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사라진, 그러나 아련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어쩌면 멸종되었다는 호랑이를 본 사람이 있다는 말을 믿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나라에 살던 동물이니, 우리나라에서 사라졌다는 말은 너무 슬프기 때문이다.

 

  어찌 호랑이뿐이랴. 호랑이처럼 사람 앞에 군림했던 동물도 사라졌는데, 그보다 약한 동물들이랴. 동물이 아니라 눈에 잘 띄지도 않았던 식물들이랴.

 

  이런 아련한 그리움, 아쉬움. 여기에 하나 더하면 빗소리도 마찬가지다.

 

   처마 밑에서 조용히 빗소리를 들은 기억. 이제는 처마를 지니고 있는 집을 만나기도 힘드니,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며 빗소리를 듣기는 참 힘들다.

 

또는 대청마루에 누워 빗소리를 듣는 일. 하늘에서 땅으로, 다시 땅에서 하늘로 튀어오르던 비들을 보는 일.

 

비들이 함성을 지르며 온세상을 누비는 모습을 보는 일, 그들의 함성을 듣는 일.

 

손택수 시집을 읽다가 이제는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그런 아련한 그리움을 만났다. 빗소리... 이런 빗소리를 탁구공으로 비유하다니.

 

빗방울이 톡톡 튀어오르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나 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비라는 존재를 통해 세상 모든 존재들의 소중함을 말하고 있다.

 

  통도사 빗소리

 

탁구공 튀는 소리다

스님들도 목탁대신

탁구를 칠 때가 다 있네

절집 처마 아래 앉아 비를 긋는 동안

함께 온 귀머거리 여자는

영문을 모른 채 그저 숫저운

미소만, 미소만 보이는데

통도(通度)라면 인도까지 갈까

저 빗소리, 내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그 머나먼 서역까지 이를까

흙이 아프지 말라고

흙의 연한 살이 다치지 말라고

여자는 처마 아래 조약돌을 가지런히

깔아주고 있는데, 그

위에서 마구

튀어오르는 빗방울,

저 빗방을

하늘과 땅이 주고받아 치는 탁구공 소리다

 

손택수, 호랑이 발자국, 창작과비평사, 2003년 초판 3쇄. 99쪽.

 

서로 밀쳐내는 탁구공이 아니라, 너에게 이르라고 보내는 탁구공 소리다. 도(道)를 서로에게 보내는. 받기 싫어서가 아니라 네가 먼저 받으라는.

 

좋은 것을 나 먼저 갖지 않고 다른 존재에게 먼저 보내는 그런 마음, 그런 행동. 어쩌면 시인은 통도사에서 빗소리를 통해 그런 마음을 엿보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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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7 17: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27 18: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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