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속일 수 있을까

 

'동공'이란 말을 사전에서 찾아본다. 제목에도 시에도 한자어가 쓰여있지 않아도 뜻은 '눈동자'라는 확신이 들지만,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에 찾아본다.

 

'시간의 동공'이란 제목을 가진 시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 구절을 통해 아마도 제목이 만들어졌으리라.

 

'언제든 배반할 수 있는 시간의 동공들' (26쪽)

 

그래서 찾아보기로 한 것. 꼭 눈동자로만 보기도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의 눈동자를 우리는 언제든 배반한다고.

 

사라지고 말 것들이 사라지지 않는 양 보일 수도 있다는 것, 그렇기도 하지만... '동공'이란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국립국어원, 표준대사전) 다섯 개의 '동공'이 있다. 이 중에 이 시에 어울릴 만한 '동공'은 둘이다.

 

하나는 '눈동자' 그리고 또 하나는 '동공(洞空)'이라고 쓰는 '공동(空洞)'이라고도 하는 텅 비었다는 뜻.

 

그렇다. 우리는 시간을 이길 수 있을까. 우리가 시간의 눈동자를 배반한다고 해도, 그 눈동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우리는 시간의 눈동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 치지만 결국은 시간의 눈동자를 결코 벗어날 수없다.

 

시간의 눈동자를 벗어날 수 없을 때, 우리는 텅 비게 된다. 무(無)로 돌아가게 된다. 그렇게 시간은 우리와 함께 하며 우리를 서서히 또는 급작스레 사라지게 한다.

 

시간 속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 시간은 스러짐, 사라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시간의 눈동자를 의식하고 살아가야만 하는데...

 

가끔은 자신이 영원할 것처럼, 시간의 눈동자를 속일 수 있는 것처럼 살아가기도 한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이 시간의 눈동자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깨닫고 허무한 마음에 빠지기도 한다.

 

이 시집의 첫시가 바로 그렇다. 시간 속에서 사그라지는 우리들 운명을 이야기하고 있단 생각이 든다.

 

폐점

 

문을 닫은 지 오랜 상점 본다

자정 지나 인적 뜸할 때 어둠 속에 갇혀 있는 인형

한때는 옷을 걸치고 있기도 했으리라

그러나 불현듯 귀기(鬼氣)가 서려오고

등에 서늘함이 밀려오는 순간

 

이곳을 처음 열 때의 여자를 기억한다

창을 닦고 물을 뿌리고 있었다

옷을 걸개에 거느라 허리춤이 드러나 있었다

아이도 있었고 커피 잔도 있었다

 

작은 이면 도로 작은 생의 고샅길

오토바이 한 대 지나가며

배기가스를 뿜어대는 유리문 밖

 

어느 먼 기억들이 사는 집이 그럴 것이다

어느 일생도 그럴 것이다

 

박주택, 시간의 동공, 문학과지성사, 2009년.  11쪽.

 

시간은 언제나 나를 지켜보고 있다. 나는 시간의 눈을 피할 수 없다. 시간에서 도망칠 수 없다. 내가 아무리 숨어도 어떤 틈으로도 시간은 나를 보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잘 살아야 한다. 시간을 벗어날 수 없기에 시간 속에서 잘 살아야 한다. 나를 시간에 맡기고 그 속에서 내 삶에 충실해야 한다.

 

언젠가는 텅 비어버리는 '동공'이 될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늘 시간의 눈동자(瞳孔)를 의식하면서 그렇게 살아가야겠다.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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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0 15: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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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0 17: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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