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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검찰과 언론, 혐오와 낙인의 카르텔
송요훈.이도경.전지윤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5년 6월
평점 :
'마녀 만들기' 또는 '마녀 사냥'
중세에나 있었던 일들. 아니, 현대에서도 심심치 않게 이루어졌던 일들. 미국에서는 매커시즘이란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을 배제시켰고, 유럽에서는 유대인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핍박을 받았는지... 우리나라에서도 빨갱이라고 하면 모든 것을 박탈할 수 있는 사람으로 취급한 적도 있었으니...
이름만 바뀌었지 마녀 만들기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할 수 있다. 마녀 만들기가 이성과 합리를 떠나 맹목으로 가는 길이었다면 그러한 역사를 거쳐온 우리들은 이제는 '마녀 만들기'를 해서는 안 된다. 해서는 안 된다고 하기보다는 '할 수가 없다'고 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민주화된 세상에서 '마녀 만들기'라니... '마녀 만들기'는 곧 '마녀 사냥'이 된다. 그냥 만들고 끝나지 않는다. 만드는 것은 사냥하기 위해서다. 배제하기 위해서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그러므로 '마녀 만들기 또는 마녀 사냥'에서 객관성은 필요 없다. 증거? 필요 없다. 그냥 마녀라고 하면 된다.
중세 시대에 마녀라고 의심이 되면 물 속에 던졌다고 한다. 물 속에서 죽으면 마녀이기 때문에 죽었다고 하면 되고, 살아서 나오면 마녀이기 때문에 살았으니 화형시켰다고. 어떻게든 '마녀'라는 낙인이 찍히면 '마녀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사회에서 배제되어야 할 존재일 뿐이다.
이런 '마녀 사냥'이 21세기에도 횡행한다고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해진다. 그러면서 내 태도를 생각하게 됐다. 나도 역시 이 '마녀 사냥'에 가담한 것은 아닌가.
내가 접할 수 있는 매체들에서 한 사람을, 한 집단을 마녀로 낙인 찍으면 그것에 따라서 나도 그들이 마녀구나 하고 말지 않았던가. 더 구체적인 사실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고 그냥 침묵하거나, 동조하거나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떤 자료를 내가 찾을 수가 있지? 대부분의 언론이 - 이 책에서는 진보 언론조차도 - 거의 같은 소리를 내는데, 자료 접근이 쉽지 않은 내가 어떻게 객관적인 자료를 찾을 수 있지? 그것이 힘들다. 이런 핑계를 댄다.
하지만 언론이 제시한 근거를 판단할 수는 있지 않았던가. 그 근거들이 개관적인가? 사실로 밝혀졌는가. 아니면 언론사의 심증을, 추측을 기사로 내보내고 있는 건가를 판단할 수는 있지 않았을까?
기사의 이면을 읽는 연습, 미디어 리터러시를 키우려는 노력을 했는가 하면 그것이 아니었다는 반성을 한다. 그러니 부끄럽지만 '마녀 사냥'에 나 역시 가담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는 결론. 이 책을 읽으면서 앞으로는 그런 자세를 지니지 말아야지, 언론에 실린 기사들을 꼼꼼하게 살피고, 사실인지 추측인지, 일방적인 주장인지 검증된 주장인지를 살펴야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저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처음부터 반응을 하지 않고 조금 기다리는 자세, 즉 판단을 유보하고 더 살필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자세를 지녀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마녀 사냥'에는 가담하지 말아야지 하는 결심. 질문을 바꾸는 연습도 해야겠고. 이 시점에 왜 이런 기사를 썼을까? 의도하는 것이 무엇일까 등등.
마녀 사냥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 이런 구조를 인식하고 있는 것이 마녀 사냥에 가담하지 않도록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한번쯤은 의심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테니까.
'언론과 정치인의 문제 제기 -> 전문가와 논객의 유죄 단정 -> 극우, 보수 단체의 시위와 고발 -> 검찰의 수사 -> 언론 보도의 확대' (254쪽)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재판 과정과 결과에 대한 철저한 무시. 이미 마녀 사냥은 끝났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집단을 마녀로 낙인 찍기에 성공했기 때문에 결과에 대해서는 무시한다.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경우는 없다. 정정보도는 보이지 않는 지면에 작게 할 뿐이고, 무죄 판결이 나도 사과문 하나 없다.
그러니 마녀 사냥의 구조에서 한 단계를 더 첨가해야 한다. 바로 '재판 결과의 무시'를.
이 책은 윤미향과 정의연을 대상으로 어떻게 이들이 마녀로 낙인 찍혔으며, 그러한 과정에 참여한 정치인, 언론, 자칭 진보지식인, 검찰이 어떤 방식으로 이들을 마녀로 낙인 찍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정의연과 그 대표를 역임한 윤미향이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 일어날 파장을 우려하면서, 그것을 막기 위해 수구세력과 일본 또 검찰과 언론이 어떻게 결탁해서 마녀를 만들어내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정말 누구나 마녀가 될 수 있음을 이 책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데, 이것을 막지 않으면 앞으로도 이런 일이 반복될 수 있음을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윤미향과 정의연 마녀 사냥 이전에 조국에 대한 사냥이 있었고, 그 이전에는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이 있었으며, 또한 건설노조를 건폭이라고 몰아가며 분신 자살 사주 운운하는 사건(이 사건은 유서 대필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과 더 이전에 온갖 조작 사건들이 있었으니... 역사를 통해서 한두 번이 아니었음을... 이를 제대로 처벌하고 막지 않으면 또 일어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 책에서는 크게 언론과 검찰을 개혁한다고 하는데, 하긴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무어라 떠들든 언론에서 안 다뤄주면 되니 그것은 문제가 안 되고, 보수 단체가 시위를 하고 고발을 하는 것은 검찰 단계에서 해결이 될 수 있으니, '마녀 사냥'을 막는데 가장 중요한 열쇠는 언론과 검찰 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대략 언론 개혁으로는 '징벌적 손해 배상, 명예훼손법 중에 사실적시 명예훼손 법 폐지, 좋은 미디어에 시민들이 후원할 수 있게 정책적으로 지원해 주는 미디어 바우처 제도 도입, 그리고 공공 시민 공론장 확보, 미디어 리터러시 강화'등을 들고 있다. 충분히 할 수 있는 개혁 방안인데, 문제는 의지다.
검찰 개혁으로는 '억지 표적 기소의 방지와 검찰발 언론 조작을 막는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라 하는데, 이는 수사권과 기소권의 완전 분리와 피의 사실 공표 금지로 어느 정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또한 검찰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하는데...
결국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 피의 사실 공표 금지, 투명한 정보 공개가 이루어지면 검찰과 언론 카르텔이 주도하는 마녀 사냥을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281쪽)고 주장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미 검찰 개혁에 대한 당위성은 국민 거의 모두가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어떻게 실행하느냐만 남아 있는데...
특정 정치권과 언론, 검찰의 유착 관계를 끊고 그들이 각자 자신들의 자리에서 자신들의 책임을 다하는 구조가 정착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감시가 필요하다.
마녀 사냥을 완성하는 데는 '시민'들의 동조 또는 침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침묵하지 않는 시민, 동조하지 않는 시민이 되도록 개인은 자기 성찰의 자세를 지녀야 하고 정치권을 비롯한 거대 권력을 감시하는 눈을 감지 말아야 한다.
시민들의 깨어있는 눈, 그것이 궁극적으로 제도 개혁을 이끌어내어 '마녀 만들기와 마녀 사냥'을 막을 수 있다.
마녀 사냥에 관한 문학 작품으로 아서 밀러의 [시련]이 있으니 그 작품을 이 책과 함께 읽어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