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나라냐?"란 외침이 몇 해 전에 있었다. 이것은 나라가 아니다. 그러므로 나라의 주인인 우리가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야겠다고 외치고, 거리로 나온 사람들.

 

이따위 나라는 나라도 아니니,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야겠다고 했던 다짐들.

 

이런 자의식. 이것이 우리를 발전으로 이끈다. 자신이 선 자리를 다르게 볼 수 있는 눈. 그것이 바로 인간이 지닌 눈이다.

 

미당문학상 수상자인 이영광의 시 중에서 '이따위 곳'이라는 시가 있다.

 

사람만이 자신이 선 자리를 비판적으로 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시. 약육강식의 세계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냥 살아가는 사자와 누와는 달리, 사람들은 악을 쓴다.

 

'이따위 곳'이라는 말에는 그래서 자신이 발디디고 있는 자리를 고치려는 의지가 작동한다. 그냥 불평불만이 아니다.

 

무언가 생각이 있기 때문에 불평불만이 나오는 것이다. 불평이나 불만은 곧 발전을 위한 밑거름이 된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래야 바로 인간이다. 함께 서는, 앞으로 나아가는 인간.

 

미래를 현재에 끌어들일 수 있는 존재... 바로 그런 인간.

 

이따위 곳

 

아따위 곳에 왜 날

낳아놓은 거야?

딸이 어미에게 대든다

채널을 돌린다

사람 말고는 누구도

이따위 곳이라고 하지 않는다

누의 살점을 찢고 있는 사자 무리 곁에서

누들이, 제 동족의 피가 튄

풀을 뜯고 있다

울지도 웃지도 않고

먹는다

식사가 끝나자 누도 사자도

발아래 이따위 곳 따위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피 좀 본 거로는 꿈쩍도 않는

노란 지평선을 본다

어쩌다 사람만이 찾아낸

불만의 거주지

혼돈의 부동산

이따위 곳

 

2011 미당문학상 수상작품집. 중앙일보 문예중앙. 2011년. 36쪽.

 

'이따위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영광의 다음 시 '칼'에 답이 있다. 우리는 이런 불만을 고치기 위해 칼을 간다.

 

비록 승리의 칼이 아닐지라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그렇게 사람은 힘이 없을 때는 자신의 마음 속에서 칼을 갈다가 함께 할 때, 호민들이 될 때, 그 칼을 밖으로 내민다.

 

칼들이 모여 세상을 바꾼다. '이따위 곳'이라는 자의식이 '칼'을 부른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의 일이다.

 

     칼

 

시를 쓰면서 사나워졌습니다

타협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아니, 타협으로 숱한 밤을 새워서 그렇습니다

 

약한 자는 나날이 약해져 핏발 선 눈을 하고

더 약한 것들을 찾아다니는 세월이라지요

 

날마나 지기 때문에 심장에서 무럭무럭 자라온 한 뼘,

칼이 무섭습니다

 

2011 미당문학상 수상작품집. 중앙일보 문예중앙. 2011년. 50쪽.

 

우리는 이런 경험을 했다. 우리에게는 '이따위 나라, 이따위 세상'을 바꾼 경험이 있다. 그렇게 안에 숨어 있던 칼을 밖으로 내민 적이 있다.

 

잊지 않아야 한다. 그런 경험을... 이제 막 한 걸음을 내디뎠을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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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6 09: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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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6 10: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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