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를 읽으면서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자꾸 생각났다. 농촌이라는 장소.

 

  젊은이가 살아가야 할 장소가 바로 농촌이라는 것. 이번호 제목은 '농본주의가 세상을 살린다'다.

 

  영화에서는 농촌이 그들을 살린다. 그렇게 농촌은 젊은이들을, 노인들을 살린다.

 

  녹색평론에서 농본주의를 주장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이제 4차산업혁명이라고 호들갑들을 떠는데 인공지능은 우리들 일자리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뺏는다는 것.

 

기계화된 사회에서 인공지능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사람들이 살아갈 장소는 어디일까? 그곳은 바로 농촌일 수밖에 없다.

 

자신들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 농사다. 그래서 우리는 농본주의가 세상을 살린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농본주의다. 단순한 농업이 아니다. 이번 호에서도 산업농, 기업농과 소농을 비교하고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농본주의는 소농이다. 소농들이 1000명 농촌에 있는 것이 대농, 기업농 100명이 있는 것보다 훨씬 좋다는 것.

 

우리들 생명을 이어가는 데는 이런 소농들이 필요하다는 것. 소농들도 관행 농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생태 농업을 해야 한다는 것.

 

단지 유기농업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함을 이번 호를 읽고 깨닫게 되었다. 농약과 같은 화학제품을  안 쓰는 것에서 멈추면 안 된다는 것. 생태순환농사의 길로 가야 한다는 것, 그것은 바로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라는 것.

 

이것이 바로 농본주의다. 정치권이 어느 정도 민주적이 되었다면 이제는 우리가 지속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정치가 필요할 때다.

 

성장은 갈수록 줄 것이라는데 세계 경제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한다면 성장이 안 되었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준비해야 한다.

 

그 준비는 바로 농업에서 시작해야 하고, 기업농이 아닌 소농, 생태 순환이 되는, 서로 나눌 수 있는 그런 농본주의가 확립되어야 우리가 지속가능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농업에 관심을 가지고 농업에 관한 제대로 된 정책을 마련할 때다. 녹색평론에서 주장하는 '농민기본소득'도 진지하게 고려해 봐야 한다.

 

지금 이대로 농촌이 죽어간다면 우리의 미래도 없기 때문이다. 농촌을 살리기 위해서는, 생태순환농사를 짓는 소농들이 농촌의 주축이 되기 위해서는 '농민기본소득'은 필수다.

 

그런 정책에 대해 많이 고민해봐야 한다.

 

여기에 이번 호에서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에 대해서 짚어보고 있다. 일본 근대화의 계기... 일본인들은 메이지유신을 자랑스레 생각하고 있다는 것, 메이지 유신과 그 뒤 침략전쟁을 구분하고 있다고 하는데...

 

하지만 녹색평론 이번 호에서는 메이지 유신에 이미 주변 국가에 대한 침략이 담겨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 역사에서 메이지 유신과 그 뒤의 행동이 단절된 것이 아니라 연속된 것임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이런 글들을 읽으며 일본인들이 정말로 잘못 알고 있어서 지금처럼 행동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교육의 중요성.. 역사를 바로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메이지 유신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이제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보호무역 정책을 펼쳐 우리나라 철강산업도 된서리를 맞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어디 철강산업뿐이겠는가.

 

이럴 때일수록 우선 우리가 먼저 추구해야 할 정책이 무엇일지, 우리의 생존, 생활을 위해서 어디에 중점을 두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 우선 순위에 농업이 있어야 함을 이번 호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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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4 10: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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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4 10: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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