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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로잡은 그녀 그녀들 - 함정임의 미술 속 여자 이야기
함정임 지음 / 이마고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여성성이 강조되는 시대다.
이제 세상은 남성성으로 대표되는 폭력으로부터 벗어나 여성성으로 대표되는 포용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오죽하면 지구를 가이아라고 하고, 여성으로 표현하고 있겠는가. 땅의 신도 서양에서는 여성이고, 우리나라에서도 풍요를 기원하는 풍습으로 나체의 남성이 밭갈이나 논갈이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 대지는 그 포용력으로도 여성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 그림에는, 옛날의 그림에는 여성이 등장하는 경우야 조선후기 풍속화 시기나 되어야 되니까 말할 것이 없는데...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그림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니, 머리 속에 떠오르는 그림이 없다.
동양적 정신, 가부장적 세계에서 여성이 그림의 주인공으로 나타나는 경우는 없다고(그러니 신윤복의 미인도는 얼마나 대단한가!) 보아야 하겠다. 현대 그림에 대해서는 워낙 관심도 없었고, 또 미술관에 가서 본 경우도 적기에 이야기할 것이 없는데...
그러니 그림 하면 서양화를 떠올리고, 인물화하면 역시 서양이며, 서양의 숱한 인물들 중에 여성이 많다는 것에 놀라기도 한다.
여기에 서양의 그 많은 누드화들을 보라. 우리나라에서는 불경이라고 차마 그리지도 못했던 그림들을 서양에서는 한참 오래 전에 그리고 있었으니, 그들의 그림에 여성이 많이 남아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그렇다고 해도 서양에서 여성들이 처음부터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남긴 여성들 역시 그 시대에서 권력을 쥐고 있던 사람들의 초상들이 대부분이니...
그렇다면 이 책의 지은이를 매혹시킨 그녀들은 누구인가? 왜 지은이는 그림 속의 그녀들에게 매혹당했는가?
그것은 그림을 보면서 인생을 생각하고 자신을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의 아름다움을 삶을 통해서 느끼게 되었기 때문에 '나를 사로잡은 그녀, 그녀들'이라는 글을 쓸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따라서 그림 속의 그녀들은 먼 과거의 이미 끝나버린 고정된 그녀들이 아니라, 지금 삶에 끊임없이 불려나오고, 영향을 주는 그녀들이다. 이런 그녀들만이 우리를 사로잡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순서를 굳이 생각하지 않았는데, 읽고나니 성모 마리아로부터 시작한다. 성모 마리아,어쩌면 그림에 나오는 가장 오래된 여인(?) 중 하나 아니겠는가.
(서양에서 여인들은 여신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여신들이니 여인이라고 하기엔 좀 그랬는데... 마리아의 위상이 그냥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좀 다르긴 하지만...인간으로 출발했으니...)
끝은 일본의 전위 예술가라고 할 수 있는 '오노 요코'다. 그 자신의 예술적 업적보다는 존 레논의 아내로 더 알려진, 그러나 확실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지니고 있는 오노 요코가 우리를 사로잡지 않을 이유는 없다.
성모 마리아에서 오노 요코까지... 많은 그녀들이 지은이를 매혹시키고, 우리를 사로잡아 그림을 보게 하지만... 이 책에서 지은이를 가장 사로잡은 그녀는 '아르테미시아 젠텔레스키'가 아닐까 싶다.
그녀가 그린 '유딧'그림은 지은이를 한껏 사로잡고 있으며, 지은이의 설명이 없더라도 우리를 매혹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남자에게 순종하는 부수적인 삶을 사는 여성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당당한 한 인간으로서의 여성이 아르테미시아의 그림에 나타나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성성이 포용적이라는 얘기는 이것저것 아무런 잣대 없이 다 받아들인다는 것이 아니라, 굳건한 자기 중심을 지니고, 그 중심으로 다른 것을 융합시킨다는 의미가 된다.
하여 여성성은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이기는 그러한 모습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자신의 삶에서 그림에서 보여준 사람이 바로 아르테미시아라고 할 수 있으니, 이 책에서 아르테미시아에 관한 장이 두 장이나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우리를 사로잡는 그녀들은 겉모습이 화려한, 아름다운 여인들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고, 그림을 통해서 또 자신의 삶을 통해서 우리가 우리 삶을 살펴보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바로 우리를 사로잡는 그녀들이고, 그녀들은 여성성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바야흐로 여성성이 필요한 시대... 푝력과 광기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지금.. 우리는 그녀들이 나온 그림을 보며 진정한 여성성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덧글
31쪽. '그리고 모딜리아니의 그녀, 그가 자살하기 4년 전인 서른세 살에 그린 <나부>의 원래 이름은 <아름다운 로마 아가씨>이다.'
문장을 이해하기 힘든 점... 그가 자살하기 전이라고 하면 자살한 사람은 모딜리아니인데, 모딜리아니는 자살하지 않았다. 그는 병으로 죽었으며 자살한 사람은 그의 아내인 잔느 에뷔테른느이다. 그녀는 22살에 죽었다고 하니(1898-1920) 이 문장은 다시 다듬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