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 관한 피카소의 명상
다니엘 킬 지음 / 사계절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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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피카소'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은 피카소의 그림을 감상해 마음 속으로 느끼기보다는 '입체파'라는 이름으로 또는 '게르니카'를 그린 화가로 기억을 한다. 그렇게 배워왔다.

 

또한 그를 미술계의 천재로 기억한다. 창의적인 그림을 그린 사람으로. 천재는 요절한다고 하지만, 그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피카소는 오래도록 살았다. 그리고 그 오랜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천재 소리를 들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늘 변화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변화를 발전이라고 할 필요는 없지만 변화하지 않고 과거의 작품을 답습하는 것은 좋은 작품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예술가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미술교육은 피카소를 표방하면서도 피카소가 될 수 없게 교육을 하고 있다. 특히 미술 분야로 진학하는 학생들을 보라. 요즘은 몇몇 대학에서 실기를 없앴다고 하지만, 아직도 실기의 비중이 높은데 그 실기라는 것이 독창적인 작품을 알아보기보다는 얼마나 과거의 것을 잘 흉내냈느냐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지 않았던가. (아카데미란 것이 대부분 이렇다. 독창성보다는 전통성을 더 중시하니)

 

마치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공식이 있어서 그 공식대로 하면 쉽게 합격이 되듯이 예고나 미대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은 학원이나 또는 교수들의 레슨을 통해 공식을 익히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런 학생들에게 피카소를 기대한다? 마치 '바담 풍 하면서 넌 바람 풍이라고 하라'는 것과 같은 이치다.

 

위대한 예술가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독창성이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데, 재능이 있어도 돈이 없어서 '플란다스의 개'에 나오는 '네로'처럼 도중에 사그러지고 마는 사람들도 꽤 있었을 것이다.

 

그건 아니다. 예술 교육이 바뀌어야 하는데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우리 모두가 머리 맞대고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은 예술에 관한 피카소의 말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어려운 이론이 아니라 피카소 개인이 평소에 생각하고 말했던 말들 중에서 예술과 관련된 말을 모아놓았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피카소의 작품도 소개하고 있어서 작품도 보고 피카소 예술론도 알 수 있는 책이다.

 

그 중에서 지금 우리나라 '블랙리스트'와 관련지어 생각해 볼 만한 구절.

 

예술가는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파괴적이거나 결정적인 사건, 혹은 가슴 훈훈한 사건들을 끊임없이 의식하면서 살고 그것들로부터 자신을 형성해가는 정치적 존재이다.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있으며 상아탑 속에 갇혀 그렇게도 풍부한 삶에 대해 담을 쌓을 수 있겠는가? 아니다. 회화는 거실을 장식하기 위해 생각해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적을 공격하고 수비하기 위한 무기이다.  (94쪽)

 

이 말에 따른다면 최근에 문제가 된 작품 '더러운 잠'을 여성을 비하했다거나 외설이라고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그 작품은 우리 사회의 문제를 작가가 작품으로 공격한 것이기 때문이다. 피카소의 이 말처럼.

 

더하여 블랙리스트라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술의 본질을 망각한 짓이 바로 '블랙리스트'다.

 

또한 천재성은 영감, 착상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이 말에서 알 수 있다. 피카소가 천재라지만 그 천재성은 그의 생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는 작품으로 자신의 천재성을 발휘한 것이다.

 

착상은 출발점일 뿐이다. 무엇을 그리려고 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리기 시작해보아야 한다. (68쪽)

 

이렇게 천재성이 발휘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여러 분야로 관심을 분산시키기 보다는 한 분야에 집중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야말로 일이관지(一以貫之)다. 하나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다음에는 자연스레 융합이 이루어질 수 있다.

 

처음부터 융합 운운해서는 안 된다. 어정쩡한 덧붙임으로 끝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평범한 사람은 열두어 가지 사소한 일에 그 힘을 낭비한다. 나는 그것을 단 한 가지의 일, 미술에 낭비한다. (37쪽)

 

하나에 집중하게 할 수 있으려면 최소한 생계는 해결해 주어야 한다. 예술가들이 먹고는 살아야 작품 활동을 하지 않겠는가. 이 점과 관련지으면 '기본소득'은 예술가들에게 특히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기에 덤으로, 그는 자신의 작품에 날짜를 적어 넣었다고 한다. 그 이유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왜 창작하는 모든 것에 날짜를 적는가? 왜냐하면 예술가의 작품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 그가 그것을 창조했으며 왜, 어떻게, 어떤 상황 속에서 창조했는지도 알아야 한다. (24쪽)

 

이는 사회를 떠난 작품은 없다는 것이다. 천재도 사회의 조건 속에서 탄생한다. 그 사회 조건 속에서 탄생한 천재가 사회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릴 수는 있지만, 사회적 조건과 무관한 천재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애플을 창립한 '스티브 잡스'의 경우도 사회적 조건이 마련되었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그는 그 조건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켰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천재다.

 

어느날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적 조건에서 나오되, 사회를 한 단계 더 앞으로 끌고 가는 사람, 그것이 바로 천재다.

 

이렇듯 예술에 관한 피카소의 명상에서 더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는데, 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 또는 피카소에 관심이 있는 사람, 이 책을 읽으면 피카소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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