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첨시민의회
이지문.박현지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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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대통령 선거. 그러나 무엇이 변했는가? 국민들에게 이 과정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탄핵을 바라며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섰던 것. 국민들은 자신들이 뽑은 대통령을 탄핵할 수 없었다. 그가 아무리 못했을지라도.

 

국민들은 거리로 나설 권리만 있었다. 탄핵소추는 국회(국민들이 자신들의 손으로 뽑은. 국민들을 대표 또는 대리한다는)에서 했으며, 탄핵 결정은 9명으로 이루어진(이때는 한 명이 임기만료가 되어 8명이) 헌법재판소에서 했다.

 

여기에 국민들은 지켜보기만 해야 했다. 탄핵 소추가 될지, 탄핵 결정이 될지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주권을 지니고 있다고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길이 없었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법이라는 이름으로 글자에 갇혀 있었다. 그냥 그렇게 국민들은 참여자가 되지 못하고 방관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탄핵이 이루어지고 국민들은 주권을 행사한다. 투표라는 이름으로. 투표라는 행위로 정권을 바꾸어내었다. 하지만 그뿐. 바뀐 정권이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아야만 한다. 이제 국민들의 주권은 다음 선거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몇 년에 한 번 행사하는 주권.

 

대선에서는 주권을 행사했는데, 총선은 아직도 멀었다.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가 전혀 국민을 대표하지 못하고 있는데, 국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법이라는 글자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법이라는 글자들이 막강한 힘으로 국민들의 실질적인 권리 행사를 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법이라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이 국회의원이다. 입법부라나 뭐라나... 여기에 국민들은 청원을 할 수는 있지만 더이상 어떻게 강제할 수는 없다.

 

탄핵 이후, 국민들의 정치 참여 의식은 높아졌으나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은 여전히 좁다. 기존의 제도가 바뀐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기득권을 쥐고 있는 집단들이 기존의 제도를 바꿀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지내야만 할까?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국민들은 몇 번의 촛불집회를 통해 자신들의 정치의식을 고양시켰다. 정치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기도 했다.

 

힘이 경제에 넘어갔다고, 삼성에 넘어갔다고 하기도 했지만, 강력한 힘을 구사하는 정치가 앞에서 삼성도 꼼짝을 하지 못했다. 여전히 힘은 정치에 있다. 경제를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는 것은 정치다. 그래서 문제는 정치다.

 

이때 정치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지금의 제도가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는 몇십년의 과정을 통해 우리가 잘 알고 있다. 개혁해야 한다. 고쳐야 한다. 그래야만 촛불이 꺼지지 않는다.

 

그 방법 가운데 하나로 추첨민주주의가 대두되고 있다. 추첨을 통해서 민회나 의회를 구성하자는 것이다. 지금의 제도로는 국민들을 제대로 대표하기가 힘드니, 국민들을 대표할 수 있는 방법을 구상하자는 거다.

 

추첨을 통해서 뽑으면 어느 정도 대표성을 갖출 수 있다. 또 추첨을 통해 뽑힌 사람의 임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권력을 남용할 수 없게 된다. 추첨을 통해 뽑힌 사람이 정치에 참여할 때 그 기간 동안 생활을 보장해주기만 한다면 좀더 책임있는 정치를 할 수 있다.

 

여러 나라에서 추첨을 통해 의회나 조직을 만들어 시도해 보았다고 한다. 캐나다와 미국, 네덜란드 등의 사례를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물론 이들이 다 성공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런 시도들이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이루어진 의회보다는 더욱 민주적이고 더 책임감 있게 운영된 의의가 있다고 한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이제 서서히 추첨민주주의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 이것에 대한 논의도 시작되고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추첨민주주의에 대해서 지금까지 이루어져 온 실천과 이론에 대해서 정리해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가능함을 그런 사례들을 통해서 이론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정치보다는 작은 분야이기는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추첨배심원제를 이미 실시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탈원전 선언과 관련하여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고 시민배심원단을 선정하여 탈원전에 대한 정책을 결정하겠다고 하니, 이도 일종의 추첨민주주의에 해당할 것이다.

 

여기에 몇몇 도의원들이나 국회의원들의 국민을 무시하는 발언, 행동 등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들이 이렇게 권위적이 된 데에는 지금의 제도가 갖는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추첨민주주의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국민들의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이 책의 말미에 이야기하고 있듯이 갈 길은 여전히 멀다. 이제 시작이다. 그러나 시작이 반이다. 제대로 논의만 한다면 좋은 제도, 국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참여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제도를 만들 수 있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이 책은 여기에 하나의 안내서로 작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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