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저쪽을 보여주고 있다. 단지 여기에만 안주하지 말고 저 너머를 보라고.

 

  그렇다. 그래서 시인은 귀하다. 우리가 현실에서 보지 못하던 것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언덕 저쪽을 보여주는 사람, 그가 바로 시인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시인은 이 쪽에 발을 딛고 있어야 하겠지만, 눈은 항상 다른 곳을 향해 있어야 한다.

 

  늘 깨어있는 의식, 살짝 빗겨설 수 있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그런 시인에게서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얻기도 한다.

 

시인에게서가 아니라 시에서이겠지만, 시를 쓰는 사람이 시인이니...

 

  명예퇴직

 

잠든 사이

감또개 떨어진다

 

아무도 몰래

남아야 할 것들은 남고

떨어져야 할 것들은 미련 없이 떨어진다

 

제자리가 아닌 것을 안다는 것은

누가 가르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스스로 비켜 앉아

지나온 길 바라보면

그 길은 이미 내 길이 아니었다

 

산비탈에 감자나 심고

몇 줄 시나 쓰고 살아야 했던 것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십 년을 잘도 버티어 왔다

 

오늘 아침 문득

감또개 떨어진 자리

적막의 한순간을

 

홀로 낯붉히며 바라본다.

 

고영조. 언덕 저쪽에 집이 있다. 포엠토피아. 2001년 1판 1쇄.  88-89쪽.

 

어디 이런 일이 시인뿐이랴. 하지만 시인은 이쪽에서 산 삶을 가지고 저쪽을 보여준다. 다른 쪽도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미 한참 세월이 흐른 다음에 '스스로 비켜 앉아 / 지나온 길 바라보면'이라고 했지만, 이렇게 하기까지는 너무도 많은 시행착오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시행착오를 줄이는 길, 바로 이러한 시를 통해서다. 지금 삶의 한복판에서 아등바등대고 있지만, '제자리가 아닌 것을 안다는 것은 / 누가 가르친다고 될 일이 아니다' 고 하지만, 참 힘든 일이다.

 

우리는 누구나 삶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 삶 속에서 자신의 자리인지 아닌지 고민할 틈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가기 때문에 저 편을 꿈꿀 수 있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 이십 년을 잘도 버티어 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감또개처럼 여물지도 못하고 떨어지는 것을 보며, 떨어져야만 더 커다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을 발견하고 얼굴을 붉혔다고 하지만...

 

이런 시의 화자를 보면서 우리는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생각하게 된다. 자신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 이 편에만 머물러 있던 삶에서 저 편도 볼 수 있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의 삶뿐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도 보게 된다.

 

물러나야 할 때를 모르면서, 감또개를 보면서도 제 자리를 고민하지 않는 사람들, 남들이 명예퇴직 하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서 내 삶과 다른 저 편의 삶도 보게 된다.

 

그렇게 내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다른 사람들의 삶도 생각해 보게 하는 시, 그런 시를 읽으며 잠시 내 삶의 길에서 잠깐 멈춰보고, 비켜서 있어 보기도 하고 싶단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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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2 08: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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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2 09: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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