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김재규의 변호인이었다 - 170일간의 재판 기록으로 밝힌 10.26의 진실
안동일 지음 / 김영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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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들이기 힘든 정보들이 있다. 그 정보가 사실인지 아닌지 잘 판단하지 못할 때가 그러하지만, 자신이 알고 있던 사실과 다를 때는 더욱 그렇다.

 

그것도 자신이 살아온 내내 들어왔고 생각해 왔던 것과는 다를 때 상당한 곤혹감과 함께 우선 부정하고픈 마음이 든다.

 

이게 사실이란 말야? 하는 생각을 먼저 하고 비판적으로 접근하게 된다. 자신이 알고 있던 것들이 환경에 의해서 자신에게 스며들어 왔음을 인정하면서도 이미 그렇게 자신의 일부가 된 것들을 사실이 아니라 진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바로 이 책도 그랬다. 문영심이 쓴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라는 책을 읽고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극히 일부분으로 내가 전체를 놓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동안 지녀왔던 생각을 바꾸기에는 힘이 들었다.

 

그것은 바로 김재규에 대한 평가다. 그를 의사라고, 우리나라 민주화를 앞당긴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그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것도 그런 단체의 중심에 함세웅 신부가 있다는 것.

 

아마 영화 "1987"을 본 사람은 알리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밖으로 알리는데, 그 밖에서 활약했던 신부님이 바로 함세웅 신부라는 것을. 그만큼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에 큰 역할을 하신 분인데, 이 분이 김재규 명예회복추진위원회 일을 한다고 하니... 무언가 내가 모르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사실만 생각하기로 했다. 김재규는 박정희를 쏘아죽였다.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그것을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고 표현하는데...

 

그가 중앙정보부장으로 유신의 심장에서 한 축을 담당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박정희에게 접근하기도 쉬었다는 것도. 또한 그가 박정희를 쏨으로써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의 불길이 일어났다는 것.

 

다만, 그가 일으킨 불길은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의 쿠테타로 유신 잔재에 대한 설거지가 이루어지지 않고 도리어 유신 잔당들이 정권을 연장했다는 것.

 

이건 사실이다. 그냥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일 것은 없다. 다만 이제는 더 명확한 사실을 밝혀야 한다.

 

왜 김재규를 그렇게 서둘러 사형시켰을까? 김재규뿐만이 아니라 10.26에 얽힌 사람들에 대한 재판을, 그것도 단순하게 명령만을 따랐을 뿐인 사람들까지도 그렇게 빨리 사형시켰을까?

 

이들을 살려두면 안 되는 무슨 이유가 있었던 것 아닐까? 그 점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유신 잔당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들의 입을 막을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호랑이가 없어지니 늑대가 호랑이 역할을 한다고, 18년 장기집권 독재자가 사라지니 그걸 본받고 싶은 새끼 독재자가 등장했으니...

 

그렇게 김재규가 말하는 유신 설거지는 다시 몇 십년 뒤로 1987년 민주화 운동을, 그리고 민주 정권이 탄생하기까지 뒤로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김재규를 변호했던 안동일 변호사의 법정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법정에서 공방이 오갔고, 결론이 어떻게 났는지를, 재판 과정을 통한 기록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김재규를 재평가 하는데 도움이 된다. 적어도 그에 대해 가졌던 마음의 한쪽에 문을 열어둘 수는 있게 된다.

 

그리고 의문점을 갖게 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토록 재빠르게 재판을 진행한 이유는 무엇인가? 1979년10월 26일에 김재규가 박정희를 쏘아 죽였다. 그리고 그는 며칠 뒤 체포되어 재판을 받기 시작한다. 재판 결과 사형, 1980년 5월 24일 사형이 집행된다.

 

이보다 빠른 시기에 1980년 3월 6일에 그의 비서관이었던 박흥주 대령의 사형이 집행됐다. 이상하다. 아무리 현역 군인이라고 해도, 주범의 재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김재규의 최종판결은 1980년 5월 20일에 이루어졌다) ... 종범 또는 공범의 사형 집행을 하다니...

 

체포된 지 7개월만에 사형이 집행된 것이다. 박흥주 대령을 제외하고는 모두 3심까지 갔는데 겨우 7개월이라니... 사람의 목숨을 좌우하는 재판에 겨우 7개월이라니...

 

박정희 딸인 박근혜가 체포된 지가 꽤 됐는데도 1심 선고조차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속전속결로 판결이 이루어진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이 책을 구치소에 있는 박근혜가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재판이 불공정하다는 둥 여러 말을 많이 하고 있는데,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김재규가 어떤 절차에 의해 재판을 받았는지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다면 지금 재판의 불공정성 운운하는 이야기는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

 

이 책에도 이런 재판 상의 문제가 많이 나온다. 그렇다면 사법부가 권력에 종속되어 있다는 말이 되는데, 이런 점을 이 책을 통해서 사실이라고 확인할 수 있으니, 김재규 평가에 이 책이 기여를 할 수 있단 생각을 한다.

 

아무리 흉악범일지라도 절차를 거쳐 재판을 해서 판결을 하는데, 특히 대통령을 사살한 경우에는 충분한 심의를 거쳐야 할텐데, 최종 집행까지 7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감추려는 것이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판단은 읽는 사람들 몫이다. 나 역시 나대로 판단은 하겠지만, 이 책이 그런 판단에 실마리를 제공하기는 하겠지만...

 

판단을 하기 위해서도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우리나라에서 박정희만큼 공과에 대한 평가가 갈리는 인물이 어디 있는가. 그만큼 김재규도 비슷하게 평가가 엇갈리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은 사실을 바탕으로 하니, 그 사실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진실을 찾기를 바라며... 

 

하나 덧붙이면 사회를 변하시키는 방법을 1979년과 2016년을 비교해 봐야 한다. 부녀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방법. 

 

아버지는 김재규라는 한 명의 실행으로 개인의 신체적 죽음이라는 방법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났지만, 딸은 촛불이라는 국민들의 의지를 받은 국회에서 탄핵소추를 의결하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을 의결하여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정치적 죽음을 선고받았다.

 

그 다음 진행은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너무도 다르다. 아버지의 육체적 죽음은 또다른 독재, 신군부를 불러왔고, 대다수 민중의 희생을 막지 못했지만, 딸의 정치적 죽음은 민중의 의지를 계승한(지금까지는 분명 그렇다는 평가다) 정부를 탄생시켰다.

 

세월이 흐른 만큼, 또 정치적 사건들을 많이 겪은 만큼 우리 국민들의 정치의식도 높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개인의 결행이 아닌 국민들의 힘으로 얻어낸 민주주의니 이제는 특정한 집단에 그 결과를 내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 내줄 수도 없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생각하게 된다.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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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2 08: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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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2 16: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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