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쾌한 시들이 많이 실려 있다. 내용이 좀 저속한 시들도 있지만, 그것이 어쩌랴. 삶인 것을.

 

  읽기엔 편한 시집인데... 시인의 삶과 우리의 삶을 생각하는 그런 시들이 많이 실려 있기는 하지만...

 

  조금 가볍다는 느낌이 든다. 비속어도 직설적으로나오고, 성에 관한 내용들이 거침없이 드러나 있기도 해서인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읽으면서 우리네 삶의 현실을, 우리의 삶이 그렇게 고차원적이지도 고상하기만 한 것도 아니라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런 것이 현실 아니겠는가. 그리고 시인이 말한 우리말과 우리글이 일치하는 모습 아니겠는가.

 

삶이 비루한데, 그 비루한 삶을 애써 포장하지 않으려는 것, 그것이 바로 시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 시집이었는데...

 

시집 중에 이 시를 읽고 이랬으면 좋겠다. 정말, 이렇게 청춘이 아름답게... 그 아름다움이 겉모습뿐만이 아니라 마음에서도 밖으로 감추려고 해도 감출 수 없게 나오기를...

 

삼미신(三美神)

 

여고생들은 참 너무 예쁘다

가장 예쁜 나이이다

내가 예수라면

저 전철에 앉아 있는

여고생들을 보라

그렇게 말하겠다

저 여고생들이 입은 것이

솔로몬의 모든 영광보다 낫다

 

부리부리 형형한 눈

계속 떠들고 웃는다

 

짧은 감색(紺色) 치마

감색 블라우스에 넥타이

재킷, 맨 종아리

 

이 봄날 저녁의 전철은

헌화가(獻花歌)의 노인 같은

절벽.

 

김영승, 화창, 세계사, 2008년 초판 2쇄. 136-137쪽.

 

세계 최장의 노동에 시달리는 우리나라 학생들, 그럼에도 이들이 발산하는 밝은 웃음, 명랑한 기운, 그 어려움을 이겨내는 젊음의 풋풋한 모습.

 

이랬으면 좋겠다. 정말로 이렇게 학생들을 보며 절벽 위에 있는 꽃이라도 따다가 주고 싶은 마음을 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 아이들이 웃음을 잃지 않게 해주어야 하는데...

 

세상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그런 존재들이 그 아름다움을 잃어가지 않도록 해주어야 하는 것은 헌화가의 노인처럼 꽃을 따다 바치는 우리들이어야 하지 않을까.

 

오로지 대학만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학생들이 아니라, 제 삶을 충분히 누리는 그런 학생들이 될 수 있도록 사회적 조건을 만들 줄 아는 노인, 그것이 바로 노인들이 바치는 꽃이 아닐까.

 

우리가 아직 그런 사회를 만들지 못한 것은 절벽이 있기 때문이고, 꽃은 그 절벽 위에 피어 있기 때문인데... 아무도 꽃을 따올 엄두를 내지 못했을 때 자기가 따다 주겠노라고 한 노인처럼, 우리 역시 이런 여고생들을 위하여, 아니 우리 젊은 세대들을 위하여 사회를 바꿔야 하지 않을까.

 

그들이 웃음을 내뿜어 우리 모두를 밝게 만들어주며 지낼 수 있도록.

 

그런 생각을 하게 한 시다. 이 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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