무례하고 건방지고 어처구니 없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그것은 중요하다.


상황적 증거, 심증으로 사형까지 갈 수는 없다. 물론 이 소설(동화)는 그것까지는 안 간다. 고양이는 새끼 돼지를 먹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먹지 못한 것이지 않은 것이 아니다. 이성으로 본능을 누르지 못했다. 다만 재판 과정을 통해 본능에 따르기만 하는 것이 좋지 않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하여 이 편에서는 이성과 본능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고, 재판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도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그냥 재미있게 읽지만 무의식의 한 편에서는 이런 것들을 쌓아두고 있을 것. 이것이 어린이들에게 이 작품이 인기를 끄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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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잉어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27
비키 바움 지음, 박광자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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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모두에게 행복이 충만한 날. 그런데 과연 모두가 행복으로 가득 찬 삶을 살고 있을까? 크리스마스 이브에 잉어를 먹던 풍습이 있던 오스트리아. 그런데 전쟁으로 잉어를 구하기가 힘들어진다. 한 집안의 가장 큰 축제이던 잉어 요리가 힘들어진 상태. 


이 상태에서도 말리 고모는 잉어를 골라온다. 마른 잉어. 마치 당시 전쟁 통 사람들의 생활을 암시하듯 잉어는 살이 오르지 않았다. 이 잉어를 크리스마스 이브까지 살려야 한다. 그래야 요리를 할 수 있다. 소설은 '라너 집안의 아이들한테 크리스마스는 12월 6일에 시작된다'(9쪽)고 하니. 거의 20일 가까이 잉어를 살려두어야 한다.


욕조에 들어간 잉어. 가족들은 잉어와 대화도 한다. 친숙해 진다. 그러나 때가 온다. 잉어로 요리를 해야 한다. 그런데 누가 죽이지? 아무도 죽이려 하지 않는다. 결국 잉어 요리를 담당하는 말리 고모가 나선다. 드디어 나온 잉어 요리. 과연 가족들은 잉어를 먹을 수 있을까? 방금 전까지도 자신들과 함께했던 잉어를.


못 먹는다. 모두 먹지 못한다고 하자... 말리 고모는 절규한다. 


"우리가 왜 잉어를 죽였지? 말해봐. 왜 잉어를 죽인 거야?" 말리 고모가 흐느꼈다. 

......

"맞아. 왜 죽이지? 왜? 왜?" 그가 크리스마스 잉어를 말하는 건지 뭔지 잘 알 수가 없었다. ('크리스마스 잉어' 중에서. 28쪽)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는 잉어조차도 그렇다. 함께했던 시간이 쌓이면 쉽게 죽이지 못한다. 살생이란 그렇게 부담이 되는 것. 즉 가까운 거리가 살생을 머뭇거리게 한다. 반대로 가까운 거리가 살생을 하도록 부추기기도 한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학살을 보라. 어제까지 다정한 이웃이었던 사람이 학살자로 변한 모습을 발견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가까운 이웃이든 멀리 있어 전혀 왕래가 없던 사람이든 목숨을 앗아가는 일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고,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의 마음을 지니고 있다면...


그러니 이 소설의 말미에 말리 고모와 라너 박사의 말은 당시 전쟁 상황을 비판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잉어의 죽임조차도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데, 왜 전쟁을 하지? 왜 전쟁을 해서 서로를 죽이지? 그래서 도대체 무엇을 얻지? 우리는 잉어도 먹지 못하는 마음을 지니게 되는데, 도대체 사람들은 왜?


크리스마스 잉어에 빗대어 전쟁이 사람들의 마음을 얼마나 잠식하는지까지 나아가게 하는데, 짧은 단편에서 처음에는 크리스마스를 맞는 사람들의 설렘, 행복이 드러나는데, 후반부에 전쟁으로 인해, 잉어를 죽이고 결국 먹지 못하는 장면에서 그런 소소한 행복을 전쟁이 앗아가고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그 다음 소설인 '길'은 한 여인의 삶과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데... 쳇바퀴 돌 듯 집안일에 매여 살던 주부의 죽음. 그런데 남편의 반응이 너무도 기가 막히다. 


'어떻게 될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집안일은 누가 하지? 맙소사, 아이들은 어떡하나.'('길'에서. 70쪽)


아내 생각이 아니다. 남은 자신에게 닥친 일이다. 그만큼 아내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집안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비록 그 역할을 할 때는 남들이 인정하지 않고 의식하지도 않지만. 아내의 부재 앞에서 기껏 생각한 것이 바로 이것이라니...


당시 어쩌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하는 생각일 것이다. 아내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을 먼저 생각하는 그런 마음. 이렇게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에서 떠나 이제 자신의 세계로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소설이 바로 '길'이다. 그것이 죽음을 통해서만 얻어진다는 것이 문제지만. 그만큼 당시 여자들 특히 주부들의 삶은 그렇게 가족에 매여 있을 수밖에 없다. 


세번째 단편인 '굶주림'은 슬프다. 망상이라고 해도 좋지만, 굶주림 속에서 자신을 잃어가는 한 사람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 '굶주림'보다 더 마음을 아프게 한 소설은 '백화점의 야페'다. 


마치 우리나라 최서해의 소설을 떠올리게 하는, 넥타이 하나로 세상의 화려함을 깨닫고, 그것을 얻기 위해 들어간 백화점에 결국 불을 내고 죽는 야페의 모습. 


아마 '굶주림'에 등장하는 가브릴로프스키의 회상록이 남아 있다면 최서해가 쓴 '탈출기'를 연상시켰을 수도. 망상인지 아닌지 불분명하지만 그녀는 젊었을 때 귀족이었고, 한때는 부유한 생활을 했지만 극심한 가난의 고통에 시달리고, 그것에서 결국 벗어나지 못했으니까.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아마 망상이지 않았을까 싶은데...


'굶주림'의 화자가 그래도 지식인의 모습을 조금 지니고 있고 화려한 세계를 경험했다면, '백화점의 야페'는 구루병 환자, 지하실에 사는 늘 사회의 하층민이었다.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돈도 잘 벌지 못하는 직업. 그런 야페에게 백화점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장소다. 그런 장소에 몰래 들어가 원하는 넥타이를 손에 넣지만 넥타이로 끝나지 않는다. 그 다음, 그 다음... 그러다 의도치 않게 살인을 하고, 결국 방화를 한다.


최서해 소설이 그렇지 않은가. '기아와 살육'이나 '홍염'이 그렇지 않은가. 살인과 방화. 가난한 사람들이 막판에 몰렸을 때 했던 행동들. 그렇게밖에는 할 수 없었던 조건. 그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 나섰던 작가들.


그들이 그런 현실을 작품을 통해 보여준 것은 그런 일이 반복되면 안 된다는, 사회를 바꾸어야 하기에 연대하자는 외침이 아니었던가.


비키 바움의 소설도 마찬가지다. 전쟁 반대,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조건 개선, 그리고 집안일에 매몰된 여성들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평가 또는 그러한 조건의 개선 등을 생각하게 하고 있다.


짧은 소설들이지만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문제들과 연결지어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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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5-07-21 1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장 한칸을 파란색으로 만들고 싶게 만드는 흄세! 번역도 맘에 들구요! 이 책을 살 이유가 스멀스멀 한개씩 더해지는 중입니다! ㅎㅎ

kinye91 2025-07-21 12:43   좋아요 1 | URL
저에게는 시대를 넘어 우리가 생각해야 할 문제를 다루고 있는 좋은 소설이었어요.저도 읽기가 편해서 번역을 잘했구나 하는 생각도 했고요.
 

  이 시집을 고른 것은 착각에서 비롯되었다. 한승태라는 이름 때문. 한승태라는 작가를 만난 건 [퀴닝], [어떤 동사의 멸종]이었다. 노동 현장을 직접 경험하면서 쓴 글들.


  우리나라 노동 현장이 얼마나 열악한지, 또한 그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책이었기에, 한승태라는 이름을 보고는 아, 그 작가가 시도 썼구나 하는 착각을 한 것.


  그런데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었다. 이름이 같은 동명이인. 읽다 보니 시 내용 중에 나이 오십이란 말이 가끔 나온다. 시와 시인을 일치시키면 안 된다지만, 시에서 시인은 자신을 드러내는 경우가 꽤 있으니, 이 경우 분명 시인의 나이는 오십 즈음일 텐데... 앞서 말한 한승태는 이보다는 한참 젊은 나이니... 이런 우연이. 어떻게 같은 이름을 가진 작가가 비슷한 시기에 책을 내지. 참...


그럼에도 이 시집을 읽으면서 다른 한승태의 작품도 떠올랐으니... 공동체라는 말,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아니겠는가. 그 사회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또 그런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이 시집을 통해서 알 수 있으니...


여기에 '피라미드' 같은 시는 다단계 노동의 모습을, 그것을 자기 나름대로 유리하게 해석하는, 공동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는 모습을 만나게 되는데, 이것이 우리 현실 아닌가.


권력자들의 모습, 발뺌하는 그들의 모습, 그것도 자식의 안위를 위해서는 어떻게든 빠져나가려는 모습을 뉴스에서 심심치 않게 보아 왔는데, '단단해지는 것들'이란 시에서 만나게 되니... 이런 나쁜 것들이라는 상스러운 말이 절로 나오게 하는 시이기도 하고.


하지만 역시 힘 있는 자들은 어떻게든 빠져나갈 길을 마련한 것이 우리 현실이었으니, 공동체는 고독을 느끼기보다는 연대를 느껴야 하는데, 고독한 자의 공동체라고 한 것은, 공동체에서 객체로 존재하는 우리 현대인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그러나 '아전, 인수의 나라'라는 시를 읽으면서는 이런, 시대를 관통해서 이런 사람들이 꼭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이런 사람들이 권력을 쥐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생각.


아전인수(我田引水),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로운 쪽으로 해석을 하고 행동을 하지만, 그것이 힘 있는 자들이 일상적으로 행했을 때, 그 사회 공동체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데... 지금도 이 시에서 한 말이 유효하다면, 그렇게 되지 않게 해야겠지.


시인이 이런 시를 쓴 것은 단지 보여주기만이 아닐 테니까. 자, 봐라, 이것이 문제다. 문제가 보이니 이제 해결할 차례다. 그것 아닌가. 그래야 공동체가 살지 않는가.


시를 읽자. 그리고 이 시에 나오는 사람, 집단을 생각해 보자. 과연 바람직한가. 이 사람들이 공동체에서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사회의 운명도 달라지지 않을까.


아전, 인수의 나라


  실록에는 고려가 망하고 세종 때까지도 백성 중 자신이 고려의 신민臣民이라 여기는 자들이 여럿이라는 한탄이 보인다 임란 이후 명明을 호란 이후 청淸을 부모로 여기고 그의 신민이 되고자 하는 자도 있었다고 한다 조선이 망하고 일본 식민지가 되어서도 인민人民은 일부가 일본 신민이었을 뿐 나머지는 조선 신민이라 여겼다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에 패한 일본이 조선에서 쫓겨나고 상해 임시정부는 국토와 인민 주권을 되찾았어도 자신이 일본 신민이라 여기는 자는 여전히 남았다 한국전쟁 이후 미국을 부모로 여기고 그의 신민이 되고자 열심인 자도 여럿이다


한승태, 고독한 자의 공동체, 걷는 사람. 2023년. 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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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책 - 식물세밀화가 이소영의 도시식물 이야기
이소영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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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과 가까이 하지 않으려 해도 식물은 늘 우리 곁에 있다. 주변을 둘러보라. 식물이 눈에 안 띄는 경우는 없다. 대도시 한 가운데라도 가로수를 비롯해 복도나 또는 옥상에 식물이 있다. 식물이 없는 곳은 없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식물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하면 아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에도 식물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식물들을 곁에 두고 보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해마다 봄이 되면 꽃(식물)을 사려는 사람들로 화훼 시장이 붐빈다. 건강을 위해서든 눈을 즐겁게 하려는 의도에서든.


이 책은 이러한 식물 중에서 우리가 자주 만날 수 있는 식물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세밀화로 식물을 알려주고, 그 식물의 생태라든가 쓰임 외래종이면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된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자신이 그린 세밀화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기에 생동감이 있다. 식물에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다. 여기에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그 식물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 되는 재미도 있고.


무엇보다 식물은 다양하다. 다양함 속에서도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 것, 식물들의 특징이다. 식물의 분류학을 몰라도 된다. 물론 알면 그 식물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되겠지만, 예전에 시골에 살던 사람들은 그러한 분류학을 몰라도 식물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이용하기도 했다.


때로는 관상용으로 때로는 약재로 또 식용으로 이용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많은 곳이 콘크리트로 덮여 식물들이 살아가기에도 힘든 세상이 되었다.


토종 민들레와 서양 민들레 이야기를 하면서 서양 민들레가 토종 민들레를 밀어내고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서양 민들레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지니기도 하는데, 어디 서양 민들레가 이 땅에 들어오고 싶어서 들어왔던가. 또한 토종 민들레 역시 살아갈 환경이 괜찮다면 쉽게 밀리지 않을 것이다.


숲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레 토종 민들레가 살아갈 장소가 사라지니 토종 민들레는 번식할 장소를 잃고 그 틈을 서양 민들레가 차지하고 있다고 하는데... 결국 식물들의 살고 죽음에도 인간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아주 많은 식물 이야기가 세밀화와 함께 담겨 있어 여러가지로 유용한 책인데, 이 중에서 귤에 관한 글에서 그냥 우리나라 품종으로 알고 있던, 한라봉, 천혜향, 레드향, 황금향 등이 일본에서 육종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조금 충격을 받았다고나 할까.


그만큼 일본이 식물 분야에서 앞서 가고 있다는 생각인데, 우리도 많은 연구소들이 생기고, 생물 보존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지금보다는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 믿고. 그 예로 제주도에서는 감귤 연구소 등을 통해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하고, 또 다른 곳에서도 우리나라 식물들을 보존하고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저자와 같은 사람들이 꾸준히 식물에 대해 알리고 있으니, 자주 인용되는 말처럼 알면 보이고, 보이면 사랑하게 되니... 식물에 대해서도 많이 알아야 한다. 그래야 더 사랑하게 되고 더 많은 식물들이 우리 곁을 떠나지 않게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시간은 더운 여름을 어느 정도 잊게 하는 식물들과 함께할 수 있었던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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