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릴 거라는 예보에, 오히려 더 잘됐다고, 사람들이 많이 몰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무작정 떠난 인제 여행.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가겠네'라는 말이 있듯이 참으로 먼 곳이다. 분단이 된 나라에서 최북단에 해당하는 곳이라고 보면 된다. 온통 군부대들이 있는 곳이기도 하고.

 

그러나 인제에는 박인환이 있다. 비록 그가 그곳에서 얼마 살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곳은 그의 고향이 아니던가. 또한 그의 문학관이 있는 곳이기도 하고.

 

보통 문학관 하면 작가의 생애를 연표를 통해서 보여주고, 그 작가의 책들과 육필 원고를 모아놓고 만다. 어느 문학관을 가든 거의 비슷한 유형을 지닌다.

 

그런데, 박인환 문학관은 좀 다르다. 그의 작품이 별로 없어서이기도 하겠지만, 그가 활동했던 공간을 축소해서 모아놓았다.

 

다른 문인들과 함께 어울렸던 서점, 다방, 술집 등등... 그래서 다른 문학관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그 점이 좋았다고나 할까. 무엇보다도 문학관 입구가 넓다. 여유가 있다. 거기서 박인환과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그것으로 만족.

 

인제 여행에서 박인환 문학관보다 더 좋았던 곳은 바로 '원대리 자작나무 숲'

 

처음 시작점에서 윗길로 올라갈 때는 이게 뭐야, 자작나무 구경하기 힘드네 하면서 갔는데... 자작나무 숲에 도착하자마자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여름이라 주변은 온통 파란데, 수없이 많은 자작나무들이 하얀 빛깔을 자랑하고 있으니...

 

온통 하얀 빛. 자작나무들 사이를 걸으며 백석의 시를 떠올렸다.

 

산중음(山中吟)이란 시 제목에 딸려 있는 백화(白樺)란 시... 백화는 자작나무의 한자어이다.

 

백화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모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너머는 평안도땅도 뵈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이동순 편, 백석 시전집, 창작과비평사. 1989년 재판. 72쪽.

 

백창우가 이 시에 곡을 붙여 노래로 만들었지. 참 경쾌하게 들리던 노랜데... 원대리 자작나무 숲에 가서 이 시를 떠올렸다. 온통 자작나무.

 

온통 푸른 색이 세상을 지배하는데, 거기서 자신의 흰색을 함껏 드러내고 있는 자작나무. 그렇다. 모두가 다 자작나무였다. 너무도 즐거운 자작나무 숲.

 

하얀 안개와 하얀 자작나무 기둥들... 너무도 하얗게 다가오는 그 숲. 눈에 마음에 담아온 자작나무 숲.

 

백석의 시처럼 온통 자작나무... 그런 곳. 강원도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

 

이곳에서 하루 묵은 다음, 만해를 찾아 백담사로 갔으니... 좋은 공기, 맑은 물소리를 실컷 듣고 온 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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