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더럽히는 말들, 귀를 씻어야만 할 말들이 나돌아다니는 요즘이다. 이렇게 말이 칼이 되어 사람들 가슴을 후벼팔 때, 도대체 그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말을 뱉은 그 입 속으로 다시 집어넣고 싶지만, 한 번 나온 말들은 다시는 그 사람 입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도리어 다른 사람들 가슴 속으로, 마음 속으로 파고 들어 상채기를 낸다. 새 살이 돋기까지 꽤나 긴 시간이 걸리는 상처를 만들어 낸다.

 

  말을 뱉은 자들은 자기들이 뱉은 말이 얼마나 무서운 무기인지 알고 뱉을까? 일부러 사람들 가슴을 후벼파기 위해서 뱉을까.

 

말을 고르지도 않고 걸르지도 않고 그렇게 뱉어내기만 하는데, 다른 사람들 말을 자기 말처럼 모두 무기라고 생각하고 받아치는 걸까?

 

생각할수록 말이 넘치는 사회다. 그것도 나와서는 안 될 말들이. 다시 입 속으로 들어가야만 할 말들이. 사람들 귀를 씻게 하는 것을 넘어서 마음에 상처를 내는 말들이.

 

이런 말들이 넘쳐나는 때에 정일근의 시집을 읽으며 말이 주는 위로를 받았다. 시도 너무 어려워 도무지 위로 받을 수가 없었는데, 정일근의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있어 좋았다.

 

제목이 "방"이다. 한자어로 '방(棒)'이라고 하는데, 선불교에서 참선을 할 때 정신을 깨우는 소리가 바로 방이다. 정신을 깨우는 몽둥이다.

 

이 시집이 그렇다. 지나치게 많은 말들이 오히려 우리에게 상처를 주고 있으니 정신차리라는, 그런 말 하지 말라는 그런 몽둥이.

 

몸에 상처를 주는 몽둥이가 아니라 마음을 깨우는 몽둥이다. 그래서 몽둥이를 맞으면 마음이 오히려 더 상쾌하다.

 

시들이 길지도 않다. 짧은 말들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그것도 어려운 상황이 아니라 우리가 실생활에서 겪은 일들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시를 보자. 마음에 어떻게 다가올지.

 

  씨감자 십일조

 

감자 농사 짓는 농부친구의 집에서 보았다

올해 농사 십분의 일쯤을 씨감자로 남겨둔 것을

 

친구는 감자 농사의 십일조를

땅의 교회에 씨감자로 헌금하는 독실한 신자였다

 

부끄러웠다 나는 생의 첫 감자 농사에서

작은 감자 한 알까지 다 캐서 모두 먹어버렸다

기념사진 찍고 자랑하며 먹기 바빴다

 

씨감자 씨눈이 나를 노려보며 한 마디 던진다

사이비!

 

정일근, 방, 서정시학, 2013년 초판. 20쪽.

 

꼭 말뿐이 아니다. 이런 행동. 보라. 감자 농사에서도 이런 것을 느낄 수 있는데, 다른 분야에선 말해 무엇하랴.

 

수억, 수조 원을 자신의 곳간에만 쌓아두고, 숨겨두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들이 뱉은 더러운 말들과 행동들과 이 시에서 나오는 이런 말들. 이런 행동들.

 

비교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 시집 좋다. 읽을수록 마음이 따뜻해진다. 세상, 이런 시들처럼.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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