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경험 - 유발 하라리의 전쟁 문화사
유발 하라리 지음, 김희주 옮김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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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인류의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도대체 이 전쟁이란 것은 인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라리의 이 책은 전쟁 문화사라고 할 수 있다. 전쟁 문화사라고 하지만 전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 또는 전쟁에 대해 느끼는 감수성의 변천사라고 할 수 있는 책이다. 왜 전쟁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고찰하고 있는 책은 아니다.

 

이전에 번역된 그의 두 저작, 호모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 사이에 이 책을 놓는다면 무리일까?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누르고 지구상에서 인간 종으로 살아남은 이유도 결국은 전쟁이지 않을까. 인류가 신의 위치까지 오르려고 하는데, 올라가게 되는 가장 주요한 요소가 바로 전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만든 각종 무기들은 최신 과학과 기술을 반영하고 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들은 주로 전쟁에서 나온다. 생각도, 경험도.

 

지혜와 신 사이에 전쟁이 있다. 처음에는 정신이 우세하지만, 곧 육체가 우세해지는 그런 전쟁에 대한 관점.

 

근대 초기까지는 사람들은 전쟁에서 감정을 잘 다루지 않았다. 감정을 다루지 않은 이유는 인간의 육체는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명예라는 정신적인 요소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쟁을 통해서 느끼게 되는 감정이나 또는 심리 변화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1740년부터 1865년까지의 시기에 벌어진 전쟁에 대한 회고록이나 글들을 통해 그는 그 이전의 전쟁에 대한 관념과 이 때의 관념, 그리고 현대의 관념에 대해서 분석하고 있다.

 

정신만이 중요했던 1740년 이전의 전쟁에서는 죽음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로지 명예가 문제가 된다. 정신을 지키는 것, 정신을 잘 지키면 육체적 고통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이 1740년 이전의 전쟁에 대한 관념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이때의 전쟁에서 몇 명이 전사를 했고, 몇 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때의 전쟁에서 중요한 일은 명예를 지켰느냐 하는 것이다. 정신적 가치가 우위에 있던 시대...

 

이런 정신적 가치를 대변하는 장군, 사령관들. 이들에게 군사 개개인의 목숨은 아무런 중요성이 없는, 그냥 장기판의 말같은 존재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렇게 사람들의 육체는 정신에 예속된 존재였고, 정신을 위해서는 언제든지 버려도 좋을 존재였던 것이다. 그런데, 1740년에서 1865년 사이의 전쟁에서는 서서히 육체가 부상을 하기 시작한다. 정신의 자리에 육체가 자리잡는다.

 

고통, 그것이 무시될 수 없다. 시대가 현대로 오면 올수록 전쟁의 비참함이 대두되고, 전쟁에서 느끼게 되는 감정이 중심을 이루게 된다.

 

그것도 전쟁에 대한 감정은 좋은 쪽보다는 안 좋은 쪽으로 작동을 한다. 가족도 몰라볼 정도록 폭삭 늙어서 돌아온 젊은이들에 대한 이야기... 전투를 하기 전에 느꼈던 감정들, 전쟁 동안에 일어나는 온갖 부조리, 비참함 등등.

 

이제 전쟁은 육체를 떠난 정신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육체의 문제가 된다. 그것도 개개인의 육체 문제가 된다. 나와 남의 죽음이 아무렇지도 않았던 시대를 넘어 남의 죽음을 통해 내 죽음을 인식하는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죽음만이 아니라 부상을 통해서도 전쟁의 비참함을 내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내 감정이 작동한다. 이런 감정이 작동하면 전쟁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늘어나게 된다. 자연스레 전쟁을 반대해야 하는데...

 

장군 한 명에게 집중되었던 전쟁이 이제는 병사들 개개인에게 집중되기 시작한다. 장기판의 말들이 장기를 두는 사람으로 변모하게 된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이렇게 전쟁에 대한 관점이 바뀌기 시작한다.

 

1913년. 소위 '벨 에포크'라고 하는, 그 아름다운 시절에 사람들은 전쟁에 참여하기를 열망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1914년에 일어나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다. 자신들에게 무언가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하고, 또 새로운 것을 느끼게 하는 경험으로서의 전쟁에.

 

그러나 이들은 전쟁의 비참함, 고통, 참혹함만을 느낀다. 전쟁에서 환멸을 느낀다. 이들은 전쟁은 인간에게 결코 아름답지 않다는 것, 전쟁으로 인한 경험으로 얻은 지식보다는 다른 경험으로 얻는 지식이 더 좋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쩌면 하라리가 전쟁 문화사라 할 수 있는 '극한의 경험'을 쓴 이유도 바로 이런 것일테다. 전쟁에 대해서 환상을 절대로 품지 말라고.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근대 시대의 다양한 전쟁 경험담을 보여줌으로써 내가 바라는 것은 이것이다. 사람들이 이런 경험담과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고, 오늘날의 전쟁 문화를 헤쳐 나갈 길을 조금이나마 쉽게 찾도록 돕는 것이다. 475쪽

 

그렇다. 전쟁은 결코 우리에게 긍정적인 경험을 제공해 주지 않는다. 현대에 들어 우리나라 역시 혹독한 전쟁 경험을 하지 않았던가. 전쟁은 결코 낭만이나 환상이 아님을 우리는 오래 되지 않은 과거에 이미 경험했지 않은가.

 

그럼에도 지금 우리나라 정세는 전쟁의 위험에 처해 있다. 다시 전쟁의 비극을 경험하지 않아야 한다. 하라리의 이 책에서 주장하듯이 전쟁은 우리에게 필수적인 경험이 아니다. 우리는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또 해야만 한다.

 

그것이 신을 꿈꾸는(호모 데우스) 인간이 해야 할 일인 것이다. 전쟁에 대한 감정이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굳이 자신이 느껴보지 못한 '극한의 경험'을 하기 위해 전쟁을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방대한 자료들, 구체적인 회고록들, 그리고 그들을 통한 전쟁에 대한 감정, 생각의 변화... 단지 과거의 변화를 정리한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 책은 지금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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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6 22: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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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7 08: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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