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과 일본에 살다 - 재일시인 김시종 자전
김시종 지음, 윤여일 옮김 / 돌베개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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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알게 된 김시종. 그에 대한 세 번째 책. 한 권은 그의 문학에 대한 일본인이 쓴 평론집이었고, 한 권은 그가 광주에 대해 쓴 시집이었다. 이번엔 그의 자서전이다.

 

김시종. 어쩌면 서경식이 쓴 이래로 유행하게 된 '디아스포라'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 아닌가 한다.

 

그는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제주도에서 자랐다. 그런데 제주도가 어떤 곳인가. 지금은 우리나라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지만, 예전에는 차별의 섬 아니었던가.

 

결국 그는 출생에서 성장까지 주류에 속하지 못한 삶을 이미 살아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여기에 더해 그는 일제시대에 태어났다. 그것도 일본어로 교육을 받은, 조선어보다는 일본어를 훨씬 더 잘하는, 그의 말을 빌면 해방이 되기까지 한글 '가나다'의 '가'자도 쓰지 못했던 그.

 

이런 어린 시절은 그에게서 주변인의 삶,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체험이 된다. 그는 어디에도 제대로 속할 수 없는 것이다. 황국신민이 되겠다고 일본 천황의 적자(嫡子, 赤子라고도 하는데, 천황의 어린이라는 말과 또 천황의 서자가 아닌 제대로 된 자식이라는 뜻으로 쓰기도 한다. 여기서는 嫡子라는 말이 더 어울릴 듯하다)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에게 해방은 함석헌의 말대로 도둑처럼 찾아왔다. 충격이었다. 천황의 자식이 되고자 했는데, 그 천황이 항복을 해버렸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상실감. 그런데 백성들은 좋다고 거리로 나선다. 여기서 느끼는 괴리감. 그에게는 이 거리가 너무도 멀다.

 

거리를 좁혀야 한다. 민족의식이 생긴다. 그에게 민족의식을 불어넣어주는 사람이 나오고, 함께 하는 사람도 나온다. 이 당시 대부분의 민족주의자들, 특히 친일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사회주의 사상에 경도된 사람들이다.

 

김시종 역시 사회주의 사상에 경도된다. 남로당에 가담한다. 그리고 제주도. 4.3이 발발한다. 그는 남로당의 연락책으로 활동한다. 여러 위기 상황을 거치지만 살아남는다. 하지만 그가 4.3의 중심부에 있었다고는 할 수 없다.

 

물론 열심히 활동을 하지만 그는 말단 연락책에 불과하다. 중앙에서 어떤 결정이 내려지는지, 그 내밀한 사항을 알 수는 없다. 단지 주어진 일을 몸 바쳐 할 뿐이다. 그런 그에게 4.3은 이제 제주도에서 살 수 없는 환경을 제시한다.

 

변경에 속한 제주도, 탄압받는 사회주의, 실패로 돌아간 4.3항쟁, 남은 길은 살 길을 찾아 나서는 길. 부모 곁을 떠나 일본으로 밀항을 한다.

 

일본, 결국 그는 어린 시절 천황의 나라로 돌아온 것이다. 돌아왔지만 어린시절의 그가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 디아스포라의 삶.

 

여기서 그를 구원하는 것은 문학이다. 그는 문학을 통해 여러 사람을 만나고 재일조선인으로서 여러 활동을 한다. 어쩌면 이제는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디아스포라가 된다.

 

그가 믿었던 북조선이 그를 내친 것이다. 사회주의 사상에 경도되었지만 경직된 사회주의는 거부했던 그에게 북조선은 반동이라는 이미지를 그에게 덧씌운다. 그는 이제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내친 사람이 된다.

 

그렇다고 일본에서 받아준 것도 아니다. 그냥 일본이라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것 뿐이다. 그러니 그는 남한도, 북한도, 일본도 아닌 자신의 세계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얼마나 신산한 삶이랴. 우리나라가 민주화되고 나서 그는 대한민국 국적을 얻었다고 한다. 부모님의 산소를 돌보기 위해서. 국적을 취득했다고 그가 대한민국 국민이냐 하면 그건 아니다.

 

여전히 그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어디에도 없는 사람이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신산한 삶. 그 삶이 이 자전에 오롯이 담겨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일본으로 건너가 그가 겪은 삶들이 너무도 압축되어 있는 것이다.

 

일본으로 가기까지의 과정이 자세히 나와 있는 반면에 그의 인생 후반부는 소략하게 다뤄지고 있다. 아직 모든 것을 밝히기에는 너무도 가까운 과거인가 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의미가 있다. 4.3의 생생한 체험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일조선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한 사람의 삶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비극, 민족의 비극이 만들어낸 '디아스포라의 삶'이긴 하지만 김시종, 잘 살아내었다. 그런 그의 삶으로 인해 우리는 역사를 잊지 않을 수 있고, 우리가 아직 하지 못한 일이 무엇인지를 상기할 수가 있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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