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를 수 있는 말이 하나 있다. 종북좌파.

 

  이 말이면 하는 사람은 우위에 서고, 듣는 사람은 밑에 서서 자기 변명을 하기에 바쁘다.

 

  상대방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데 이 말보다 좋은 말은 없다. 이 말은 우리에게 태풍을 일으킨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더더욱.

 

  그런데 왜 이 말이 이처럼 태풍의 위력을 발휘할까? 분단되어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분단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분단으로 인한 전쟁을 겪었기 때문이다. 전쟁을 겪고 평화협정을 맺지 못하고 휴전협정만 맺었기 때문이다.

 

휴전은 언제는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잠시 전쟁을 쉬고 있을 뿐이니까. 이런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어가야 전쟁이라는 태풍을 면할 수가 있다.

 

남북이 군사적으로 긴장상태에 있고, 해마다 남북 양쪽 모두 대대적인 군사훈련을 하는 상황이고, 젊은이들이 청춘을 군대에서 보내야 하는 상태이니, '종북좌파'라는 말은 상대를 옭아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말이다.

 

남북 경제협력 사업도 물 건너가고, 이제는 군사적 긴장이 점점 더 고조되어 가고 있는 상황인데, 신혜정 시집 "라면의 정치학"을 읽다가 이 시를 발견하고 시인의 표현에 감탄하고 말았다.

 

'평화의 눈'이라는 시인데, 이 시를 읽으며 자꾸만 '태풍의 눈'이라고 읽게 되었으니 말이다. 태풍의 눈, 잠시 평화로운 상태지만 곧 태풍에 휩싸이게 되는 현실...

 

태풍의 눈에 들었다고 태풍이 물러갔다고 안심하면 안 되는데... 우리나라 용산에 있는 미군기지를 이 태풍의 눈에 비유해 '평화의 눈'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태풍의 눈이 진정한 평화가 아니듯이 평화의 눈 역시 진정한 평화가 아니다. 일시적인 멈춤 상태에 불과하다.

 

이 일시적인 멈춤을 영원한 평화로 만드는 일은 바로 태풍이 지나가게 해야 한다. 태풍이 사라지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영원한 평화가 온다. 그게 되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태풍의 눈'에 머물뿐이다.

 

시를 보자.

 

평화의 눈 1

 

살상무기를 제조하는 자들이

평화를 이야기하는 이상한 시대

 

용산 미군기지 안을 보면 이해가 간다

 

그곳은 평화의 눈

 

모든 평화의 중심에 핀 꽃

 

이국의 개들이 사람과 산책을 즐기고

중성화 수술을 마친 고양이들이 한가롭게

창가의 볕을 즐기는 곳

 

사람들에겐 주님의 평화가 임재하는 곳

 

광장의 촛불시위를

뉴욕타임즈에서 읽으며

먼 나라 이야기하듯

하품처럼 넘기는 곳

 

그곳에,

평화가 있다

 

신혜정, 라면의 정치학, 북인, 2009년. 18-19쪽.   

 

그곳에 있는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다. 그것은 일시적일 뿐이다. 마치 태풍의 눈처럼. 평화는 미군에게서 오지 않는다. 신동엽 시인의 시 '봄은'에서 말한 것처럼 평화는, 통일은 바로 우리에게서 와야 한다.

 

남과 북이 서로를 믿고 협력하고 평화를 만들어갈 때 진정한 평화가 오고, 진정한 평화가 와야 '종북좌파'란 말이 전가의 보도가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역시 일시적인 평화의 눈에 머물지 않을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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