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전체시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일도 필요하지만, 그 시집을 읽었을 때 어느 한 시를 기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시간이 흘렀을 때 어느 시도 기억하지 못하는 시집이라면 참, 난감하다. 읽었는지 읽지 않았는지도 생각나지 않는 시들.
그러나 어느 한 시가 기억난다면 그 시집은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시인이 시집으로 기억되는 경우보다는 특정한 한 시로 기억되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은가.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시 하나를 가지고 있는 시인은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도 한다.
이 시집을 읽었을 때 자꾸 마음 속에 맴도는 시는 바로 '물맛'이었다. 나이를 들어가는지 이제는 더하기보다는 덜기에 더 관심이 가서 그런가.
물맛
물맛을 차자 알아간다
영원으로 이어지는
맨발인,
다 싫고 냉수나 한 사발 마시고 싶은 때
잦다
오르막 끝나 땀 훔치고 이제
내리닫이, 그 언덕 보리밭 바람 같은,
손뼉 치며 감탄할 것 없이 그저
속에서 훤칠하게 뚜벅뚜벅 걸어나오는,
그 걸음걸이
내 것으로도 몰래 익혀서
아직 만나지 않은, 사랑에도 죽음에도
써먹어야 할
훤칠한
물맛
장석남, 뺨에 서쪽을 빛내다, 창비. 2011년 초판 4쇄. 14-15쪽.
흔히 아무 맛을 내지 못하는 물을 '맹물'이라고 하는데,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맹물은 '하는 짓이 야무지지 못하고 싱거운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
한창 젊었을 때는 맹물과 같은 사람, 참 능력없는 사람, 한심한 사람으로 여겼는데, 그래서 무언가 재주가 있는 사람, 또 자기 주장을 확실하게 하는 사람을 좋게 봤는데, 차츰차츰 나이들어가면서 사람 그자체인 사람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억지로 자신을 꾸미지 않은 사람, 그냥 다른 사람 곁에 있어도 그 사람과 어울리는 사람, 그런 사람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런 사람이 바로 이 시에서 말하는 물맛과 같은 사람이 아닐까.
온갖 것을 첨가한 음료보다는 그냥 물을 좋아하는 나이, 사람의 삶도 그렇게 더하기보다는 덜하는 삶으로 향하는 나이, 그런 삶을 좋아할 수 있는 나이.
아니 나이를 떠나야 한다. 우리의 삶이 이렇게 명료하게 이런 물맛을 아는 삶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 역시 이런 물맛을 아는, 이런 물맛을 내 것으로 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