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하지 못하는 존재, 시인.

 

  어느 한 쪽에 속하는 순간 시는 시인에게서 달아나 버린다. 그렇게 시인은 경계에 있어야 한다. 경계에서 이쪽과 저쪽을 한꺼번에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시인은 어느 한 쪽에 속하고 싶어한다. 소속이 없는 존재, 얼마나 위태한 존재인가? 이런 위태한 존재가 안정을 찾으려 하지만, 시인은 안정을 찾을 수가 없다.

 

  그가 안정을 찾는 순간, 시인으로서 존재하기보다는 생활인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병률의 이 시집을 읽으면서 시인이 처한 자리를 생각하게 됐다. 어쩌면 시인은 경계에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런 시인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시가 '시인은 국경에 산다, 생활에게, 왼쪽으로 가면 화평합니다 ' 등등의 시다.

 

이쪽 저쪽에 걸쳐 있는 존재, 어느 한 쪽에 속할 수 없는 시인이라는 존재. 이런 존재들로 인해서 우리는 어느 한 쪽을 다른 눈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적어도 내가 보지 못하는 면을 시인을 통해서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시집에서 이렇게 이쪽과 저쪽의 경계에 있는 시인의 모습들을 볼 수 있는 시들이 많은데, 이 중에서 '이 안'이라는 시가 마음에 파고들었다.

 

  이 안

 

혹시 이 안에 계시지 않습니까

 

나는 안에 있다

안에 있지 않느냐는 전화 문자에

나는 들킨 사람처럼 몸이 춥다

 

나는 안에 살고 있다

한시도 바깥인 적 없는 나는

이곳에 있기 위하여

온몸으로 지금까지 온 것인데

 

문자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혹시 여기 계신 분이 당신 맞습니까

 

나는 여기 있으며 안에 있다

안쪽이며 여기인 세계에 붙들려 있다

 

나는 지금 여기 있는 숱한 풍경들을 스치느라

저 바깥을 생각해본 적 없는데

여기 있느냐 묻는다

 

삶이 여기 있으라 했다

 

이병률, 찬란, 문학과지성사, 2010년 초판 3쇄. 24-25쪽.

 

나는 안에 있고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사람들은 내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묻은다.  '혹시'라고.

 

나라는 존재의 육체적인 자리를 묻는 것이 아니다. 내 몸이 속해 있는 자리는 중요하지 않다. 내 영혼 - 그것을 시인의 영혼이라고 하자 -이 속해 있는 곳을 묻는 것이다. 

 

'혹시'라는 질문에 그래서 '나는 들킨 사람처럼 몸이 춥다'고 하는 것이다. 내 영혼의 자리를 들킨 것.

 

'나는 안에 살고 있다'는 말이 '이곳에 있기 위하여 / 온몸으로 지금까지 온 것인데'라는 말이 '저 바깥을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라는 말이 '혹시'라는 말에 의해서 부정당한다.

 

이미 있는 사람에게 그 사람이 당신이냐고 묻는 것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안과 여기에 있는 나는 몸에 불과하다. 내 영혼은 밖에 저기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삶이 여기 있으라 했다'는 말, 이 말은 여기만 알라는 말이 아니다. 여기서 저기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여기에서 저기를 안에서 바깥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봄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 시인이지 않을까 한다. 우리는 어느 한쪽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려 한다. 그렇게 맡겼을 때 편안한 안도감을 느낀다.

 

자신을 위태롭게 하는 경계에서 벗어나 한 쪽에 자신을 둘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소속에서 벗어나면 불안감을 느낀다. 소속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행동도 생각도. 그러나 이것은 위험하다.

 

우리는 끊임없이 물어봐야 한다. 거기 있는 것이 바로 너냐고? 이런 물음이 제기될 때 자신을 바깥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안에 있는 나를 부를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밖에서 바라볻다는 얘기니, 어느 한쪽에 젖어버리지 않게 된다.

 

우리는 지금 모두 이 안에 있다. 이 안에 있다는 것을 인식조차 하지 않는다. 그냥 그 안에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된다. 이 안에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혹시'라는 물음으로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하게 해야 한다.

 

그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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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7 20: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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