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잡고 더불어 - 신영복과의 대화 만남, 신영복의 말과 글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7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손잡고 더불어'

 

신영복 선생의 글씨로 표제가 장식되어 있다. 마치 서로가 서로의 손을 꼭 잡고 함께 가는 모습, 글자들이 함께 모여 있어 신영복 선생이 평소에 말한대로 나무들이 서로 모여 숲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

 

그렇게 우리도 서로서로 손을 잡고 더불어 가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표제다. 또 하나 이 표제를 보면서 이 대담에서 신영복 선생이 말했던, 이탈리아 사상가 그람시의 진지전이라는 개념까지 떠올리게 됐다.

 

글자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마치 단단한 진지를 구축하고 있는 모습과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 어려울 때는 자신들을 지키는 참호 역할을 해야 하고, 실천할 때는 발판이 되는 진지... 이렇게 이 글자들은 서로 모여 우리를 지켜주기도 하고 밖으로 나가야 할 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기도 한다.

 

숲과 진지는 다른 말이 아니라 함께 쓰일 수 있는 말임을... 이 대담집을 통해 느끼게 되었는데...

 

신영복 선생은 대학에서 정년퇴임한 다음에도 강연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만났다. 그런 결과를 책으로 엮어 내기도 했고. 그러나 대담은 강연과는 좀 다르다.

 

강연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일방적으로 전달한 다음에, 여러 질문을 받기도 하지만, 대체로 준비된 내용에 따라 진행된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대담은 질문과 답변으로 이루어지고, 질문이 누구처럼 미리 다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다른 질문이 나오기에 대담하는 사람의 장식되지 않은 모습, 꾸미지 않은 사상을 알 수 있다.

 

이 책에는 10개의 대담이 시간 순서대로 실려 있다. 갓 출옥해서부터 돌아가시기 직전까지의 대담을 모아놓은 것이다. 따라서 시대의 변화에 따라 대담 내용이 달라짐을 느낄 수도 있고, 사회경제적 문제부터 국제정세까지 신영복 선생의 생각을 다양하게 접할 수가 있다.

 

그런데도 이 10가지 대담을 관통하는 내용이 있다. 그것은 바로 존재론에서 '관계론'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과 냉철한 이성보다는 '따뜻한 가슴'이 더 필요한 세상이라는 것, 대학은 직업을 위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할 인문학적 감성을 키우는 공간이라는 것 등등.

 

'관계론'을 잘 나타내는 말이 바로 이 책의 표제가 아닐까 싶다. "손잡고 더불어" 이것은 혼자만이 존재할 수 없다는, 나는 바로 내가 관계 맺는 사람들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다는 그런 것.

 

그렇기 때문에 이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나를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존재를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 나와 다른 존재의 차이를 인식하고 그것을 인정하고, 거기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 물론 같아져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다른 것을 무작정 인정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차이란 다름을 알아차리는 것, 다름을 알아차린다면 바로 그 자리에서 출발할 수가 있다. 그냥 다르다가 아니라, 다르구나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로 나아간다는 것. 다른 존재를 자신에게 맞추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름에서 내가 출발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관계론'의 핵심이다.   

 

이런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냉철한 이성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따뜻한 가슴"이 필요하다. 계속 나오는 말이지만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지난한 여행이 필요한 것이다. 가슴에 도착하는 여행이 이루어졌을 때 관계를 잘 맺을 수 있다. 그렇다고 여기서 끝나면 안 된다.

 

신영복 선생은 또다른 여행을 이야기하고 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 다음에는 다시 가슴에서 발로의 여행을 해야 한다고.

 

따스한 가슴을 지니고 발로 걷는 실천을 해야 한다고... 발로의 여행, 그것은 바로 다른 존재와 '손잡고 더불어' 가는 여행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한다.

 

이런 것을 깨달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공간이 바로 대학 아니던가. 지금은 직업 양성소 수준으로 떨어져 있지만, 이렇게 어려운 시대일수록 대학은 바로 신영복 선생이 말한 이런 역할을 해야 한다.

 

미래 세대들이 살아갈 시대는 바로 지금이 아니라 10년 뒤 20년 뒤 아니 30-40년 뒤이기 때문이다. 당장 필요한 직업 기술이 아닌 사회를 함께 살아갈 철학, 그런 마음을 지니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대학이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만 그 사회가 '손잡고 더불어' 가는 함께 사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한다. 10개의 대담들이 거의 이런 내용을 반복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신영복 선생이 돌아가신 지 이제 한 해가 지났다. 그럼에도 신영복 선생의 말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더불어 사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할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한 대담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