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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터에서
김훈 지음 / 해냄 / 2017년 2월
평점 :
사람들은 말한다. 자신의 삶을 소설로 쓰면 대하소설은 충분히 된다고. 그렇게 우리네 삶은 모두들 자기만의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특히 격랑의 한국 현대사를 살아온 사람들은 소설보다도 더 진한 이야기를 살아온 사람들인데, 이들의 이야기가 곳곳에서 소설로, 영화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때로는 진한 슬픔을, 때로는 가벼운 웃음을, 때로는 쓴 웃음을 지닌 그런 이야기들이 우후죽순처럼 나오고 있는데...
김훈이 쓴 이 소설 역시 우리나라 현대사를 살아온 가족의 이야기다. 마동수-마차세 부자를 중심으로 소설이 전개되는데...
일제시대에 태어나 박정희가 죽은 해에 죽은 마동수는 흥남철수 때 가족과 헤어진 이도순과 만나 마장세, 마차세를 낳는다. 그러나 마동수는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머무를 곳을 찾지 못해 평생을 떠도는데, 그래도 정기적으로 집에는 들어오지만 그가 정착했다고는 할 수 없다.
죽음의 순간에도 홀로 죽어가는 그는 평생을 제 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어렸을 때는 일제시대라 제 장소를 찾지 못했고, 해방이 되어서는 전쟁이다 뭐다 하여 다시 변방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삶.
이도순 역시 마찬가지다. 피란민이라는 존재는 이미 밀려난 존재다. 이들은 자신들이 영원히 머무를 장소를 마련하지 못한다. 비록 남쪽에서 가정을 꾸렸을지라도 정신을 잃어가는 치매 상태에서 이도순은 피란 올 때 잃어버린 딸을 찾기만 한다.
죽을 때까지 살아온 남쪽이 이도순에게는 정착한 장소가 아니라 언제든 비워주어야 할 공간에 불과했던 것이다.
본래 살던 곳이 서울이었던 마동수가 일제시대와 전쟁을 통해 장소를 잃었다면, 이도순은 피란으로 장소를 잃었다.
장소를 잃은 사람들이 잠시 머무르던 곳, 그 공터에서 태어난 형제, 마장세-마차세. 이들 역시 부모들의 삶과 다를 것이 없다.
본디 가진 것이 없으면 정착하기 힘들다. 큰아들 마장세는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고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외국에 남아 산다. 그에게 한국은 '거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가 살고 있는 동남아 역시 그가 머무를 장소는 되지 못한다.
그곳 역시 그에게는 '공터'에 불과하다. 잠시 머무는 곳. 그래서 그는 한국으로 압송되어 감옥으로 가게 되는데.. 이것이 그의 귀향이다. 귀향이라고 해도 그는 역시 머무르지 않는다. 교도소가 평생을 사는 곳도 아니고, 이곳 역시 머무르다 떠나야 할 공터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그래도 끊임없이 장소를 확보하려는 노력을 보이는 이가 바로 둘째 아들 마차세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그는 자신에게 얽혀 있는 인연의 끈들로 인해 괴로워하지만, 그렇다고 형처럼 그 끈을 끊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공터'를 '장소'로 만들어가야 할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이 바로 자신의 아내가 되는 박상희와 첫딸인 '누니'다.
하얀 눈이 오는 날 태어났다고 해서 누니라고 붙인 이름. 그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세상의 때를 덮는 눈처럼 맑고 깨끗한 세상이어야 한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의 공터를 '장소'로 만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이 역시 쉽지는 않다. 마차세가 직업을 잃고 임시직으로 다시 배달일을 하는 데서 소설이 끝나는 것은 이들이 공터를 장소로 만드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를 암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소설 제목은 '공터에서'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때 공터는 바로 우리가 살아온 우리나라, 그리고 우리나라 현대사인 것이다. 이것이 장소가 아니고 공터인 것은, 우리 모두 이 공터의 주인인 것처럼 살아왔지만, 실상 우리는 잠시 머물다 떠나는 사람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공터는 곧 빈곳이고 진공이다. 무엇이나 다 빨아들이는 진공, 그러나 진공은 다시 뱉어내야 자신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공터'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누구도 머물 수 없는 곳이다. 우리 역사 역시 마찬가지다. 역사의 주인이라는 것은 자만에 불과하다. 우리는 잠시 머물다 갈 뿐이다.
그걸 모르고 자신이 그 공터의 주인인 양 행세했던 마차세의 친구이자 사장이었던 오장춘의 최후는 비참할 뿐이다. 역사에 영원히 머무를 수는 없으니, 그는 죽음으로 퇴장할 수밖에 없다.
이런 공터에서 가족이라는 인연으로 묶인 끈은 무엇보다도 질기다. 쉽게 끊기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는다. 마장세가 그토록 부정하고 버리고 싶었지만 버리지 못했던 것, 마차세 역시 그 관계를 버릴 수가 없다.
공터가 이어주는 그런 관계들, 역사들... 그 속에서 조금씩의 변화는 일어나겠지만 공터가 없어지는 변화가 일어나기는 힘들다. 그러니 힘겨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 계속 힘들게 살 수밖에.
이게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민중들이 살아온 모습이다. 그런 모습을 김훈은 그의 간결한 문체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문체의 간결성, 전혀 끈적거림이 없는 그의 글들로 인해 마치 한 편의 파노라마, 그것도 현재진행형이 아닌 이미 끝난 과거의 일들을 아무 감정 없이 그대로 전달해주는 느낌을 받게 하는 소설이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거리를 두고 살필 수 있는 소설이라고나 할까. 소설의 인물들에게 감정이 들어설 수 없게 만들고 차분히 우리나라 현대사를 살아온 사람들의 모습을 멀찍이 떨어져서 보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