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의 발견 - 꼰대 탈출 프로젝트
아거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이거 참, 나이듦이 꼰대가 되어 감이라는 말로 치환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나이듦이 여유와 지혜로 통하지 않고 꼰대로 통하다니... 이렇게 볼 수밖에 없음을, 그리고 이 책에서 나열한 꼰대들의 특징이 나에게도 대부분 해당한다는 사실에...

 

저런 꼰대들, 쯧쯧 하기도 했지만, 어쩌면 이런 비아냥은 내게로 곧장 돌아와야 함을 이 책을 통해서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고나 할까.

 

갑자기 꼰대들의 천국에 살면서 자신이 꼰대인 줄도 모르고 꼰대짓을 하면서 나는 꼰대는 아니야 하는 사람이 바로 내가 아닐까 하는 생각... 그러니 읽으면서 얼굴은 달아오르고, 마음 한 켠에서는 부끄러움이 스멀스멀 솟아오르고 말았으니.

 

꼰대 = {나이, 서열, 학벌, 재산, 무지, 반말, 오만, 모욕, 자만, 지시, 명령, 지위, 조언, 충고,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어, 너는 대답만 해), 효율, 경쟁, 폭력, 권력, 맨스플레인(man+explain=mansplain : 남자들이 무턱대고 여자들에게 아는 척 설명하려 드는 현상) , 순종, 복종, 무례, 몰염치, 직업, 차별 등등} ≠ {존중, 공감, 이해, 염치, 부끄러움, 성찰 등등}

 

예전에는 - 이런 말을 쓰는 것 자체가 꼰대의 특징이라고 했는데 - 수학 시간에 맨 먼저 집합을 배웠다. 집합이 수학에서 그렇게 어려운 개념인지도 모르고 전체집합, 부분집합, 여집합 등등 이런 집합부터 배웠는데...

 

지금은 아니란다. 그럼에도 그때 배웠던 얄팍한 집합 지식을 나열하면 꼰대라는 집합 원소들을 위에서처럼 나열할 수가 있겠다.

 

이게 다가 아니라 더 많은 요소들이 있겠지만, 우선 이 정도만 해도 많다. 우리 주변에서 너무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여기에 꼰대란 이 요소들을 다 갖추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중 어느 하나만 지녀도, 즉 이들의 부분집합만으로도 충분히 꼰대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꼰대 되기 참 쉽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지내면 꼰대가 된다. 그래서 생각해야 한다. 아렌트의 개념을 빌려와 '무사유 - 생각없음-'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이 책에서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러한 무사유는 곧 꼰대로 이어진다.

 

그냥 살아지는 대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꼰대이기 때문이다. 생각없음으로 살아가게 되면 삶의 중심에는 자신만 있게 되고, 그 자신을 꼰대의 요소들이 에워싸게 된다. 그러니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생각을 해야만 한다.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존중이 필요하다. '역지사지(易地思之)' 말하기는 쉽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이 말이 꼰대 탈출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상대를 그 자체로 존중할 때 공감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존중과 공감은 그래서 꼰대를 탈출하는데 가장 필요한 요소다. 이들을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생각(이것을 한자어로 사유(思惟)라고 하자)이다.

 

우리는 삶에서 생각을 하면서, 성찰을 하면서, 그래서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살아야지만 꼰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권이영의 시 '구역구역' 시리즈가 생각났는데...  가령 '구역구역 02' 라는 시를 보면,

 

 

구역구역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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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이영, 천천히 걷는 자유, 나남출판. 2003년.  26쪽.

 

이 시에서 응용하면 가운데에다 나를 놓고 주변에는 꼰대의 요소들을 놓으면 우리가 얼마나 꼰대가 되기 쉬운지, 우리 주변은 온통 꼰대가 될 요소들로 가득차 있음을 알 수 있다.

 

편견서열지위재산학벌모욕반말지시답정너오만모욕자만

서열지위재산학벌모욕반말지시답정너오만모욕자만편견

지위재산학벌모욕반말지시답정너오만모욕자만편견서열

재산학벌모욕반말지시답정너오만모욕자만편견서열지위

학벌모욕반말지시답정너오만모욕자만편견서열지위재산

모욕반말지시답정너오만모욕자만편견서열지위재산학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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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맨스플레인무사유      복종직업차별효율경쟁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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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정너오만모욕자만편견서열지위재산학벌모욕반말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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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욕자만편견서열지위재산학벌모욕반말지시답정너오만

자만편견서열지위재산학벌모욕반말지시답정너오만모욕

 

이렇게 보면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치열하게 성찰하고 실천해야 한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꼰대들의 벽들을 하나하나 부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얼마나 꼰대가 되기 쉬운지, 아니 벌써 얼마만큼 꼰대가 되어 있는지 깨달아야 한다. 알아야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은가.

 

나는 꼰대가 아니야가 아니라, 나도 꼰대야, 이 꼰대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를 고민해야 한다. 이 책은 그렇게 꼰대에서 벗어나라고, 꼰대는 특정한 어떤 사람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그렇게 꼰대 탈출을 꿈꿀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이 땅의 꼰대들이여, 이 책을 읽어보시라. 자신이 얼마나 꼰대인지... 자신의 삶에서 꼰대 집합 요소 중에서 얼마나 많은 부분집합을 거느리고 있는지 살펴보시라.

 

나 역시 지속적으로 살펴보고 반성하고 고치려고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 역시 꼰대였으므로... 꼰대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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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5 11: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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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5 15: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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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5 12: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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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5 15: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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