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도시들에서 책읽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여러 도시에서 책 몇 권을 정해 돌아가며 읽기를 권장하고 있는데...

 

  이 시집은 부산에서 선정한 책이다. 이 시집을 읽고 소감을 쓰고, 돌려가며 읽으라고 했다. 2015년에.

 

  부산에서 추진한 책이라고 꼭 부산 사람들만 읽으라는 것은 아니니까. 어쩌다 이 책이 중고서점을 통해서 내 손에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이 책을 부산에서 왜 선정했는지 대략 알만하다. 시라는 특성도 있지만, 이 시집에는 부산이 참 많이도 등장한다.

 

  부산의 정서를, 모습을, 문화를 시를 통해 표현해내고 있으니, 다른 마을에 사는 사람들보단 부산 사람들이 이 시들을 읽었을 때 좀더 공감하는 면이 많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꼭 부산 사람들에게만 친숙한 시들은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많다. 누구나 읽으며 공감할 수 있는 시들이 많다는 뜻인데.

 

제목이 된 '금정산을 보낸다'가 부산에 있는 산인 금정산을 중동으로 떠나는 아들에게 안기는 그런 내용의 시. 조선시대 병자호란이 끝나고 청나라로 끌려가는 김상헌이 읊었다는 시조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처럼 머나 먼 타국으로 가는 사람에게 고국을 기억할 수 있는 존재는 소중하다.

 

그 시조에서는 두고 떠나는데, 그래서 다시 볼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는데, 중동으로 떠나는 아들에게 금정산을 함께 보내는 것은 고국을 언제든지 곁에 두고 있다는 것, 잊을 수 없다는 것, 꼭 다시 만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비록 몸은 떠나 있더라도 마음은 늘 고국과 함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절절한 마음이 녹아들어가 있는 시 '금정산을 보낸다'를 제목으로 삼았으니 부산 독서 릴레이 책으로도 적당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 시집에는 바삐 살아가는 제 시간을 잊은, 또는 잃은 현대인의 모습을 나타낸 시가 있다. 그렇다. 우리는 미하엘 엔데가 쓴 "모모"에 나오는 회색신사들에게 시간을 빼앗기고 사는지도 모른다.

 

그냥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리는 사람들, 달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 남들보다 더 빨리 달리지 못하고 그냥 달리기만 하면 그것은 제자리라는 그런 역설. (거울나라의 엘리스에 나오는 상황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면 과연 행복할까. 어떨 때는 멈춰야 하지 않을까.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책도 있던데.

 

시인은 이런 상황, 이런 모습을 시계로 표현하고 있다. 그것도 앞으로 나아간다는 '진화'에 빗대어서. 그것이 '진화'라면 곧 멸망이다.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시다.

 

한 해 이제 시작이다. 바쁘게 뛰기 보다는 좀더 천천히 걸을 수 있는 한 해, 걷다가 쉴 수 있으면 쉬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시간의 진화

 

옛날 시계 분침보다 시침이 더 길었다는 사실

분 따위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사실

분침 따위 무시해도 좋은 잔챙이였다는 사실

그런 분침이 지금 시침을 졸병으로 거느리고 있다는 사실

그렇게 사람들이 야금야금 시간을 다 파먹었다는 사실

이대로 가다간 초침이 제일 길어질 날 올 거라는 사실

그 아래 조금 작은 분침이 돌고

그 아래 시침은 떨어져 나와

서랍 속 다이어리가 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

 

최영철, 금정산을 보냈다. 산지니. 2015년. 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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