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데, 이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집단이 있다.
여전히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상태, 제자리 걸음만 하면 그나마 다행, 앞으로 내달리려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고 놓아주려 하지 않는 그런 집단.
그러니 세상의 변화와는 무관하게 사람들의 생활은 변화가 되지 않았다.
시인은 이런 상태를 '묶인 배'로 표현하고 있다. 배는 광활한 바다로 나아가야 한다. 거친 파도와도 맞서며, 때로는 순풍을 타고, 또 잔잔한 바다 위에서 조용히 흔들리며 바다를 항해해야 한다.
이런 배가 바다로 나가지 않고 묶여 있다. 더이상 바다로 나아갈 수 없다. 이 배에는 과거의 영화만이 남아 있다.
마치 '비린 흔적만 가득하다'는 표현처럼 이렇게 이미 지나간 것들에 대한 추억만 '만선'이 된다. '만선'의 기쁨이 아니라 '만선'의 슬픔이다. '묶인 배'의 비극이다.
그런데 무엇이 묶여 있을까? 시를 보자.
묶인 배
어디로든 가고 싶었을 게다
천 번 만 번은 출렁거렸을 것이다
부두의 갈매기들도 멀리 날지 못하고
하염없이
썩은 내 나는
포구만 맴도는
봄날
(가여워라)
묶인 배,
붉게 녹슨 눈을 껌벅이며
끼익 - 익 -
목쉰 노래만 부른다
어디로든 가고 싶어
천 번 만 번은 출렁거렸을
묶인 배의 빈 그물처럼
(사랑은, 꿈은, 혁명은, 세상은)
비린 흔적만 가득하다
만선(滿船)이다
김요일, 애초의 당신, 민음사, 2011년. 30-31쪽
이상하게 시의 괄호 친 부분에서 마음이 탁 걸린다. (사랑은, 꿈은, 혁명은, 세상은)이라고 하는 표현.
민주화가 되었다고 다들 믿고 있지만, 과연 우리가 추구했던 '사랑, 꿈, 혁명, 세상'은 변했는가. 이것들은 바다로 나아가지 못하고 묶여버리고 말지 않았는가. 이렇게 묶어버린 집단이 있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멀리 나가지도 못하고 제자리에서 다시 꿈만 꾸고 있는 상태, 이들을 추구했던 행복했던 시절의 과거만을, 생각만을 담고 있는 그런 '만선'
아니다. 우리가 이제 불러야 노래는 '목쉰 노래'가 아니다. 우리는 부두에 묶인 배가 아니라 바다를 항해하는 배가 되어야 한다.
사랑, 꿈, 혁명, 세상에 대해 과거를 떨쳐버리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해야 이렇게 '묶인 배'가 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일은 '묶인 배'의 밧줄을 풀고 바다로 나아가는 일이다. 바다를 항해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