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서정시가 없는 시대이긴 하지만 제목을 보고 고른 시집이었는데.... '흑백'이라. 세상이 총연색으로, 고화질로 가고 있는 이 시대에 흑백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으면 이 세상을 다르게 보고 있다는 것 아닐까 하고 고른 시집.
그런데 첫장부터 사람을 당혹하게 한다.
'행운과 용서를 빈다'
시인의 말이다. '행운과 용서를 빈다'고... 이거, 원 이 시집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겠구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적어도 내게 행운이란 시를 제대로 읽어내는 것일테고, 용서란 시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시집 속에서 헤맸을테니, 그렇게 만든 시인을 용서하라는 말 아니겠는가.
짐작이 맞았다. 첫시부터 이게 뭐야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논리가 파괴되었다. 논리로 접근했다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표현들이다. 시집의 뒤에 있는 해설을 보아도 명료하게 이해되지 않는다.
시인은 온갖 비밀을 시 속에 풀어놓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찾으라고 한다. 못 찾으면 말고 식이다. 이런...
읽으며 이상을 떠올렸다. 이거야 원, 이해를 포기해야지 하면서... 이상이 어느 소설에서 이렇게 말했다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분명 그는 소설 속에서... '비밀이 없는 것은 재산이 없는 것보다 더 가난하다'는 식의 말을 했다. (정확한 구절은 그의 소설 '실화'에 나온다고 하니 찾아볼 것)
이거야 원. 이렇게 술래잡기를 해야 하나? 인내심을 가지고 시집을 끝까지 읽어 본다. 큰 인내심이 필요하다. 아니면 오기가. 그러다 시집의 맨 뒤에 있는 글을 보게 된다.
'유치원이나 정신병원 같은 곳에 가면 글자놀이니 역할놀이니 하는 게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그걸 하고 있다. 역할놀이에는 별 재능이 없고 글자놀이는 나름대로 열심히 해왔다. 앞으로도 글자놀이는 계속할 생각이다. 완전한 착각 속에 있고 싶다. 그렇게 될 것이다.'
글자놀이? 이거 완전히 이상이네. 에고. 더이상 시인의 놀이에 동참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대신, 내 마음대로 놀이를 한다. 이 시집을 가지고.
지금 우리 사회는 역할놀이에 신물이 난 상태. 세상에 정치가 무슨 연극인 줄 아나? 대통령 역할놀이까지 하고 있는 사회니.
여기다 온갖 말놀이들은 어떤가. 말이 이렇게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줄은 몰랐다. 요즘 사회에서 그것도 좀 있다고 하는 것들이 쓰는 언어는 우리 사전을 거부한다. 자기들이 사전을 만든다. 완전한 글자놀이다.
아마도 시인의 글자놀이는 정치인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해당될테다. 그럼에도 언어는 명확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는 내게는, 이런 시 반갑지 않다. 마음에 들어오기 전에 먼저 머리에서 걸러지고 마는 시들이 아니던가.
사회에서 벌어지는 글자놀이, 역할놀이에 신물이 났는데... 시인마저 그런 놀이를 한다고 하니... 참...
그럼에도 시인이 보여주는 세상의 모습이 시 속에 담겨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의 글자놀이는 사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언어라는 존재를 벗어날 수도 없고.
뭐,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시집이다. 참고로 시집의 제목이 된 시 하나 소개한다. 읽어보고, 이 글자놀이에서 무엇을 찾아낼지는 읽는 사람들 자유다. 놀이에는 정답이 없다. 놀이는 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니까.
흑백 1
도도한 입술이 흐리게 젖는다
섬망을 노래하는 어리석은 벌레들이
검고 프르게 간격을 지우며 움직인다
시곗바늘 소리에 맞추어
사랑한다고 함께 죽자고
숨이 벅차다고 그늘이 휜다고
이준규, 흑백, 문학과지성사, 2006년. 9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