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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같은 세상 - 스물두 명의 화가와 스물두 개의 추억
황경신 지음 / 아트북스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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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그림에 대한 책을 펴낸다.

 

전문가들이 난무하는 시대에 전공을 하지 않은 사람이 그 분야에 대한 책을 내면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무언가 부족한 것이 있지 않을까 하고 미심쩍어 한다.

 

특히 그림 같은 분야에는 전문가들이 자신들의 세계에 대해서 자신들의 언어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그림과 거리가 먼 사람들의 이야기는 뭘 모르고 하는 소리로 치부되기도 쉽다.

 

하지만 그림이 과연 전문가들만의 영역일까? 그림이 화가들이나 비평가들만의 영역이라면 도대체 왜 그림이 사고 팔리겠는가.

 

그림을 사는 사람은 일반인이고, 그들은 자기 나름의 기준으로 마음에 드는 작품을 골라 자기 소유로 할 뿐이다.

 

그냥 자기 소유로 하는 것이 아니라 늘 볼 수 있는 곳에 두고 눈길 갈 때마다 보고, 생각하고, 느끼곤 한다.

 

이것이 바로 그림이다.

 

그러니 내가 내 마음에 울림을 준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상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다.

 

우리가 미술 교육을 받았느냐 하는 것과는 다르게 우리는 그림을 즐기며 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즐기는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 그것에 대한 용기를 낸 것. 그것이 바로 이 책이다.

 

소위 전문가들이 말하는 그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울림을 준 그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그림에 대해서 나만의 감상법을 갖는 것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자연스레 나만의 감상법이 생기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림은 나란 사람 밖에 있지만, 내 눈에 들어온 순간, 내 안에 있게 된다. 그림과 나의 경계가 없어지는 순간, 내 마음은 어떤 울림에 감동을 받는다.

 

이럴 때 그림은 나에게 세상이 된다. 나는 나대로 그림 비평가가 된다. 물아일체란 말이 이럴 때 쓸 수 있는 말이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제목은 '그림 같은 세상'이고 스물 두 명의 화가들을 불러들여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즉, 밖에 있던 화가들은 작가의 마음에 들어와 작가의 안에 자리를 잡는다. 그래서 화가들이 산 세상과 그들이 그 세상을 그림 안으로 불러들인 세상이 다시 글을 쓰는 사람 안으로 들어오게 되고, 그런 세상이 이 책을 읽는 나에게 들어와 내 세상이 된다.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장을 나누어 화가와 그림을 이야기해주고 있는데,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렇게 순환하고 있는 세상이고, 이런 세상에서 내 마음에 들어온 이야기들이 많은데, 이번에는 그림으로, 그림에 대한 이야기로, 그림에 얽힌 삶의 이야기로 내 마음에 들어왔다.

 

그래, 그림에 대해 누가 뭐라하건 내 눈으로 보는 그림은 내 맘이 받아들이고, 내 맘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내 맘의 이야기와 그림의 이야기가 서로 얽히게 된다.

그게 바로 그림이다. 이 책은 그 점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아마도 이 책에 나오는 그림들은 화가들에 비해 덜 알려진 그림일테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화가의 대표작이 아니라, 이 책의 저자 마음을 흔든 그림들 이야기니 말이다. 이게 이 책의 좋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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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기억하는 세계 100대 명화 역사가 기억하는 시리즈
우지에 엮음, 남은성 옮김 / 꾸벅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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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기억하는 100대 명화란다. 당대에도 인기가 있고, 역사가 흘러도 기억이 되는 그림이 있고, 당대에는 인기가 없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인기를 얻는 그림이 있다.

 

그런 그림들을 통틀어 역사를 통하여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는, 또는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어야 할 그림들 100개를 선정해 화가데 대한 설명과 그 그림에 대한 설명을 곁들여 하고 있다. 더불어 그 화가의 다른 그림들도 소개하고 있어서 100대 명화라고 하지만 더 많은 명화들을 감상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어쩌면 그림을 통해 또는 화가를 통해 서양미술사를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다. 꼭 시대별로 구성되어 있지는 않지만 대체로 시대별로 구성되어 있고, 시대에 따라서 변하는 미술사조들에 대해서 알게 해주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서양미술사를 이해한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서양미술의 흐름은 대략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신화나 성서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리던 것부터 빛을 그림에 들여오는 시대, 그리고 이제는 형태를 떠나 추상의 세계에, 대중의 세계로 접어들게 되는 그런 흐름을 그림에 대한 설명을 읽으며 알게 된다.

 

무엇보다도 많은 그림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니 명화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읽으면 서양에서 명화라고 하는 작품들이 이런 것이구나 알 수 있게 된다.

 

미술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읽다보니 자주 보게 되는 그림들이 있다. 그런 그림들을 보면 반가운 마음이 든다.

 

물론 그림을 직접 원본으로 보아야 더 맛을 느끼고 그림에 빠지게 되겠지만, 이런 책들을 통하여 자꾸 눈에 익다보면 그림과 더 가까워지지 않겠는가.

 

조금은 그림에 대해서 안다고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드는데... 이런 자만심이 들 때 뉴턴의 '나는 진리라는 바닷가에서 조개껍질이나 줍는 어린아이'라고 했다던 유명한 말이 떠오르니...

 

뉴턴같은 과학자도 자신을 진리의 바다에는 발도 담가보지 못하고 그 주변에서 겨우 조개껍데기나 줍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그림책 몇 권 읽었다고 미술을 알겠다느니 하는 어리석은 소리는 하지 않겠다.

 

그래도 미술이라는 세계에 발을 적셨다는 것이 미술을 친숙하게 해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본다는 것과 안다는 것이 다르지만, 자꾸 보아야 알게 되지 않겠는가. 반대로 알고 싶은 욕구가 보게 만들지 않겠는가.

 

이런 점에서 이 책은 그동안 읽었던, 또 보았던 그림책들을 엉성하게나마 한 줄로 꿸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림 도판이 크지 않아서 그림을 자세히 보면서 마음을 울리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몇 번 보았던 그림들을 보며, 맞아 이 그림이 이랬었지 하거나, 처음 보는 그림들을 보면서 이 그림은 이런 의미가 있구나, 이렇게 감상하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들을 하게 되니,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역사가 기억하는 세계 100대 명화인데... 서양화만 있고, 서양화가만 있지 동양화는 전혀 없다는 것이 아쉽다.

 

예전에 세계사를 서양사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서양미술사를 세계미술사로 착각하게 만들지는 않는지 그게 걱정이다.

 

책의 뒤를 보면 이 책을 편저한 사람도 중국인이라고 추측이 되던데... 동양의 그림을 적절히 배치했으면 명실공히 세계 100대 명화라는 제목이 아쉽지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덧글

 

편저자에 대한 설명이나 이 책을 어떻게 읽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머리말, 옮기며 등이 없어서 그것도 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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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의 원근법 - 서경식의 서양근대미술 기행
서경식 지음, 박소현 옮김 / 돌베개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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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야기라고 하지만, 사실은 삶에 대한 이야기다.

 

그림을 통해서 세상을 보고, 읽고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끊임없이 되묻고 있다.

 

서경식은 디아스포라라는 말을 쓰기도 했다. 이산이라고 해석이 되기도 하는, 이방인의 삶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말.

 

그는 일본에 살고 있다. 국적은 한국이다. 그의 형 둘은(서승과 서준식이다) 우리나라에 유학왔다가 고문을 받고 감옥 생활을 오래 했다.

 

조국에 공부하러 왔다가 간첩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몇십 년동안 한 것. 그러니 이런 형들을 보면서 그는 자신의 뿌리뽑힘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신은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뿌리뽑힌 사람이라는 생각이 어쩌면 그를 미술에 관심을 두게 했는지도 모르겠는데... 미술 중에서도 특히 현실의 모습을 느끼게 해주는 그림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 책은 주로 독일 미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물론 뒷부분에 가면 고흐도 나오고, 살라사르라는 과테말라 사진가도 나오지만, 주요 부분은 독일의 작가들이 그린 그림을 찾아가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독일의 작가들 중에서도 당시의 현실을 그린 작가를 그는 좋아하는데, 그가 말하는 좋은 예술이란 아름다운 예술이 아니라 현실을 끊임없이 환기시켜 나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라고 한다.,

 

그러니 그는 미술비평가들이 좋다고 하는 작품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작품에서 현실과 나를 발견하게 하는 작품들을 찾아 다닌다. 그런 그림에서 그는 자신을 보고 자신이 처한 현실을 인식하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는다.

 

그가 찾은 작가들을 보자. 그는 1부에서 독일 작가, 그 중에서도 통일이 되기 전의 독일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작가를 찾아가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에밀 놀데'다.

 

나치 독일에 협력하기를 거부하고, 독일 내에서 망명 생활을 한 사람. 끝까지 자신의 그림을 그린 사람. 그의 그림을 찾아가는 것을 시작으로 전쟁의 참화를 그린 '오토 딕스'라는 작가를 찾아가고, 그 다음에는 나치에 의해 학살된 '펠릭스 누스바움'을 찾아간다.

 

이들은 모두 나치에 의해 '퇴폐미술'로 낙인찍힌 작가들이 되고, 이 낙인은 우리나라로 바꾼다면 독립운동을 고취한 그림을 그린 불령선인 정도가 될 것이다.

 

그림의 미학적인 면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들에 나와 있는 현실과 사상, 그리고 서경식이라는 개인에게 다가오는 의미가 이들을 찾아가게 하고, 그 그림들에서 떠날 수 없게 한다고 할 수 있다.

 

이 그림들은 단지 서경식만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국가보안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분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의미있게 다가온다는 생각이 든다.

 

책에 나와 있는 몇몇 그림들만으로도 아직도 우리에게는 진행 중인 일이 이 그림들에 나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니 말이다.

 

이런 점에서 좋은 예술이란 무엇인가 하고 질문을 다시 하게 된다. 아도르노의 그 유명한 말을 빌려 이 책에서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과연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시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그럼에도 시는 쓰여져야 한다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예술을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겉보기에 아름다운 작품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의 마음에 충격을 주는 작품, 삶과 작품이 일치하는 작품, 그런 작품들이 좋은 작품이 아닐까?

 

그러므로 서경식은 사람됨과 작품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에게 작품은 곧 사람됨이다. 그런 작품들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 되는 '고뇌의 원근법'은 결국 자신의 삶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작가들이 좋은 작품을 남길 수밖에 없다는 얘기로도 들린다.

 

그래서 고흐에 관한 대담이 이 책에 실린 것이리라. 원근법을 끝까지 밀고 나가 원근법을 넘어선 사람이 고흐라면, 고흐의 그림은 고흐의 전생애가 담긴 그림이라는 얘기가 되겠다.

 

그러니 고흐의 특별한 생애가 그의 그림에 관심을 끌게 한다기보다는 그의 치열한 삶의 모습이 그림 속에 나타날 수밖에 없음이, 그 고뇌가 나타나고 있음에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갈 수밖에 없다고 하는 편이 좋겠다고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그는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 수밖에 없으리라. 요즘 일본 사회의 모습을 보면.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도 변하지 않았으니, 그가 독일 미술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그 미술 속에서 우리들의 모습을 보았던 것이 여전히 우리에게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치열하게 세상을 직시하면서 자신의 작품세계를 개척해 나갔던 작가들. 우리에겐 좀 낯설지만 에밀 놀데, 오토 딕스, 펠릭스 누스바움이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그림을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 책이 나에게는 의미가 있다.

 

우리에게 민중미술이 역사화되었다(6쪽. 책을 펴내며에서)고 서경식은 말하고 있지만, 아니다. 우리에게도 민중미술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이 책에 나온 세 명의 독일 작가가 겪었던 일들을 아직도 우리 민중미술계에서는 겪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이 더 의미가 있다.

 

이 책은 도대체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지금 우리가 추구해야 할 아름다움이란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 책으로 이 세 형제의 책은 적어도 한 권씩은 다 읽었다. 모두 다 좋은 책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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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로잡은 그녀 그녀들 - 함정임의 미술 속 여자 이야기
함정임 지음 / 이마고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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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성이 강조되는 시대다.

 

이제 세상은 남성성으로 대표되는 폭력으로부터 벗어나 여성성으로 대표되는 포용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오죽하면 지구를 가이아라고 하고, 여성으로 표현하고 있겠는가. 땅의 신도 서양에서는 여성이고, 우리나라에서도 풍요를 기원하는 풍습으로 나체의 남성이 밭갈이나 논갈이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 대지는 그 포용력으로도 여성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 그림에는, 옛날의 그림에는 여성이 등장하는 경우야 조선후기 풍속화 시기나 되어야 되니까 말할 것이 없는데...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그림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니, 머리 속에 떠오르는 그림이 없다.

 

동양적 정신, 가부장적 세계에서 여성이 그림의 주인공으로 나타나는 경우는 없다고(그러니 신윤복의 미인도는 얼마나 대단한가!) 보아야 하겠다. 현대 그림에 대해서는 워낙 관심도 없었고, 또 미술관에 가서 본 경우도 적기에 이야기할 것이 없는데...

 

그러니 그림 하면 서양화를 떠올리고, 인물화하면 역시 서양이며, 서양의 숱한 인물들 중에 여성이 많다는 것에 놀라기도 한다.

 

여기에 서양의 그 많은 누드화들을 보라. 우리나라에서는 불경이라고 차마 그리지도 못했던 그림들을 서양에서는 한참 오래 전에 그리고 있었으니, 그들의 그림에 여성이 많이 남아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그렇다고 해도 서양에서 여성들이 처음부터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남긴 여성들 역시 그 시대에서 권력을 쥐고 있던 사람들의 초상들이 대부분이니...

 

그렇다면 이 책의 지은이를 매혹시킨 그녀들은 누구인가? 왜 지은이는 그림 속의 그녀들에게 매혹당했는가?

 

그것은 그림을 보면서 인생을 생각하고 자신을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의 아름다움을 삶을 통해서 느끼게 되었기 때문에 '나를 사로잡은 그녀, 그녀들'이라는 글을 쓸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따라서 그림 속의 그녀들은 먼 과거의 이미 끝나버린 고정된 그녀들이 아니라, 지금 삶에 끊임없이 불려나오고, 영향을 주는 그녀들이다. 이런 그녀들만이 우리를 사로잡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순서를 굳이 생각하지 않았는데, 읽고나니 성모 마리아로부터 시작한다. 성모 마리아,어쩌면 그림에 나오는 가장 오래된 여인(?) 중 하나 아니겠는가.

 

 (서양에서 여인들은 여신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여신들이니 여인이라고 하기엔 좀 그랬는데... 마리아의 위상이 그냥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좀 다르긴 하지만...인간으로 출발했으니...)

 

끝은 일본의 전위 예술가라고 할 수 있는 '오노 요코'다. 그 자신의 예술적 업적보다는 존 레논의 아내로 더 알려진, 그러나 확실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지니고 있는 오노 요코가 우리를 사로잡지 않을 이유는 없다.

 

성모 마리아에서 오노 요코까지... 많은 그녀들이 지은이를 매혹시키고, 우리를 사로잡아 그림을 보게 하지만... 이 책에서 지은이를 가장 사로잡은 그녀는 '아르테미시아 젠텔레스키'가 아닐까 싶다.

 

그녀가 그린 '유딧'그림은 지은이를 한껏 사로잡고 있으며, 지은이의 설명이 없더라도 우리를 매혹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남자에게 순종하는 부수적인 삶을 사는 여성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당당한 한 인간으로서의 여성이 아르테미시아의 그림에 나타나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성성이 포용적이라는 얘기는 이것저것 아무런 잣대 없이 다 받아들인다는 것이 아니라, 굳건한 자기 중심을 지니고, 그 중심으로 다른 것을 융합시킨다는 의미가 된다.

 

하여 여성성은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이기는 그러한 모습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자신의 삶에서 그림에서 보여준 사람이 바로 아르테미시아라고 할 수 있으니, 이 책에서 아르테미시아에 관한 장이 두 장이나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우리를 사로잡는 그녀들은 겉모습이 화려한, 아름다운 여인들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고, 그림을 통해서 또 자신의 삶을 통해서 우리가 우리 삶을 살펴보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바로 우리를 사로잡는 그녀들이고, 그녀들은 여성성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바야흐로 여성성이 필요한 시대... 푝력과 광기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지금.. 우리는 그녀들이 나온 그림을 보며 진정한 여성성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덧글

 

31쪽. '그리고 모딜리아니의 그녀, 그가 자살하기 4년 전인 서른세 살에 그린 <나부>의 원래 이름은 <아름다운 로마 아가씨>이다.'

 

문장을 이해하기 힘든 점... 그가 자살하기 전이라고 하면 자살한 사람은 모딜리아니인데, 모딜리아니는 자살하지 않았다. 그는 병으로 죽었으며 자살한 사람은 그의 아내인 잔느 에뷔테른느이다. 그녀는 22살에 죽었다고 하니(1898-1920) 이 문장은 다시 다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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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지 않으랴
임옥상 지음 / 생각의나무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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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미술.

 

고야를 읽다가 우리나라에도 민중 미술가가 있다는 생각.

 

오윤이 그렇고, 최근에 논란이 된 홍성담이 그렇고, 내 기억 속에 있던 임옥상이 그렇고.

 

임옥상의 책이 도서관에 있었다.

 

그가 틈나는 대로 써 놓았던 글들을 엮어, 그림과 함께 펴낸 책이다.

 

임옥상의 날것 그대로의 목소리가 잘 드러나 있는 책인데...

 

지금은 잘 언급이 되지 않는 민중미술. 이것은 미술은 우리들의 삶과 미술이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 미술이라고 본다.

 

미술이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하지만 미술이 민중들과 함께 할 때 사람들의 삶 곁에 있을 때 더욱 아름다움을 임옥상은 주장하고 있고, 미술관이나 전시장에 갇힌 미술이 아닌 밖으로 나온 미술, 언제든지 사람들이 만나고 함께 하는 미술이 아름더운 미술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안타까워 하고, 때로는 분노하기도 하고, 그를 작품을 통하여 나타내기도 한다.

 

몇 십 년 간 글로 써온 작품에 대한 열정들이 시간 순서가 아닌, 주제에 맞게 재배열되어 나오고, 작품도 볼 수 있는 책이다.

 

미술이 점점 어려워지고 사람들로부터 멀어져가고 있는 현실, 몇몇 호사가들에게만 재산으로써 존재하는 미술이 넘치는 시대에, 임옥상 같이 사람들과 함께 하는 미술, 그런 미술을 하는 미술가들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아직도 권력있는 사람들을 풍자한 그림들들이 마음 놓고 전시되지 않는 현실이니, 임옥상이 안타까워한 시절과 별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씁쓸하기는 했지만, 시대를 떠나 미술은 사람들의 삶과 함께 함을 잊지 않게 하는 임옥상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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