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 - 한국인 유일의 단독 방북 취재
진천규 지음 / 타커스(끌레마)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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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편견 없이 읽기는 힘들다. 그동안 내게 쌓여 있던 배경지식들이 먼저 작동하기 때문이다. 내가 읽은 책들, 들었던 것들, 보았던 것들, 그동안 생각했던 것들이 이미 내 안에 자리를 잡고 내 시각을 고정하고 있다. 이런 시각의 틀에 맞지 않는 책은 끝까지 읽기 힘들다.

 

책읽기도 그런데, 정치체제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우리가 흔히 보수다 진보다라고 편 가르기를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보수도 진보도 사람들 삶에 좋은 영향을 주고 싶어하는 사상이다. 사람들이 행복하게 잘살게 하기 위한 정책을 펼치는데 그 방향이 다를 뿐이라고 하면 되는데, 서로 죽이지 못해서 안달인 것이 바로 이런 이념이다.

 

여기에 더 심한 것이 바로 남북 관계다. 좋아지는 듯하다가, 다시 경색 국면으로 가고, 한창 전쟁 발발 일보 직전까지 갔다가 다시 평화체제로 가기도 하는 등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것이 남북관계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무리 긴장이 고조되어도 전쟁까지는 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지니고 일상생활을 유지해 가고 있다. 아무리 북한의 침략 위협 운운해도 사람들의 삶은 평온하다.

 

그렇다면 반대로 북한 사람들의 삶은 어떨까? 알 수가 없다. 철의 장막, 죽의 장막, 인의 장막보다 더 강한 것이 바로 남북을 가로막고 있는 장벽이다. 그 장벽을 깨뜨리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노력을 한 사람을 오히려 종북좌파라고 몰아부치면서 우리 사회에서 추방한 것이 남한의 모습이라면, 자본주의를 선전하려는 사람이라고 추방당하는 것이 북한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남과 북은 서로가 서로에게 정확한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냥 가려져 있을 뿐이다. 가릴 뿐이다. 사실을 알리려 하지 않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보만을 흘리거나 또는 사실을 왜곡한 정보만을 유출할 뿐이다.

 

사실보다는 온갖 추론과 상상만 난무하는 것이 남북관계다. 그래서 우리는 남북관계를 볼 때는 아주 특이한 색안경을 끼고 볼 수밖에 없다. 내 눈에 있는 안경 색깔에 맞춰 그 사회가 보인다. 남한도 북한도 그러한 안경을 아직은 벗을 생각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우리나라 사진기자 출신이지만 미국 영주권이 있는 진천규가 북한을 단독 취재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단독취재라? 북한이 우리나라 기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자신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진천규는 이것이 편견임을 보여주고 있다. 단독취재를 하면서 그는 평양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삶을 자유롭게(?-완전히 자유롭게 취재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안내원이 늘 따라다녔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존의 취재와는 다르게 꽤 자율성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취재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그들이 사는 아파트에도 들어가 보고, 지하철도 타보고, 버스도 또 산책도 하면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직접 보고 기록을 했다.

 

그가 느낀 것을 하나로 정리하면 평양에 살고 있는 사람도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과 마찬가지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고난의 행군 이후, 또 미국의 대북제재 이후 어렵게 살아서 얼굴에 궁색함이 가득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들은 그들의 삶에 만족하고 즐겁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직접 가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 사진을 통해서도 알 수 없는 것. 그럼에도 진천규의 사진이나 글에서 평양 사람들의 삶이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그래,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고,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나 비슷하지 않겠는가.

 

북한 사람들의 삶이 우리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또 하나의 편견임을 이 책에서 진천규는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나름 자유롭게 취재를 하면서 북한의 실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이유는, 남과 북이 하루 빨리 적대적인 관계를 청산하고 평화 체제를 마련하여 함께 교류하며 살아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고 자유롭게 교류를 한다면 서로가 지녔던 편견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체제가 달라 막혀 있는 교류의 길을 풀어야 한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만나고 왕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통일도 이룰 수 있다. 통일을 잠시 뒤로 미루더라도 남과 북은 서로를 대등한 국가로 인정하고(유엔에 동시 가입이 되어 있으니, 어느 정도 서로를 국가로 인정한다고 할 수 있다) 여행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세상에 세상 어느 나라도 거의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는데, 말이 통하는 단 하나의 나라만 여행을 할 수 없는 세상은 옳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서로가 오해를 쌓고 그 오해가 쌓이고 쌓여 서로를 불신하면서 계속 담을 쌓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담을 허물기 위해서는 만나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쌓였던 오해도 풀리게 된다. 그런 오해를 푸는 디딤돌로 이 책은 쓰였다고 할 수 있다. 진천규는 또 통일TV라고 하여 서로가 서로를 알 수 있는 방송을 하려고 한다고 한다.

 

이렇게 서로를 안경 없이 바라보고 만날 때 통일의 시간도 조금 더 빨라질 것이다. 이제 평양과 서울의 표준 시간은 같다고 한다. 시간만 같은 것이 아니라 우리네 삶도 함께 갈 수 있도록 서로가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평화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남북관계가 평화로워야 하니까 말이다. 북한에 대한 편견을 덜어버릴 수 있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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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할래? 사회주의 할래? - 임승수의 방구석 경제수업
임승수 지음 / 우리학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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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이런 질문을 한다. 민주주의의 반대는 무엇? 그러면 공산주의요! 하는 대답이 곧장 들려온다. 민주주의의 반대는 독재일텐데, 또는 전체주의일텐데, 쉽게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라고 말을 한다. 같은 층위에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닌데 말이다.

 

여기에 분단된 나라에서 살다보니 우리는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는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말이었다. 막걸리 보안법이라는 것이 있었던 나라에서, 공안 검사들이 꽤 힘을 발휘했던 나라에서, 지금도 종북이라는 말이 상대를 옭아매는데 더없이 좋은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으니, 사회주의에 대해서 공부하고 이야기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래서는 안된다. 민주주의의 반대가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의 상대가 되는 체제는 자본주의다. 이렇게 개념을 명확하게 해야 논쟁이 된다.

 

이념으로 옭아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을 어떤 체제가 더 풍요롭게 해줄 수 있나를 끊임없이 토론해야 한다. 토론을 통해서 우리들의 삶을 좀더 좋은 쪽으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 상대를 억압하고 억누르고 없애기 위해서 하는 토론이 아니라.

 

따라서 이 책은 소중하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대등한 비중으로 다루고 있으며, 이들 개념을 정리해주고 있고, 왜 이런 체제를 옹호하는지를 두 인물을 통해서 잘 드러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소유와 오평등이라는 가상 인물을 통해서 자본주의의 장점과 단점, 사회주의의 장점과 단점을 짚어주고 있다. 두 체제가 완벽하지 않다. 세상에 완벽한 체제는 없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자신들의 삶에 유리한 쪽으로 체제를 바꾸어나갈 뿐이다.

 

따라서 어느 고정된 체제만을 주장해서는 안된다. 두 체제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음으로써 좀더 나은 체제로 수렴되어야 한다.

 

주장은 마음껏 발산되어야 하지만 삶을 통해서 수렴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수렴된 것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보면 사회주의는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주의에서 실현했던 제도나 또는 이념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자본주의라고 해도 모든 것이 민영화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또 모든 것을 민영화할 수도 없다. 그랬다가는 극소수에게만 부가 집중되고 소외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생계도 위협받는 지경에 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라고 하더라도 사회주의적 요소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미 자본주의 요소와 사회주의 요소가 혼재되어 있다. 두 체제가 갖는 장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 제목이 된 '자본주의 할래? 사회주의 할래?'는 두 체제 가운데 어느 하나만을 택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두 체제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를 무시할 수 없지만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자유라는 개념이 흘러가는 것도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두 체제에 대해서 이해하고 우리들의 삶에 어떤 체제가 더 좋을지를 생각하게 하는 이 책은 의미가 있다.

 

적어도 레드- 콤플렉스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이 책처럼 버젓이 사회주의를 이야기할 수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책의 구성이 청소년들이 두 체제를 이해하기 쉽게 되어 있다. 두 체제에 대한 기본 지식으로부터 시작하여 자본주의에 대한 찬반, 사회주의에 대한 찬반, 그리고 우리가 맞이할 미래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으려고 한 것이 느껴진다.

 

꼭 어느 체제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절충도 가능하다. 세상은 이렇게 두 체제만으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여 이 책을 읽으며 우리들 삶이 행복하고 풍요로워지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체제는 적어도 무엇을 갖추어야 하는지를 생각하면 된다. 그 생각이 실현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리 몫이겠다.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이다. 책읽기에 응모해 당첨되었다. 덕분에 잘 읽었다. 우리학교 출판사, 청소년들을 위한 책을 꾸준히 내고 있다. 청소년들이 지혜로워지는데 도움이 되는 출판사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좋은 책 꾸준히 많이 내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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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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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어째 책읽기가 거꾸로 되었다. 같은 작가의 책을 순서대로 읽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대체로 순서 대로라기보다는 마음 내키는 대로, 아니면 먼저 읽고 그 책에 감명을 받아 다른 책을 찾아 읽는 경우가 많다.

 

김승섭의 책도 마찬가지다. [우리 몸이 세계라면]을 읽으면서 좋은 책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 우리 몸은 우리 자신의 것이라서 자신이 책임져야 하기도 하지만 우리 몸은 우주의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 몸에 대한 책임은 개인을 넘어서는 것이다.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의학에 관한 것들을 이야기해준 책이 [우리 몸이 세계라면]이었다면, 이 책은 질병에 관해서 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역학을 전공한 학자로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 책에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이 [우리 몸이 세계라면]에도 나오기 때문에 책을 읽는 순서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사회에서 약자라 불리는 사람들의 질병에 관해서 연구를 한다. 그리고 그 연구를 통해서 이들의 질병이 개인만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에 더 큰 책임이 있음을 밝힌다.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질병이 더 많고, 장시간 노동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질병이 많다는 것.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도 그렇겠지 하는 것들을 많은 사례들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질병은 개인의 책임도 있지만 사회의 책임이 더 크다는 그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사회적 약자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소방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관한 연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사람을 구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병으로 고생하고 있지만, 그것을 공표하지 못하는 상황이 많다는 것. 그래서 그들은 폭행을 당하거나 부상을 당해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고, 이런 일들이 그들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는 것.

 

경제적 대우, 근무 여건의 개선뿐만이 아니라 부상을 당했을 때는 당연히 공상처리가 되어야 하고, 또 폭행을 당했을 때는 그에 상응하는 조치가 취해져야 그것이 근무 여건의 개선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여기에 정리해고된 노동자들, 세월호 유가족뿐만이 아니라 생존자와 생존자 가족들. 그리고 이 책의 앞부분에 실린 낙태에 관한 문제.

 

지금 국회에서 낙태금지법이 다시 제정이 되었고, 여성단체에서는 그 법의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데, 김승섭은 낙태에 관한 다른 나라의 사례를 들어 낙태금지가 과연 누구에게 더 해로운지를 보여주고 있다.

 

입법하는 사람들이 이 책의 앞부분만을 읽었어도 그 법안을 그렇게 내지는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낙태에 대해서는 찬반이 팽팽한 것이 우리나라 현실인데, 여성의 권리와 태아의 생명권의 대립으로만 보지 말고, 여성의 건강권 관점에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여기에 성소수자들이 얼마나 건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도 사례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개인이 받은 유전적인 건강을 떠나 사회적인 질병으로 나타날 수 있다.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다른 사람에게는 건강의 악화로 나타날 수 있음을.. 그래서 사회적 관계가 잘 이루어진 사회에서는 사람들도 건강하게 지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건강은 개인의 책임에 사회의 책임이 더해진다고 할 수 있다. 개인에게만 책임을 묻는 사회는 어쩌면 의사들 배만 불리는 사회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의사들은(다는 아니겠지만) 개인의 건강만을 본다. 개인의 식습관이나 운동습관을 이야기하고 약을 처방하고 수술을 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온전히 개인에게만 속해 있다.

 

역학을 공부하고 연구한 저자의 말에 따르면 사회가 중요한 역할을 하니, 그들의 식습관이나 운동습관이 그렇게 된 것은 사회 환경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는 것. 그러니 이들이 건강한 식생활을 하고, 운동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지 않으면 이들 건강이 좋아지기는 매우 힘들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들의 치료와 사회 환경의 개선이 함께 가야 한다는 것. 이것이 꼭 필요한 일임을 이 책에서 김승섭은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덧붙이면 이 책에 나오는 전공의들의 건강상태 부분을 보면 기가 막힌다. 내가 행복해야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데, 내가 건강해야 다른 사람 건강을 돌볼 수 있는데, 전공의들의 건강상태는 아주 나쁨 상태에 있다는 것.

 

장시간 노동, 부족한 수면, 쌓이는 스트레스, 과중한 업무 등등으로 그들은 자신의 건강을 돌볼 여유가 전혀 없다고 하는데... 그런데도 의사 집단의 특수성 때문에 전공의들이 자신들의 근무 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하기가 힘들다는 현실.

 

이들이 국가를 상대로 진료거부를 하는 것은 의사 집단의 동질성을 배경으로 한 것이라면, 전공의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선배 의사들에게 대항하는 것으로 비춰진다는 것.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장시간 노동을 줄이는 방법은 인원수를 늘리는 것 아닐까? 같은 일을 한 사람이 할 때보다 두 사람, 세 사람이 하면 시간을 줄일 수 있지 않나. 그들도 여유로운 시간을 갖고 사색을 하면서 환자들을 만나는 수련을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무슨 법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이것도 전공의들 개인에게 맡겨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건강하게 수련을 해서 건강한 의사가 되도록 하는 것도 사회의 책임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 법의 일부를 보자. 과연 이 법대로만 한다면 건강한 전공의가 될 수 있을지 판단해 보라. 다른 노동자들의 노동 시간과 비교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 ( 약칭: 전공의법 )

[시행 2017. 12. 23.] [법률 제13600호, 2015. 12. 22., 제정]   

 ① 수련병원등의 장은 전공의에게 4주의 기간을 평균하여 1주일에 80시간을 초과하여 수련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교육적 목적을 위하여 1주일에 8시간 연장이 가능하다.

 

② 수련병원등의 장은 전공의에게 연속하여 36시간을 초과하여 수련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응급상황이 발생한 경우에는 연속하여 40시간까지 수련하도록 할 수 있다.

 

③ 수련병원등의 장은 전공의에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연속수련 후 최소 10시간의 휴식시간을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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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이 세계라면 - 분투하고 경합하며 전복되는 우리 몸을 둘러싼 지식의 사회사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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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은 우주다. 우리 몸은 세계다. 그런데 세계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 방대한 세계를 다 안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우주라면 어떨까? 우리는 아직도 우주의 일부만을 알고 있다.  또 알고 있는 것이 잘못된 사실일 수도 있다.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사실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우리 몸 역시 마찬가지다. 의학이 발달하면서 우리 몸에 대해서 많은 것들이 알려졌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수준도 많이 높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원인을 알 수 없는 병들과, 또한 치료가 힘든 불치병, 난치병들이 즐비하다. 게다가 우리나라 사망 원인 1위라고 하는 암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 몸에 대해서 잘 알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를 다른 존재에게 넘겨주고 있다. 특히 의사들에게. 우리나라 의사들의 권위적인 모습을 보라. 그들이 진료 거부를 할 때 주장했던 것을 보면 그들이 지닌 자세를 알 수 있다. 전교 1등에게 진료를 받을 것인가? 아니면 공부는 못하지만 의사가 되고 싶었던 사람에게 진료를 받을 것인가라고 당당하게(?이건 당당이 아니라 뻔뻔이지만) 주장하다가 그것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모습을 생각하라.

 

이들은 우리 몸을 재단한다. 자신들이 판단한다. 그리고 그 판단이 맞다고 옳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환자의 죽음으로 이어지더라도 그들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 오로지 환자의 잘못이다. 수많은 의료사고에서 의사들의 과실을 증명하기가 얼마나 힘든가. 그만큼 의사들이 잘못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의사들의 카르텔이 공고하다는 얘기다.

 

이 책에 나오는 제멜바이스의 예를 보면 의사들이 우리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경우가 많음을, 그리고 그들이 그 책임을 회피하려는 자세에 대해 알게 된다. 자신들이 시체 만진 손을 닦지 않아 산모들을 감염시켜 죽음에 이르게 했음에도 인정하지 않았던 의사들. 그것을 밝힌 제멜바이스는 오히려 의학계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음을 이 책에서 보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자본의 힘에 굴복하는 경우도 있다. 거대 자본으로부터 연구비를 받고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담배와 관련된 일들은 이 책에 잘 나와 있다. 수많은 사실 중에서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사실들만 골라 그것이 과학적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다른 사람들이 잘 모른다는 이유로.

 

여기에 어떤 약은 개발이 되고, 어떤 약은 개발이 지연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돈이 되느냐 안 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 경제적으로 어려운 국가에서 주로 걸리는 병들에 대한 치료제 개발이 더딘 이유는, 그것이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서글픈 이유를 이 책에서 만나게 된다.

 

또한 그들이 지니고 있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것은 무척 힘들다.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같은 의사들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관념에 도전하는 의사는 배척당하기 일쑤다. 이 점을 이 책 6장에서 다루고 있다.

 

통념이 된 의학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기존의 관념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알 수 있게 된다. 그것도 합리성을 추구한다는, 소위 과학적 사고를 한다는 의사 집단에서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우리 몸에 대한 통제권을 찾아와야 한다. 주체적인 인간으로 서야 한다. 4장을 보면 사람들의 끝, 즉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어떻게 끝을 맺는가? 자신이 주체가 되어 이 세상을 떠나는가? 아니다. 병원에서 의사들에게 자신의 끝을 맡기고 있다. 연명치료라고 하는 것들...

 

이 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라고 한다. 그리고 건강이 과연 개인적인가? 여기에 대해서 고민하라고 한다. 보건의료를 담당하는 사람들에게는 건강이 개인의 문제일 수가 없다. 내가 잘 못 챙겨서 병이 걸렸다고 쉽게 이야기하지 못한다.

 

사회적인 문제가 깊숙히 개입돼 있기 때문이다. 일란성 쌍둥이도 자신이 자란 환경에 따라서 각기 다른 질병을 앓고, 그들의 건강한 생활에도 많은 차이가 난다고 한다. 그러니 건강은 개인의 책임도 있지만 그보다 더 사회의 책임이 크다는 것.

 

하여 건강은 정치와 경제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3장에서 말해주고 있다. 이것은 2장도 마찬가지다. 제국주의 국가들이 사람들의 몸을 가지고 어떻게 식민정책을 펼쳤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이 책은 우리 몸을 통해서 사회, 문화,정치, 경제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렇기에 우리 몸은 바로 우주라는 것. 이 우주를 소중하게 여겨야 하고, 주체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

 

읽기에도 쉽고,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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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박스 - 남자다움에 갇힌 남자들
토니 포터 지음, 김영진 옮김 / 한빛비즈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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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로 다른 유리천장과 맨박스 : 피해자와 가해자


눈에 띄지는 않지만 우리의 행동을 제약하고 있는 장치가 있다. 우리라고 했지만, 성별 분류법에 따라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과 남성을 우리하고 하자. 슬픈 일이지만 성소수자들은 우리라는 범주에서 잠시 제외하자. 


왜냐하면 여성이 차별을 받는다고 해도 그들의 차별은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에 갇혀 있지만, 성소수자들은 유리천장이 아니라 높고 굵고 단단한 벽 속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담장 안에 갇혀 겨우 간신히 출입할 수 있는 문만 지니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이 글에서 우리라는 말에 주류 성별인 여성과 남성으로 한정하고자 한다. 아직도 성소수자들은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조차도 지니지 못했기 때문에...


유리천장 하면 여성 차별을 떠올린다. 능력이 같더라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제약을 받는 경우를 일컫는 말로 많이 쓰인다. 이게 평소에는 보이지 않다가 여성이 사회에서 주어진 한계를 넘어서려 하는 순간 탁 부딪히고, 여성을 쓰러뜨리고 가두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유리천장을 지닌 여성은 피해자가 된다. 반면 맨박스는 남성의 행동을 제약한다. 이 역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행동을 할 때 그 행동을 제약하는 역할을 한다. 여성의 유리천장과 마찬가지로.


하지만 역할은 정반대다. 맨박스는 다른 사람, 특히 남성을 의식하게 만든다. 남자다움이라는 것을 행동에서 이끌어내게 한다. 혼자 있을 때는 잘 발현이 되지 않다가도 여러 남성과 함께 있을 땐 아주 강하게 발현된다. 유리천장이 여성을 쓰러뜨리고 가둔다면 맨박스는 남성을 거칠게 행동하도록 유도한다. 특히 여성이나 다른 약자들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맨박스는 남성들이 주로 가해자로 행동하게 만든다. 맨박스는 자신의 우월감을 만족시키는 도구로 작동하기도 하고, 다른 남성의 평판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도 작동한다. 어떻게 작동하든 여성을 대상으로, 또는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가해자의 위치에 서게 된다.


마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이 약자이고, 피해자가 된다는 식으로. 유리천장이 잘못된 사회적 인습이라면, 맨박스 또한 잘못된 사회적 인습이다. 우리가 벗어나야 할 인습. 이것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수 없는, 혁파해야만 할 인습인 것이다.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고 인식하지도 못한 상태로 가해자가 되게 하는 맨박스. 보이지 않지만, 여러 남성들과 함께 있을 때 자연스레 발현되는 그런 맨박스.


이렇게 유리천장과 맨박스는 보이지 않지만 여성과 남성의 행동을 제약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작동하지만 방향은 정반대다. 피해자와 가해자로. 자,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피해자와 가해자를 양산하는 제도나 관습이 필요할까? 당연히 필요없다. 없애야 한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21세기가 된 지금까지도 없어지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을까?


그것은 책임을 개인에게 지우기 때문이다. 유리천장을 깨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도 노력을 덜한 여성의 책임으로, 맨박스에 갇힌 행동을 해도 그런 행동을 한 한 남성의 책임으로만 여기는 사회에서는 유리천장과 맨박스도 없어지지 않는다.


2. 해결책은 백신이다. 접종률이 60%가 넘어야 하는


이런 일은 한 개인의 책임으로 넘겨서는 안 된다. 또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해서도 안 된다. 가해자가 또는 가해자와 같은 범주에 속한 사람들이 해결하려고 해야 한다. 


이 책에서 언급된 성폭행 사건을 보자. 미국 대학에서는 성폭행 사건이 자주 일어난다고 한다. 주로 피해자는 여성이고 가해자는 남성이다. 그런데 해결책은 주로 여성에게 주어진다. 가해자인 남성에게서 해결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 책에 언급된 내용을 보자. 지금 우리 사회에서 성폭행 사건이 일어났을 때 세우는 대책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한번은 내가 운영하는 단체인 ACTM(행동하는 남성들 A Call To Men이라는 단체의 약자다)이 대학 캠퍼스에서 발생한 끔찍한 강간 사건의 대응팀 회의에 초청받은 일이 있다. (중략)

주요 의제는 학교 측의 즉각적이고 장기적인 캠퍼스 내 여성 안전조치였다. 토론을 거치면서 비상연락망 제작, 여학생들 간의 2인 1조 시스템, 여학생들을 위한 교내 셔틀 차량의 증편 등이 논의되었다. (중략) 이 방법은 남성이 저지른 폭력에 대처할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한다는 점이다. 대처할 책임을 여성들이 져야 할 뿐만 아니라 안전을 도모한다는 미명 하에 여성들의 행동을 제약하고 더욱 불편하게 만드는 대응책이었다. 남성들의 삶에는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은 채 말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성 폭력 문제의 대응책이었다. (135쪽)


"... 남학생들을 차량으로 이동시키면 어떨까요? 남성이 범죄의 장본인인데 왜 남성이 저지른 폭력 때문에 여성들이 피해를 바야 하죠?" (136쪽)


학교는 교내 성폭력 대응 방침을 개선하는 한 달 동안 여학생이 아닌 남학생들을 차량으로 이동시키기로 결정했다. (137쪽)


바로 이것이다. 성폭행 사건이 벌어졌을 때 우리 사회에서 제시하는 방식도 여성의 안전에 대해서 논의를 먼저 한다. 대책도 그 선에서 나온다. 가해자인 남성을 제약하는 대처 방법은 나오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피해자의 행동을 제약하는 대책이 나온다. 마치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그리고 문제를 일으킨 사람은 특정 개인, 즉 대다수의 남성은 그렇지 않은데, 문제 있는 몇몇이 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대다수의 남성에게는 책임이 없다. 그들은 착한 남성일 뿐이다.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이렇게 나간다.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착한 남성들이 많다. 너무도 착해서 문제를 일으킨 특정 남성에게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 그들의 행동을 뒤에서 수군거리면서 나는 저렇게 행동하지 않아, 그 사람 행동이 잘못됐어라고는 하지만, 그 사람 앞에서 직접 그렇게 하면 안돼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냥 착할 뿐이다. 그리고 내가 아닌 것에 안도하고 그냥 넘어간다. 이러니 맨박스는 눈에 드러나지 않고 남성의 행동을 계속 규정지을 수 있게 된다.


이 책에서 토니 포터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한다. 소위 착한 남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잘못된 행동을 지적해야 한다는 것. 그것은 맨박스라고. 우리가 없애버려야 할 맨박스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착한 남성들이 말하기 시작하면 맨박스가 눈에 보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없애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착한 남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맨박스를 예방하는 백신이다. 독감을 예로 들면 걸린 사람만 치료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독감은 늘 유행하게 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게 된다. 그런데 백신을 60% 이상의 사람들이 맞으면 독감 유행을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다고 한다.


바로 이것이다. 맨박스를 없앨 수 있는 방법. 바로 착한 남성들이 백신 역할을 해야 한다. 그들이 맨박스를 인식하고, 맨박스가 작동되었을 때 그것을 지적해야 한다. 이런 지적들이 쌓이고 쌓이면 백신처럼 맨박스가 작동하는 것을 멈출 수가 있다. 아주 좋은 지적이고 제안이다.


3. 이 책이 제시하는 방법 : 일곱 가지 메시지


1) 남성 중심주의는 사라져야 합니다. ... 오늘날 남자다움의 정의는 세 가지 큰 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인식입니다. 둘째,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이라는 인식입니다. 셋째, 여성은 남성의 성적 도구라는 시각입니다.


2) 가정 폭력과 성폭력을 근절하는 노력은 전적으로 남성들의 몫입니다. 


3) 폭력과 차별은 종류와 관계없이 사라져야 합니다.


4) 여성들이 내는 목소리에 귀 기울려야 합니다.


5) 여러 억압 행위에는 교차점이 존재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6) 지역 사회에 기반을 둔 참여를 유도해야 합니다.


7) 남성 스스로 남성에 대한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179-180쪽)


4. 무엇이 맨박스인가: 맨박스 10계명


남자는 울지 않는다  

남자는 분노 이외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남자는 쫄지 않는다

남자는 모든 것을 지배하고 통제한다  

남자는 약한 것들을 보호한다  

남자는 강하고 여자는 약하다  

남자는 여자처럼 굴지 않는다 

남자는 게이처럼 굴지 않는다 

남자는 여자를 소유한다 

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


이게 십계명이란다. 남자다움의 십계명. 설마 이 십계명을 금과옥조로 여기면서 살아가는 남자로 살고 싶지는 않겠지. 남자이기 전에 사람이다. 여자이기 전에 사람이다. 성소수자이기 전에 사람이다. 우리는 모두 사람이다. 사람은 모는 사람을 차별할 권리가 없다. 사람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할 책임이 있다. 사람은 모든 사람을 자기 자신처럼 대해야 한다. 그러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 


이 책, 모든 남자들이 읽어야 한다. 맨박스에 자신도 알게모르게 갇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이 책의 5장을 보면 다른 남자들의 사례를 통해서 자신을 비춰볼 수 있다.


남자들이 맨박스에서 벗어나면 여자들도 유리천장을 깰 수 있다. 그리고 둘 다 없는 세상에서는 성소수자들도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이것은 남자만의 또 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람들의 문제인 것이다.


이 책은 그 점을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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