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바도르 달리 - 어느 괴짜 천재의 기발하고도 상상력 넘치는 인생 이야기, human RED 001
살바도르 달리 지음, 이은진 옮김 / 이마고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한없이 늘어진 시계들, 선명한 색채에 비해 도무지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사물들. 무슨 의미로 무엇을 그렸는지 알기 힘든 그림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초현실주의자로 명명한다.

 

초현실주의자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이 달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술 교과에서 다른 초현실주의자는 몰라도 달리는 꼭 배우게 되니 말이다.

 

여기에 달리는 사탕 츄파춥스를 디자인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그림만이 아니라 자신의 재능을 다방면에, 그가 영화제작에도 참여했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으니, 관심을 가지고 활동한 사람이다. (백화점 내부를 디자인 하는 장면이 이 책에 나오는데, 초현실주의자로서의 달리의 모습이 잘 드러나고 있다. 그의 오만한 모습도 함께)

 

그런 그가 자서전을 썼다. 그것도 36살에. 아마 우리 나이로 하면 37세가 되겠지만, 그가 80이 넘어 죽었으니 자신의 인생을 반도 살지 않은 상태에서 자서전을 썼다. 이 무슨 오만함인가. 아니면 자신의 삶을 계획했다는 자신감인지. 스스로 '세계의 배꼽'이라고 주장하는 그였으니... 뭐,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이 자서전의 끝부분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작가들은 보통 일생을 다 산 다음에 말년에 가서 회고록을 쓴다. 모든 사람들과 반대로 가는 나는 회고록을 먼저 쓰고 그 다음에 그 내용을 사는 것이 더 지적인 것으로 보였다. 산다는 것! 그것을 위해서는 인생의 반을 다 청산할 줄 알아야 한다. 경험으로 풍성해진 나머지 절반의 인생을 계속하기 위해서 말이다. (385쪽)

 

다른 사람과 같은 방식의 삶을 살기를 거부한 사람의 태도다. 그는 그렇게 살았다. 이 점에 대해서 읽으면서 반감을 가질 사람도 많다.

 

보통 사람의 정서에 의하면 달리의 행동 하나하나는 비난을 받으면 받았지 결코 찬탄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엄청난 비도덕. 자기중심주의!

 

자기 멋대로 산 사람. 남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산 사람. 그런 느낌이 든다. 학창시절도 마찬가지고, 어린 시절에도 마찬가지고,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달리는 달리일 뿐 누구도 될 수 없다. 달리의 삶은 달리가 살아야 한다. 그만의 방식으로. 그렇게 살았음을 느끼게 만드는 자서전이다.

 

달리가 한 온갖 기행들이 이 책에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다. 그래서 달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린시절에 가짜 추억을 만들어낸 일부터 시작하여 자신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여인을 어른이 되어 만나게 되어 그와 함께 하는 과정, 미술 학교에서의 일들, 화가로서 겪게 되는 일들을 솔직하게(? - 달리를 잘 믿을 수 없어서, 이 역시 자신의 환상을 섞어서 회고록을 썼을 수도 있다) 쓴 글이다.

 

가끔은 달리 자신이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일도 있었음을 이 책에서 밝히고 있는데, 그런 환상이 그의 작품에 그대로 투영되었다고 보면 달리의 그림을 이해하는데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여간 거만한 천재의 글이다. 이런 천재가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있지만, 과연 모두가 이런 천재가 되어야 할까 하면 부정적인 답을 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달리는 독특한 사람이고, 그런 사람은 이제 달리로 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40이 되기 전에 자신의 회고록을 쓴 달리. 어쩌면 달리는 이 책의 2부 제목처럼 '얼른, 늙어버린' 천재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 나이에 회고록을 쓸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도 들고. 하여간 초현실주의로 유명한 달리, 그의 삶을 그의 글을 통해서 만나게 되고, 이 만남을 통해 그의 그림에 다가갈 수도 있으니... 달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만한 책이다.

 

한 가지, 물론 원본에는 달리의 그림이 포함되어 있지 않겠지만, 그래도 번역해서 달리를 소개하는 책인데, 중간 중간에 또는 한쪽에 이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달리의 그림들을 실어주었으면 훨씬 좋았을 거라는 생각에 아쉬움이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