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 계
장아이링 지음, 김은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작가 소개가 엄청 화려하다. 루쉰과 함께 중국 현대 문학의 최고봉으로 평가받고 있는 중국의 작가라는 말이.

 

루쉰하면 격동기의 중국에서 꼭 소설만이 아니라 다양한 글을 통해 중국인들의 혼을 일깨웠던 대문호 아니던가. 그런 그와 비견할 수 있는 작가라니. 내게는 루쉰이라는 이름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자리에 있는데... 

 

김명호의 중국인이야기에서 장아이링에 대한 부분이 있었다. 꽤나 인정받는 작가임에는 틀림없구나 하는 생각과, 몇 해 전에 본 '색,계'라는 영화의 원작자라는 사실에 흥미를 갖고 읽게 되었다.

 

영화 '색, 계'와 소설 '색, 계'는 상당히 다르다. 결론은 같을지 몰라도, 상상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많은 차이가 난다.

 

영화와 소설의 차이라고나 할까. 영화에서는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감독이 자신의 상상력으로 표현한 영상으로 줄여나갔다면, 소설은 짧막한 표현을 통해 거의 비어있는 행간을 통해 상상할 수 있는 폭을 최대로 늘려나간다.

 

소설에서는 비어있는 공간을 우리의 상상력으로 채워나가야 한다. 그것도 장편이 아닌 단편임에랴. 이 짧은 단편을 감독은 자신의 상상력으로 채워나갔고, 영화를 먼저 본 나는 소설을 읽으며 영화때문에 자꾸 영화의 장면이 떠올라 제한되는 내 상상력을 의식해야 했다.

 

반대가 되었으면 좋았으련만 하는 생각.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았더라면 훨씬 좋았을 거란 생각을 한다. 내가 먼저 빈 공간을 채워넣고, 내가 채워놓은 장면과 감독이 보여주는 장면을 비교할 수 있었을테니 말이다.

 

그래도 거꾸로 읽었어도 괜찮다. 감독의 상상력에 제한당하긴 했지만, 영화도 역시 상상력을 자극하는 예술이니, 영화에서 나타나지 않은 부분과 소설에서 숨어 있는 부분을 내가 만들어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색, 계'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이 없고, 이 소설집에는 여러 편이 실려 있는데, 루쉰은 중국인의 영혼을 깨우는 작품을 썼다면 장아이링은 중국인의 생활 모습을 우리에게 잘 전달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장면 장면들이 구체적이라서 그대로 화면으로 재생시켜도 될 듯하고, 당시의 중국 사회의 모습을 눈으로 보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읽을 수 있었다.

 

간단하게 말하면 통속적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들인데, 그럼에도 당시 중국인들이 겪고 있던 모습,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일본의 침략과 국민당의 패배로 상하이나 홍콩으로 넘어온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소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 소설집에서 가장 긴 소설인 '못잊어(多少恨)'를 보면 당시 중국인의 생활모습을 잘 알 수 있다. 이혼이 많이 이루어지는 상황과, 무언가 자신의 힘으로 먹고살아야 하는 여성들, 그리고 여전히 과거의 문화를 떨쳐버리지 못한 사람들이 혼재하는 그런 모습.

 

가부장적인 모습과 그것을 떨치려는 모습이 서로 섞여서 그 속에서 자신의 방향을 잡아나가야만 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과도기에 처한 인물들이 어떻게 그 시대를 살아왔는가 하는 점을 소설을 통해서 볼 수 있게 된다.

 

특히 장아이링의 이 소설집에서는 주인공들이 대부분 여성들이니, 여성들이 그러한 시대에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 수 있게 되는데... 그것은 '해후의 기쁨, 머나먼 여정'이라는 소설을 통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장아이링 소설의 특징은 섬세한 표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치밀한 묘사가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잘 살려내고 있으니... 루쉰 이후, 격동기 중국인의 삶, 특히 여성들의 삶을 잘 묘사한 작가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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