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시에 꽂혀버렸다. 그냥 이 시 하나로 이 시집을 읽은 것을 후회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이 시집에는 마음에 드는 시가 여럿 있다. '실천문학사'라는 출판사 시집답게 우리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시들이 꽤 있다. 그런 시들을 읽으며 지금 내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시들보다 이 시 하나로 됐다. 그냥 그렇게 이 시는 내게 다가왔고, 내 맘에 박혔다.
탄식했다. 차라리 땅콩은 단단해 자신의 속에 있는 내용물을 보호하기라도 하지...이건 뭔가.
땅콩을 보며 그것이 우리나라 지형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시인의 관찰에 감탄을 했고, 땅콩이 아래 위로 나뉘어 있음에 다시금 감탄을 했다. 아래 위로 나뉘어 있는데 그 사이에 또다시 벽이 있고, 다시 갈라진 속에 들어 있는 땅콩 알들도 좌우, 동서로 나뉘어 있으니...
이거야 완전 우리나라 아닌가. 생긴 것만 닮은 것이 아니라 아예 우리나라를 이 열매가 대변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을 했다.
땅콩
땅콩 껍질 속에는
뼈가 있다
한반도 지형을 닮은,
둥근 땅콩 껍질을 부수면
남북으로 나뉜 땅콩 두 알이
다시 동서로 갈라진 몸을 뒤척이며
누워 있다
땅콩 껍질 속에는
먹을 수 있는
단단한 뼈가 있다
박후기,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실천문학사. 2006년. 25쪽.
땅콩 껍질 속에 있는 알들은 먹을 수 있기라도 하지, 한반도 내에서 죽기살기로 다투는 사람들은 도대체 뭔가?
땅콩은 서로 갈라져도 영양가는 다르지 않고 또 서로 잡아먹으려 하지 않고 한 속에 들어있고, 함께 붙어있기라도 하지, 이 놈의 한반도는 남과북이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고, 여기에 외부세력까지 끌어들이고 있으니...
오히려 자신들보다는 외부의 힘으로 껍질을 깨려 하고 있으니, 땅콩 껍질이 외부의 힘에 의해 깨지면 그 속의 알들도 무사하지 못한데...
깝질이 단단한 이유는, 껍질 사이에 벽이 있는 이유는 서로를 단절하려는 것보다는 외부의 힘에 좀더 효율적으로 버티려는 안간힘일텐데, 위 아래로 갈라진 땅콩들이 아래 위에서 서로 들러붙어 있는 것은 둘이 갈라지면 더 약해지기 때문일텐데...
남과 북으로도 모자라서 동서로 너니 내니 싸우고 있는 꼴이라니...
땅콩은 서로 붙어 더욱 단단해지고 있는데, 우리는 떨어지지 못해 안달이니, 땅콩보다도 못한 모습이라고 해야 하나.
땅콩이 아래 위로 분리되어 있다고 하지만, 벽이 있다고 하지만 결코 꽉 막히지는 않았는데, 그들은 서로 나뉘어 있어도 통하려고 길을 내고 있는데, 그 길마저 막아버린 지금은... 동서로 나뉘었다고 하지만 껍질로 다시 동서가 하나로 붙어있는데... 그래서 그들은 분리되었으되 통합되어 있는데.
그래 땅콩은 단단하기라도 하지, 도대체 이렇게 분열되어 자신들의 안전을 외부에 맡겨버리면서 그것이 보수라고 하는 이 모순을 어찌할 건지.
박후기의 이 '땅콩'이란 시를 읽으며 땅콩보다도 못한 현실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해지기만 했는데... 여기서 다시 시작해야지... 그게 시를 읽는 자세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