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 155호다. 여전히 녹색평론에서 할 말이 많은 것을 보니, 우리나라 상황이 여전하다고 할 수 있다.

 

시민들은 깨어있는데, 정치인들이 시민들의 의식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 그래서 시민들은 한 발 앞서갈 준비가 되어 있는데, 정치인들은 앞서가려는 시민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 현재의 상황 아닌가 한다.

 

일자리 창출부터 친환경 산업, 핵발전 포기, 남북관계 개선, 교육의 난맥상 타개 등등 정말로 촛불을 통해 탄생한 정부가 할 일이 많은데, 그 전에 선출직이라고 뽑힌 정치인들이 과거의 생각으로 과거의 행동만을 거듭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국회의원 소환제 같은 시민들의 참여정치제도가 없는 상황에서 다음 선거까지 기다려야 하는 이런 일이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시민들의 의식과 행동을 따라가지 않아도 되게 하는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녹색평론은 시민들이 계속 깨어 있게 한다. 시민들이 깨어 있어야 다음 선거에서 제대로 된 정치인을 선출할 수 있을 것이고, 또 선출직을 언제든지 잘못하면 소환할 수 있는 그런 제도를 마련하려고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속적으로 녹색평론에서 제기한 승자독식의 선출직이 아니라 비례대표로 소수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도 정치권에 들어갈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지 못한다고, 국회의원들에게 국회의원 선출방식, 즉 선거제도의 개선을 맡길 수는 없다. 그것은 국회의원이 아닌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권력을 위임하고는 더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지금의 제도가 아니라.

 

이번 호에서는 '되돌아보는 러시아혁명'을 기획으로 삼았다. 러시아혁명 100주년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러시아혁명이 근현대 역사에 끼친 영향이 프랑스혁명만큼이나 크기 때문이다.

 

지금 다시 러시아혁명을 이야기하면 무슨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냐고, 이미 망한 나라, 망한 제도를 언급하는 것은 돈키호테가 풍차를 보고 돌진하는 모습과 같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러시아혁명은 사회주의혁명으로 한 시대를 바꾸어놓은 혁명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러시아혁명 100주년에 대한 총론격인 박노자의 '100년 후에 되돌아보는 러시아혁명'이 잘 설명해주고 있다.

 

그 혁명에 대해서 공과를 명확히 구분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러시아혁명으로 인해 자본주의가 복지국가의 모습을 지니게 되지 않았던가.

 

노동자와 농민, 여성 등의 권리에 대한 자각이 생기지 않았던가. 많은 나라들이 식민지에서 벗어나지 않았던가. 이런 긍정적인 면이 있었지만 제도의 경직화, 관료들의 권력독점, 부패 등의 부정적인 면도 있었음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러시아혁명으로 인해 초반에 러시아에서는 급속한 경제성장이 일어났다고 한다. 이는 사회주의의 성공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자본주의 관점에서 러시아혁명을 판단해도 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50년이라는 기간 동안, 소련은 국내총생산(GDP)을 9배나 증가시켰다. (앨런 우즈, 러시아혁명, 무엇을 성취했고 왜 좌절했나.133쪽.)

 

이런 자본주의 성장지표 가지고 사회주의를 평가하다보면 자연스레 사회주의 권도 성장 프레임에 갇히게 된다. 문제는 성장이 아니다. 더글러스 러미스의 책도 있지 않은가.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녹색평론사)라는.

 

그래서 러시아혁명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최근 최저임금 시급 1만원 주장 구호를 생각해 봤다. 1만원 인상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최저임금이란 최소한의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임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도입된 것 역시 러시아혁명의 공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구호에 한 가지 더 첨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고 또는 구조 조정 없는 최저임금 인상.

 

아파트 경비직들이 최저임금 인상으로 해고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임금은 올랐는데, 지출총액은 같기 때문에 경비원들의 숫자를 줄이는 것이다. 그러면 임금은 올랐지만 누군가는 해고가 되고, 남은 사람들은 해고된 사람들의 몫까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노동강도는 더 강해지는 현실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 근무조건 변형없는 최저임금 인상이 구호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노동시간이 더 줄어야 한다. 러시아혁명이 목표로 했던 것이 바로 노동시간의 감축 아니었던가.

 

보통 4시간 일하고 4시간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그런 사회를 꿈꾸었지 않은가. 그런데도 세계 최장시간의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우리나라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노동자들이 살 만하게 노동시간 감축, 구조조정없는 임금인상이 더불어 이루어져야 한다. 그 점이 바로 지금 우리가 주장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한다.

 

녹색평론에서 다룬 러시아혁명 100주년에 대한 글을 통해 이런 점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러시아혁명은 이제 끝났다고 하지만 이번 호에 있는 박노자의 말처럼 '혁명의 종착지는 또하나의 혁명의 출발지'일 것이다. 그것이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이것과 더불어 이번 호에서 다룬 글 중에서 한윤정의 '중국의 생태문명 실험'이란 글의 내용 중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 구절이 있었다.

 

'원자력, 태양열, 풍력, 조력, 지열 등 비화석연료 비중 역시 2014년 11.2%에서 2030년 20%까지 늘인다는 계획이다.' (46쪽)

 

그런데 원자력이 이러한 생태문명에 함께 포함되어야 하는지... 최근 중국은 원자력 발전이 청정하고 안전한 발전이라면서 더욱 확대하겠다고 했다던데... 이것은 반생태정책이 아닌지...

 

생태문명과 원자력이 함께 한다는 생각은 해본적이 없는데, 이 글을 쓴 사람은 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오히려 중국의 생태문명 실험이라는 것이 또 하나의 생태 파괴 운동은 아닐지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닌가.

 

좀더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녹색평론의 관점에서 보면 원자력은 반생태적인 발전일텐데. 그 점이 좀 아쉽다.

 

우리나라는 이번 정권에서 핵발전 폐기 쪽으로 가고 있는데, 중국은 반대로 핵발전 유지 및 확대로 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점에 대해서 강하게 비판해야 하는 것이 녹색평론 아닐까 하는 생각. 좀 녹색평론의 방향과 맞지 않는 글이 '중국의 생태문명 실험'이란 글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물론 내가 잘 몰라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이 밖에 4대강 사업에 대한 통렬한 비판... 그래, 이것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책임질 사람들은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 그 점에 대해서는 김정욱의 '4대강 사업 '그 총체적 사기극을 돌아보며'가 좋다.

 

한 꼭지 한 꼭지 음미하면서 읽어볼 필요가 있는 책이다. 내 생각이 굳지 않게, 적어도 시민의식을 지니고 있게 해주는 책이니, 참 귀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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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7-07-14 14: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구독할 때는 꼬박꼬박 챙겨 읽었는데, 배송 사고가 워낙 잦아서 구독 끊고 나니, 자꾸 잊어버리게 되네요. 끊을 때는 그래도 챙겨 보겠지 싶었는데 말이죠.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kinye91 2017-07-14 15:31   좋아요 0 | URL
정기 구독을 하지 않으면 챙겨 보기가 만만치 않더라고요... 두 달에 한 번 그래도 녹색평론을 읽으면서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아요...

무해한모리군 2017-07-14 17: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번호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부동산문제나 복지 문제같은 분명해 보이는것도 사회적 합의가 쉽지 않은 것을 보면 나같은 소시민은 무엇부터 하면 좋을까 같은 생각이 들곤합니다.

kinye91 2017-07-15 11:45   좋아요 0 | URL
사회적 합의는 쉬울 수가 없다고 봐요. 원전 문제만 해도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켜 쉽지 않으니까요. 이럴 때일수록 개인들인 우리 소시민들이 자신의 생각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