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이십 년 전에 나온 시집이다. 그해에 나온 시들 가운데 비평가들이 선정한 시들을 수록한 책. 시를 선정하고 비평가들의 짤막한 평이 함께 실려 있는 책이다.

 

  아마도 지금도 계속 나오고 있지 않을까 싶은데, 시기에 맞게 그 해에 나온 시집을 사본 기억은 없다.

 

  시가 시기에 맞춰 읽어야 할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오히려 시는 묵혀두고 읽으면 더 맛이 나기도 한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에 덧붙이면 경제적인 면, 헌책방을 돌다보면 시집을 시인에게는 미안하지만 더 싼 값에 구할 수가 있기 때문인데...

 

  헌책방에서 주로 구입하는 이유가 싼 값에 살 수 있다는 이유도 있지만 서점에 직접 가서 시집을 구하기는 참 힘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점에 시집을 파는 책장이 점점 작아지고, 시집들도 점점 적어지고 있는 형편이니 애써 서점에 가서 시집을 찾아보아도 못 찾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시간을 두고 내 손에 들어올 시집을 기다릴밖에.

 

이 시집 역시 이렇게 해서 내 손에 들어온 시집이다. 이십 년이 지난 다음에야. 그래도 시들은 사람이 지닌 보편적인 정서를 노래하고 있기에, 세월의 흐름과 관계 없이 내 맘 속으로 파고드는 시들이 있다.

 

이번 시집에서는 이시영의 시 '아슬한 거처'가 내 마음을 흔들었다. '거처'라고 하면 집 아닌가. 이 집이 아슬하다는 얘기는 삶이 불안정하다는 얘기다. 삶의 불안정성, 이것은 곧 불안이다.

 

불안은 우리를 힘들게 한다. 편히 쉴 수 없게 한다. 자신의 삶에 여유를 가지고 삶을 즐길 수 있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집'은 안정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집에 유달리 집착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겠다. 아직도 계속되는 아파트들의 행진이 멈추지 않는 이유도 역시 안정적인 집에 머물고 싶은 욕구 때문이리라.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들의 집은 안정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집을 좀 확장해 보자. 집의 확장형이라고 할 수 있는 '나라'는 과연 안정적인가?

 

지금 우리는 '사드'로 인해 중국과 마찰을 빚고 있으며, 이로 인해 안정적인 수입을 잃은 사람들이 숱하게 나오고 있지 않은가. 또한 지속되는 '남북간의 긴장관계'는 우리를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이런 대외관계 말고도 직장을 잃은 사람들,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 진학을 걱정해야 하는 학생들 등등 그야말로 우리나라는 걱정공화국, 불안공화국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불안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잘 살 수 있다.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이 시집에 실린 이시영의 시 '아슬한 거처'를 읽으며 이 시에 나온 '가지'가 바로 우리들의 '집'이며 우리들의 '나라' 아닐까 하는 생각.

 

'바람'은 우리를 불안에 빠뜨리는 그런 요소들... 그러나 우리는 '바로 여기'서 살아가야 하므로 이 작은 가지들을 단단히 부여잡고, 가지들을 이으며 더욱 튼튼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슬한 거처

 - 이시영

 

저 보잘것없는 가지 위로 참새 몇 마리가 내려앉자

나무가 휘청하면서 세계의 중심을 새로 잡는다

아람드리 바람이 불어왔다가 불어간다 가지가 흔들린다

참새들의 작은 눈이 바쁘게 움직이고

그 위로 곧 어두운 저녁이 내린다

 

'97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시, 현대문학. 1998년 초판 3쇄. 1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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