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와 사도 - 위대한 군주와 잔혹한 아버지 사이, 탕평의 역설을 말한다
김수지 지음 / 인문서원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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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이 흥미진진하게 읽힐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 책이다. 사실들만을 나열하지 않고 재구성해서 소설적 표현들도 나오기 때문에 이런 효과를 냈다는 생각이 들지만, 철저히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음은 명확하다.

 

이 책에 나오는 사료들은 조선왕조실록이나 그밖의 다른 자료들에서 인용한 것이고, 그 자료들을 좀더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소설적 표현을 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역사책이지 역사소설이 아니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사실, 또는 관점에 대해 다른 관점을 제시해주고 있는 역사책인데... 영조는 조선후기를 중흥기로 이끈 대표적인 성군이고, 사도는 그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찌질한 왕자였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아비가 아들을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은 반대의 관점을 제시한다. 그것도 역사적 사료들을 통해서.

 

영조의 대표적인 업적으로 탕평책을 든다. 그는 당쟁을 해소하기 위해 힘쓴 왕이고, 사색당파를 혁파하기 위해 각 당파를 고루 등용하는 탕평책을 썼다고...

 

그가 탕평책을 쓴 것은 맞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왜 탕평책을 썼을까? 당쟁을 해소하기 위해서? 아니다. 바로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최고 권력을 놓고 영조와 신하들이 경쟁을 했다는 얘기다 된다. 왕과 신하의 경쟁, 왕권과 신권의 대립은 조선초부터 끊임없이 있어 왔다.

 

전제 왕권을 신하들이 꾸준히 견제해 왔고, 또 그런 장치들이 있어왔음도 사실이고, 이런 상호견제가 조선을 좀더 튼실한 나라로 만들어 와야 했다.

 

그런데 영조는 자신의 이복 형인 경종을 독살했다는 의심을 받으며 왕이 되었다. 왕권에 결점이 생긴 것이다. 전제 왕권을 휘두르기에 약점이 생긴 것이다. 이 약점으로 인해 전국에서 반란도 많이 일어난다. 그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하는데, 이 약점을 덮기 위해 영조가 들고 나온 정책이 바로 탕평이라는 것.

 

탕평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왕이 되게 해준 노론의 힘을 약화시키고, 자신에게 반대하는 소론을 중용함으로써 소론들의 반란을 소론이 막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탕평의 목적이었다는 것.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법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어차피 노론은 집토끼니까 내버려둬서 괜찮으니 우선 산토끼인 소론부터 잡아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결과 나온 정책이라고 할까.

 

결국 소론은 영조에 의해 궤멸된다. 영조에 반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 이때에야 영조의 왕권은 강화된다. 실질적인 제왕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아주 긴 세월 동안 영조는 권력을 위해서 투쟁한다. 30여 년이나.

 

왕권강화의 확립. 목표는 달성되었다. 그러면 다음 목표는? 당연히 자기의 아들에게 이 왕권을 잘 물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아니다. 그 권한을 영원히 누리는 것, 이것이 목표다.

 

절대권력은 부패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영조 역시 마찬가지다. 왕이 된 지 30년이 넘어서야 그는 절대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다. 그런데 강력한 걸림돌이 나타났다. 아니 이미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아들. 사도.

 

절대권력을 놓고 부자지간에 일어난 싸움은 역사에 수없이 등장한다. 훌륭한 임금이라고 할 수 있는 영조 역시 권력의 맛에서 벗어나기는 힘들었나 보다.

 

왕권 강화 차원에서 소론을 세자에게 붙여주었으나 나중에 소론은 궤멸되고, 노론으로부터 끊임없이 소론을 멸족시키라는 압력을 받는 세자에게 어떤 도움도 주지 않는 영조.

 

노론 강경파들과 아버지 영조 사이에 끼어 어떤 정책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사도. 그런데 왕권이 강화되자 영조는 자신이 더 권력을 오래 누리고 싶어한다.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마음, 적어도 일찍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미 아들은 대리청정을 하고 장성해 있다. 이제는 아들도 권력에 위협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그가 한 일은 결국 아들을 죽이는 것.

 

여기에 노론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세자, 노론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도 또 권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도 세자를 제거해야만 한다. 영조와 노론들의 이해득실이 맞아떨어지는 순간. 세자는 살 길이 없다. 그렇게 세자는 사도가 된다.

 

결국 탕평책의 결과로 아들은 사도세자는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 이 책은 그렇게 당쟁과 왕권의 대립에서 사도세자의 죽음을 이끌어 낸다. 우리가 칭송하는 탕평책이 나라를 위한다기보다는 영조 개인의 권력을 강화하는 정책이었다는 주장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근거를 살펴보고 있는 것이다.

 

읽으면서 역시 절대권력은 부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그래서 그 권력을 적절히 견제할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민주주의 국가라고 자처하는 지금도 절대권력을 행사하면서 너무도 부패해 썩은 내를 풀풀 풍기는 집단과 개인이 많은데, 그때야 뭐.

 

하나 더 당쟁이 지금의 정당정치의 원조라고 보면 너무도 비참하다. 당쟁이 인민을 위해서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민을 위해 당쟁이 펼쳐졌다면 당쟁에서 졌다고 목숨을 잃는 일은 없었을텐데, 이익이 걸려 있으니 진 쪽은 죽음, 또 집안의 망함으로 갈 수밖에 없었으니, 앞에서는 도덕, 윤리, 명분 등을 내세웠지만 결국은 자신들의 이익, 생명을 잃지 않기 위한 치열한 싸움이었다는 것.

 

지금 정당정치는? 이런 당쟁을 벗어나야 할텐데... 하는 생각.

 

영조는 왕권을 강화했지만, 그것은 왕권 강화가 아니라 자신의 권리 강화에 불과했다. 제 아들을 사지로 몰아넣어야 했던 왕권, 그리고 자신의 손자인 정조가 자신처럼 처음부터 시작하게 만든 왕권.

 

조선이 결국 패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조선 후기 중흥의 기회를 만들었던 영조와 정조 역시 인민보다는 자신들의 권력 유지에 더 중점을 두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런 사람들도 없는 그 이후는 쇠망의 길로 빠르게 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사도와 영조, 아니 영조와 탕평책... 정당정치와 붕당정치, 정쟁과 당쟁.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책인데...

 

이 책에도 나오는 말이고 요즘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말이지만 군주는 배이고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뒤집을 수도 있다는 것.

 

결국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 나머지는 국민들로부터 나온 권력을 행사할 권한만을 위임받았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게 해야 하는 것.

 

그러면 이런 당쟁, 정쟁이 진정한 탕평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읽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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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ulp 2017-01-12 0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결국 영, 정조 모두 한계를 지닌 정치인 아닌가 싶습니다. 학창 시절엔 그런 사실을 덮고 개혁군주라고만 외웠고. 영조는 왕권강화를 위해 결국 아들까지 죽이기까지 했으니. 이들이 노력한 건 사실이지만 그들 사후 세도정치로 넘어간 것을 보면 한계는 분명해보입니다.

kinye91 2017-01-12 09:50   좋아요 1 | URL
영,정조의 한계가 시대적 한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제왕권시대에 지닐 수밖에 없는 한계. 그들이 개혁군주라는 것은 그래도 백성의 소리를 들으려고 했다는데 있지 않나 싶고요. 물론 자신들의 왕권강화를 위해 정치를 했다는 것도 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