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꼴이나 세상꼴이나'라는 자조섞인 말이 튀어나오는 요즘이다. 세상이 어려울 수록 강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끌린다던데...

 

  자기들이 그렇게 될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들이 마치 무엇인가를 해줄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던데...

 

  1차대전 패망이후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통받던 독일 사람들이 히틀러를 선택했듯이 - 우리는 히틀러가 합법적인 선거과정을 통해 정권을 장악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 우리 역시 선거를 통해서 최선도 아니고, 차악도 아닌 최악을 선택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번 미국 대선 결과를 보면서 미국 사람들도 참 살기 어렵구나, 그들이 그동안 경제적 부를 누리면서 살다가 이제는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생활을 하는구나.

 

그러니까 그렇게 앞뒤 안 가리고 직설적으로 말을 하는 트럼프를 선택했지. 마치 트럼프가 자신들을 경제적 위기에서 구해줄 수 있는 것처럼. 몇 해 전에 우리도 이와 비슷한 선택을 한 적이 있었지, 하지만 결과는?

 

살기 힘들기 때문에 나와 너를 명확하게 가르고, 너는 나의 발전을 가로막는 존재이니 나에게서 떨어져 나가야 한다는 생각, 그런 주장, 그리고 그런 행동들. 결국 떨어져 나가는 것은 '너'가 아니고 '나'일텐데... 그것을 이미 히틀러라는 인물을 통해서 경험을 했는데...

 

누군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책에서 읽었는데... 인간은 역사에서 배우는 것이 없다는 것만은 확실하다는 그런 말.

 

그러니, 지금 세상에 정을 둘 데가 없다.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모두 썩어 문드러지기 일보 직전이다. 아니 벌써 썩어서 냄새가 나기 시작한 지도 오래되었을지도 모른다.

 

최순실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가 얼마나 더럽혀졌는가. 아니 그 이름을 인해 우리나라가 얼마나 썩었는지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고 해야 한다.

 

경제, 정치, 문화, 의료 분야까지 도대체 썩지 않은 부분이 없으니... 옛날 재래식 화장실에 가면 처음에는 화장실 냄새에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끼지만 조금 지나면 차차 그 냄새에 익숙해지고 말듯이, 우리는 '김영란 법'이라는 것을 출범시킨 이 때, 그동안 이렇게 부패에 익숙해져 있었나 싶게 우리 사회 곳곳에서 악취가 진동하는 꼴을 목도하고 있으니...

 

이렇게 정을 붙일 데가 없는데... 그런데도 정을 붙여야 하는데,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함으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아내야 함으로.

 

허수경의 시집을 읽다가 시인의 이 마음에 요즘의 현실과 겹쳐 공감하고 말았다. 세상에 정들 게 없어서 병하고 정들다니.

 

정든 병

 

  이 세상 정들 것 없어 병에 정듭니다

  가엾은 등불 마음의 살들은 저리도 여려 나 그 살을 세상의 접면에 대고 몸이 상합니다

  몸이 상할 때 마음은 저 혼자 버려지고 버려진 마음이 너무 많아 이 세상 모든 길들은 위독합니다 위독한 길을 따라 속수무책의 몸이여 버려진 마음들이 켜놓은 세상의 등불은 아프고 대책없습니다 정든 병이 켜놓은 등불의 세상은 어둑어둑 대책없습니다

 

허수경, 혼자 가는 먼 집, 문학과지성사. 2001년 초판 14쇄. 17쪽

 

지금이 이렇다면 이건 참 힘든 일이다. 우리가 가는 길들이 모두 위독하다. 이 위독한 상황, 벗어나야 한다. 위독하기에 희망을 품을 수 있다.

 

그런데 그 희망은 '끝내 희망은 먼 새처럼 꾸벅이며 / 어디 먼데를 저 먼저 가고 있구나' (불우한 악기 6연. 이 책 13쪽)라고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지금 내 곁에 없다. 내 곁에 있다면 희망이 아니다. 그래서 더욱 절망한다. 더욱 병든다.

 

그렇다고 이렇게 절망 속에서만 헤매서야 되겠는가. 시인이 보여주는 절망은 곧 희망을 보고 나아가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어둠 속에서는 작은 불빛도 길을 인도해 줄 수 있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정든 병이 켜 놓은 등불의 세상'이 아니라 그런 병까지도 품고 나아가도록 비춰주는 촛불의 세상을 살아갈테니까.

 

절망보다 사악한 것은 없다고, 시인이 노래한 이 병 속에서, 이 절망 속에서, 우리 앞에 있는 희망을 쫓아 우리는 가야 한다. 희망은 그래서 희망인 것이다. 계속 앞에서 우리를 부르고 있으니 말이다. 그 희망을 놓치지 말자. 희망에 눈 감지 말자.

 

정든 병에서 이제는 희망의 촛불을 보고 함께 있으면서 나아가야 할 때, 이 절망의 시대에 우리가 할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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