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에 경쟁에서 최종 우승한 사람에게 자동차 열쇠를 골라 전시되어 있는 자동차를 열게 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었다. 문이 열리면 그 자동차의 주인이 되는 것.

 

  경쟁도 힘들었을텐데, 그 경쟁에서 우승해서 주어진 열쇠가 눈 앞에 있는 자동차에 맞는 열쇠인지 아닌지를 여러 열쇠 중에서 자신이 선택해야 하는 것.

 

  신중하게 열쇠를 골라 자동차를 열려고 하는데, 대부분의 경우는 맞지 않는 열쇠였다.

 

  열쇠는 열쇠이되 전혀 열 수 없는 모양만 열쇠인 금속. 어떤 자동차에는 맞는 열쇠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자동차에는 맞지 않는 열쇠였다.

 

  시집을 읽으며, 많은 시들을 보며 시들이 내 삶을 다른 쪽으로 열어젖히는 열쇠 역할을 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내게 주어진 수많은 열쇠들을 가지고 여러 문들을 열려고 한다. 열쇠를 문 자물쇠에 갖다 댔는데, 철컥 열리는 문이 있고, 도무지 열릴 생각을 하지 않는 문도 있다.

 

자기가 지니고 있는 세계를 보여주지 않는, 열쇠를 준다고 하지만, 직접 맞는 열쇠를 주지 않고 어느 열쇠가 맞을지 찾으라고 하는... 또 하나의 도전.

 

김중일의 '아무튼 씨 미안해요'란 시집도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열쇠를 가지고 문에 갖다 댔는데 이건 열쇠가 자물쇠 구멍에 들어가지도 않는 경우.

 

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는 경우. 낭패다. 기껏 시세계 근처까지 와서 문 앞에 섰는데, 문이 열리지 않아 정작 들어가지 못하다니...

 

이런 안타까움에, 어떤 열쇠를 찾아야 할지 고민을 하지만... 대부분은 열쇠 찾기를 포기하고 만다. 열쇠 찾는다는 것에 이미 힘을 다 빼려 문이 열려도 들어갈 수 없는 상태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시집 자체가 굳건한 문으로, 내게는 맞지 않는 열쇠밖에 없으므로, 할 수 없이 시집의 첫시를 본다. 제목은 '물고기'다. 그런데 '열쇠'다. 이 놈의 열쇠... 열지도 못하는 열쇠라니...

 

  물고기

 

나는 물고기였으니

 

어머니가 살집을 다 발라내시면 드러나는

잃어버렸던 앙상한 열쇠였으니

 

물 속에서 온몸을 비틀어

물의 금고를 열었던

열쇠의 형상을 한 물고기였으니

 

금고 속엔 물거품과 백지만 가득했으니

 

몸속에 꽁꽁 숨겨온 자물통 같은

어머니 자궁 속에 꽂힌,

한 늙은 극작가가 불행 속에 쓴

희극의 첫 막을 열었던 열쇠였으니

 

그리하여 여기 발밑에 버려진

오래된 극장의 열쇠였으니

 

김중일, 아무튼 씨 미안해요. 창비. 2012년.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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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1 09: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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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1 13: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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