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없는 그 자리
이혜경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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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사전에 없는 낱말이 자꾸 머리 속에 맴돌았다. "비끄러지다" 이런 말이 있을 리가 없는데도 이 말이 떠오르는 이유는 이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에 나오는 인물들이 모두 비틀리고 미끄러지는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엇갈린 관계를 맺고 있다. 엇갈린다기보다는 일방적인, 자신의 처지에서 바라보는 관계를 추구하기에 결코 맞물릴 수 없는 관계로 끝나고 마는 그런 만남들을 지속한다.

 

첫소설에서부터 이 점이 드러난다. 첫소설은 이 소설집의 제목이기도 한데, '너 없는 그 자리'라는 소설, 여성 화자의 편지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얼핏 보면 사랑하는 사람이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있을 때 느끼는 애틋한 감정들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읽어보면 그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감정의 전달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남성에 대한 여성의 일방적인 감정, 이런 일방적인 감정은 사랑이 아니다. 그러기에 이 만남은 지속될 수 없다. 남자는 여자에게 해외 근무 파견을 받았다고 거짓말을 하고, 이것을 알게 되는 여자로 소설이 끝난다.

 

그만큼 둘의 관계는 일방적이다. 일방적으로 사랑에 빠지기 때문에 상대의 감정을, 상대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는다. 여기에서는 일방통행만이 있다. 이 소설집에 실린 대부분의 작품들이 그렇다.

 

일방통행. 이것은 소통이 아니다. 소통이 아니기에 제대로 된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이런 관계는 결국 비틀리고 미끌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꾸만 '비끄러지다'라는 말이 생각났는지도 모른다. 이런 말을 만들어내고 싶었는지도.

 

이 소설의 감상을 한 단어로 표현하라면 그렇게 '비끄러지다' 가 된다. 두번째 소설인 '한갓되이 풀잎만'에서도 일방적인 사랑이 나오고 '북촌'에서도 그렇다. 기다림이 주제인 것 같지만, 결국 함께 할 수 없는 관계로 끝나게 된다. 그런 소설들이 '감히 핀 꽃'에서도 '해풍이 솔바람을 만났을 때'에서도 나타난다.

 

좀 대상이 다르기는 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이렇게 비끌어지게 표현한 소설인 '금빛 날개'에서 절정을 이룬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제대로 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는 현대인. 자수성가한 사람이 자식에게 기대하는 것, 자신의 삶을 유지해가는 것, 그러나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 제대로 된 관계를 맺지 못하게 되고, 그것이 결국 자식의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

 

비틀린 관계가 이런 비극을 유발한다는 것을 소설에서는 잘 보여주고 있는데, 그나마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 '검은 강구'다. 물론 토끼 반도라든지 여우 열도, 흑곰, 독수리라는 표현으로 우리나라와 일본, 러시아, 미국을 빗대어서 사할린으로 끌려가 살게 된 우리 민족의 비극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여기서도 관계는 비틀리고 만다.

 

그래도 이 소설에서 아버지가 결국 사할린에 남는 것으로 끝나지만, 이 아버지 역시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니... 소설의 분위기가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 편 한 편의 소설이 모두 이런 어긋나는, 서로 맞물리지 못하는 관계를 드러내주고 있다. 마치 지금 현대인들이 관계를 맺고 있지만, 서로 함께 가는 관계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지내는, 언제든지 따로 갈 수밖에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축제'에서 이런 관계가 어느 정도 회복되는 듯도 하지만, 이 소설에서 남편과 함께 한다는 결말을 찾기는 힘들다. 자신의 과거 속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비록 인도네시아에 가서 그런 단초를 마련하기는 하지만, 완전히 극복했다고는 할 수 없다.

 

자신의 과거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그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올바로 맺지 못하게 한다. 즉, 자기 속에 갇혀서 남을 보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 한없이 이해해 줄 수 있는 남편이라고 해도 함께 하기는 힘들다.

 

'꿈길밖에 길이 없어'에서 주인공이 자살을 하게 되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은 최선을 다하지만, 자신의 능력으로는 가족을 제대로 돌볼 수 없다는 절망, 그 절망 속에서 정신줄을 놓아버리지만 또 하나의 자기 세계에 갇힌 사람으로 인해 현실로 돌아오게 되는 사람.

 

남을 이해해준다는 행위가 남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음을, 이 소설을 통해 역시 비틀리고 미끄러지는 관계를 만날 수 있다.

 

그렇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남들과 함께 살아가지만, 어떨 때는 자기 속에 갇혀 자신의 안경만으로 남을 판단할 때도 있다. 자기만의 안경을 고집하는 것, 그것은 제대로 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게 한다.

 

내 안경이 과연 남을 제대로 보게 했는가? 자신을 남의 위치에 놓아보지 못한 사람, 그런 사람은 결코 온전한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이 소설집의 주인공들처럼 잘못된 관계로 파국에 이를 뿐이다.

 

그러니 이 소설집은 이런 일방통행적인 관점에서 만남을 이루는 것이 어떻게 관계를 파탄내는가를 생각하게 해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한편의 단편들 속에서 답답함을 느끼며 읽지만, 어쩌면 이것이 지금 우리 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나는 나만의 세계에 갇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며... 나를 되돌아보게 만든 소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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