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표절자다. 세상의 모든 것을 표절한다. 이미 있는 것을 표절하고, 아직 있지 않은 것을 표절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표절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도 표절한다.

 

다른 생명들의 존재도 표절하고, 우주 모든 것을 표절한다. 그것을 시인은 '불멸의 표절(10-11쪽)'이라고 했다.

 

그렇다, 시인의 표절은 사라지지 않는다. 멈추지도 않는다. 시인이 표절을 멈추는 순간, 시는 사라진다.

 

하여, 시는 모두 표절이다. 세상 모든 것의 표절이다. 우리는 그런 표절을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이 시집에서 한 모든 표절 가운데, 마음에 다가오는 표절들이 있다. '죽음의 완성'이란 시에서는 만약 우리들이 너무도 오랫동안 산다면 어떨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드러나있고, '죽음의 방식'에서는 감나무와 소나무가 죽어갈 때 보여주는 모습을 대비시키고 있다.

 

사람들의 삶도 마찬가지리라. 어떻게 죽어가느냐는 각자의 삶에 따라 다를테니, 시인은 감나무와 소나무를 통해 사람들이 죽어가는 방식을 표절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열심히 살아왔지만, 자신의 존재를 점점 더 잃어가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주는 '희미해지는 병에 걸린 남자'가 있다.

 

한때 빛나는 존재였지만, 이제는 희미해져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 그것이 꼭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건 우리 이야기고, 모든 생명체의 이야기다.

 

그런 생명체가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는 길, 그것은 바로 '대준다는 것'에 있다. 대주지 않으면 자신 역시 설 수 없다. 자신이 서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우리는 대줄 수밖에 없다. 그것은 어떤 말보다도 행동을 전제로 한다.

 

대준다는 것은 달콤한 말이 아니라 처연한 행동이다. 이런 행동을 통해 나는 남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세상의 등뼈

 

누군가는 내게 품을 대주고

누군가는 내게 돈을 대주고

누군가는 내게 입술을 대주고

누군가는 내게 어깨를 대주고

 

대준다는 것, 그것은

무작정 내 전부를 들이밀며

무주공산 떨고 있는 너의 가지 끝을 어루만져

더 높은 곳으로 너를 올려준다는 것

혈혈단신 땅에 묻힌 너의 뿌리 끝을 일깨우며

배를 대고 내려앉아 너를 기다려준다는 것

 

논에 물을 대주듯

상처에 눈물을 대주듯

끝모를 바닥에 밑을 대주듯

한생을 뿌리고 거두어

벌린 입에

거룩한 밥이 되어준다는 것, 그것은

 

사랑한다는 말 대신

 

정끝별, 와락, 창비, 2008년. 26-27쪽.

 

나만 대주는가? 아니다. 남도 나를 위해 대준다. 이렇게 서로 대주는 관계, 그것이 바로 우리 삶이다. 생명체들의 삶만이 아닌,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들의 삶이다.

 

시인은 이런 삶을 표절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대주어야 한다는 것, 한사코 대주는 것을 거부할 수는 없다는 것. 말이 아닌 행동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대주는 행위에는 말이 필요없다. 행동이 있을 뿐이다. 이런 행동을 통해 세상은 삶을 유지해가게 된다.

 

정끝별의 시 '세상의 등뼈'를 통해 대준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고... 우리가 서로 대주어야 세상이 유지되는, 그런 등뼈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됐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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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4 11: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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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4 13: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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