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승은 동시대 한국 시의 뇌관이다.' (190쪽)

 

'황병승을 읽는 일은 희극적인 비애, 냉소적인 공감을 자아내는 '뒤죽박죽'의 체험이다. 한국 현대시의 진정성에 대한 이념과 그 지루한 표준성을 날려버릴 강력한 뇌관, 지금 그 뇌관이 타들어가기 시작한다.' (212쪽)

 

그냥 그랬다. 한 마디로 말한면 뒤죽박죽이다. 시집에 실린 시들이 그렇다. 최소한 시집을 읽고 내용을 알려면 온갖 잡다한 지식을 머리 속에 넣고 있어야 한다.

 

마치, 넌 이건 모르지 하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온갖 것들을 어떤 논리적인 맥락도 없이 그냥 가져다 붙여놓은 듯한 느낌.

 

여러 대상들을 시에 들여오기는 황지우도 했지만, 황지우의 시에서는 맥락이 이해가 되었고, 시에서 어떤 논리성이 읽혀졌기에 황병승의 이 시들보다는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들의 행진이다. 우리말임에 분명한데, 우리말들이 이렇게 서로 등돌리고 한 자리에 있을 수 있나 싶을 정도다.

 

전혀 다른 대상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은 듯한데, 전체적으로는 무언가 낮은 것들, 소외된 것들, 억압받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느껴지는 시들도 있기는 있다.

 

다만, 그것이 느낌일 뿐이다. 우리나라 현실, 우리나라 정감을 느끼기 보다는 이상하게도 미국 사회 어떤 뒷골목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어떤 집회에서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나란히 나오기도 하니, 이미 우리는 미국 문화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미국의 하위문화가 우리의 하위문화가 되는 것인지, 시집을 읽는 내내 이국적인, 그것도 미국적인, 미국의 뒷골목 소위 할렘가라고 하는 그런 곳의 분위기...

 

그 할렘가도 가보지 못했지만 여러 매체에서 읽거나 본 그런 느낌이 든 시집이다. 그래서 불편했다고나 할까.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비평가들은 좋겠다고. 이런 시인이 있어서 그들 밥벌이에는 문제가 없을 거라고.

 

일반 사람들이 마음으로 쉽게 느끼는 시들을 쓰는 시인이 대다수라면, 앞에 인용한 말처럼 '한국 현대시의 진정성에 대한 이념과 그 지루한 표준성' 때문에 비평가들이 할 일이 없어질테니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뭔소린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시를 쓰는 시인이 있다면 비평가들은 할 일이 있다. 새로움, 이질적임, 낯섬, 이해되지 않음을 비평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만 했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난해해졌는가. 그래서 시가 난해한가. 이런 난해한 시가 우리 곁으로 오는 것인가.

 

시집 뒤에 실린 이광호의 해설에서 인용한 말들이 앞에 있는데, 그 말대로 '지금 그 뇌관이 타들어가기 시작한다.'고 하면 '시'가 과연 존재할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시를 이해하기 힘든 내 시읽기 능력을 인식하며... 읽는 내내 불편, 불만이 가득했던 시집. 에라, 우리나라도 좀 간명해졌으면 좋겠다. 카뮈가 말했던가. 진실은 단순하다고.

 

우리나라가 간명하고 단순하다면 이런 난해한 시도 좀더 쉬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황병승, 황병승 해서 읽어 본 시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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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6 07: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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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6 07: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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