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날 인연이 있는 시집이다. 헌책방에 가고 싶단 생각에 아무 생각없이 길을 나섰는데... 그 헌책방에 도착했을 때 이런, 문이 닫혀 있었다.

 

  뭐야, 휴일이 아닐텐데...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 대체로 휴일은 일요일이거나, 월요일인 경우가 많은데... 목요일이 휴일이라니.

 

  굳게 닫힌 문에는 정기휴일 매주 목요일이라고 되어 있다. 이런 일이... 그렇다고 헌책방이 이 집만이 아니니, 옆 헌책방으로 발길을 돌려 책을 둘러본다.

 

  책을 둘러보지만, 눈에 띠는 책이 별로 없다. 책들의 배치가 눈에 익지가 않아서일테지만, 낯설다. 그러니 책들이 눈에 들어올 리가. 오늘은 공쳤구나, 하고 나와 커피 한 잔을 하자고 커피집에 들어가 커피를 시키고 들고 나오는 순간, 아, 그 헌책방의 문을 주인이 열고 있다.

 

들어가서 책 봐도 돼요 하니, 된단다. 본래는 쉬어야 하는데, 밀린 일이 있어서, 정리할 것이 있어서 나왔다고 한다. 이렇게 책과 나는 인연의 끈이 닿는다.

 

너무 오래 있으면 책정리하는데 방해가 될 것 같아 시집 서가를 빠르게 죽 훑어보는데, 김명수 시집이 눈에 띤다. 김명수 시인, 나에게는 오래 전부터 '하급만 교과서'로 각인되어 있는 시인이다. 특히 요번 정권에서 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만드는 바람에, 우리 국민을 무슨 하급반 학생 취급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좋지 않았던 터에, 김명수 시인의 시집이 헌책방에 있으니 안 살 이유가 없다.

 

우리는 이미 하급반을 졸업하고 상급반도 뛰어넘어 학문을 한다는 대학 수준의 공부를 전국민이 하고 있는 터에, 무슨 국정화... 정말, 김명수의 시 '하급반 교과서'에 나오는 대로 국민들 역시 정권이 만든 교과서를 그대로 따라 읽게 하려고 하는 걸까.

 

이미 대학 수준의 교양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런 사람들이 어른이 되어 사회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데, 교육 수준을 - 중,고등학생은 대학 수준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미 사회의 수준이 그러한데... 무슨... - 이렇게 낮추어도 되나 하는 답답한 마음.

 

이 시집은 1991년에 나온 시집이다. 그러니 지금 상황과 많이 달라졌어야 하는데... 그런데... 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현실. 씁쓸하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시가 참으로 아름다운 세상, 참다운 사람 세상의 작은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은 지워지지 않는다. (145쪽)

 

그래서 시는 시대가 흘러도 사람들이 지닌 보편적인 마음에 호소하기 때문에 계속 읽히고 낭송되는지도 모른다. 그런 시가 좋은 시겠지... 요즘은 낭송하기 힘든 시도 많지만, 낭송이 안 되더라도 꾸준히 읽히는 시는 좋은 시다. 여기에 시간이 흘렀어도 사람의 정신을 깨우치는, 생각하게 만드는 시가 좋은 시다.

 

이 시집에서 '수유리에서 온 편지'를 시작으로 '개미'라는 시를 생각하고, 이어서 '불씨'라는 시로 지금 우리가 지녀야 할 자세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수유리에서 온 편지

 

(앞 부분 생략)

 

답해주세요.

여기 차가운 땅, 땅 밑 세상으로

그곳, 우리 뜨겁게 사랑하던 조국의

새 소식 전해주세요.

조국은 이제 정녕 자유로운지?

우리가 뿌린 씨앗 싹이 텄는지?

불의로써 백성을 다스리는 자

권력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자

내 조국 내 땅의 어진 백성들을

송두리째 짓밟고 옭졸라 매어

감히 우두머리라 으스대는 자

이제 그자들 다시 없는지

밀실에서 대로에서 이름도 없이

자유와 정의와 민주의 이름 아래

짓밟혀 비틀려 목 졸려 쓰러지는

피지도 못하고 봉우리째 시드는

우리들 아름다운 청춘들은 없는지

 

(뒷부분 생략)

 

김명수, 침엽수 지대, 창작과비평사, 1991년. 89-90쪽에서

 

답을 할 수가 있나? 과연 우리는 이 물음에 제대로 답할 수 있나? 아직도 우리는 이 시에서 말하는 화자들의 바람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어떤 사람은 신문과 뉴스를 보지 않아야 오래 살 거라고 했다. 오래 살기 위해서 신문을 끊고, 뉴스를 보지 않는다는 사람... 왜냐고? 안 좋은, 속 터지는 일만 나오니까. 아직도 권력을 쥔 자들이 호령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법이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더 자유와 권리를 구속당하기도 하니까.

 

시에서 말하고 있는 '불의로써 백성을 다스리는 자 / 권력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자 / 내 조국 내 땅의 어진 백성들을 / 송두리째 짓밟고 옭졸라 매어 / 감히 우두머리라 으스대는 자' 들이 없다고 어찌 말할 수 있는가. 뉴스를 보면, 신문을 읽으면 이들이 늘 전면에 나오는데... 아무런 잘못도 없다는 듯이, 여전히 자신들이 옳다는 듯이.

 

그러니 '땅의 어진 백성들'은 힘들게 살 수밖에 없다. 살기 위해 아등바등대지만, 더욱 말라갈 뿐이다. 더욱 쪼들려 갈 뿐이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다른 곳을 바라볼 힘조차 없게 된다.

 

'저녁이 있는 삶' 꿈만 같은 얘기다. 저녁을 함께 먹을 시간도 없다. 각자 살기 바빠서. 그러다 나이들면... 결국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삶을 마감해 갈 뿐이다. 그것이 바로 이 '땅의 어진 백성들'이 지금도 겪고 있는 일이다. 

 

이 시집에 나온 시 '개미'에 나오는 모습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지금 모습이기도 하다. 이 시가 나온 지가 15년이 지나가는데도.

 

     개미

 

개미는 허리를 졸라맨다

개미는 몸통도 졸라맨다

개미는 심지어 모가지도 졸라맨다

나는 네가 네 몸뚱이보다 세 배나 큰 먹이를

끌고 나르는 것을 여름언덕에서 본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네가 네 식구들과 한가롭게 둘러앉아

저녁식탁에서 저녁을 먹는 것을 본 적 없다.

너의 어두컴컴한 굴속에는 누가 사나?

햇볕도 안 쬐 허옇게 살이 찐 여왕개미가 사나?

 

김명수, 침엽수 지대, 창작과비평사, 1991년. 10쪽

 

이 시를 읽는 순간, 어이구 하는 한탄 소리가 절로 나왔다. 지금 우리는 바로 이 개미처럼 살고 있지 않나. 일에 허덕거리며 평생을 살지만... '식구들과 한가롭게 둘러앉아 / 저녁식탁에서 저녁을 먹'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지 않나...

 

그런데, 이런 개미들과 달리 '허옇게 살이 찐 여왕개미'들이 얼마나 많나... 그들이 바로 신문과 뉴스에 자신들의 얼굴과 이름을 그리고 행적을 드러내고 있지 않나. 부끄럼도 없이, 당당하게, 당연하다는 듯이. (그러면 안 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해야 하는데...)

 

이런 삶, 벗어나야 한다. 언제까지 이렇게 움츠리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나. '어진 백성들'이 물이라면, 고요하고 잔잔하게 흐르던 물이라도 더이상 견딜 수 없을 때는 배를 엎어버릴 만한 힘을 발휘한다. 그 힘이 지금은 숨어 있을 뿐이다. 그러니, 이 시 '불씨' 명심할지어다.

 

  불씨

 

아궁이 속에

불꽃이 사위면

할매는 남아 있는 잉걸불을

재로 묻었다.

 

차가운 강바람이 문풍지를 찢어대던 밤이 가고

밤새 먼산에서 울던 늑대들의 울음도 그쳐

새벽해가 약산 너머 솟아오르면

할매는 부엌에서 아궁이의 재를 헤쳐

잉걸불을 꺼내

가랑잎에 넣어 불어

불을 일궜다.

 

오늘은 가슴에 불씨를 묻어두는 사람들 많다.

 

김명수, 침엽수 지대, 창작과비평사, 1991년. 85쪽.

 

'오늘은 가슴에 불씨를 묻어두는 사람들 많다'고 했지만, 그것은 오늘'은'이다. 그렇다면 내일은 그 불씨를 꺼내 불을 붙일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도 된다. 불씨는 지금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 가슴 속에 있다. 다만 숨겨두고 있을 뿐.

 

그러니 '여왕개미들'이여, 불씨가 보이지 않는다고 영원히 자신들의 세상이 유지될 거라 착각하지 말지어다. 이렇듯 사람들의 가슴에 잉걸불이 있음을, 또 그 불을 불어 불을 일굴 사람들이 있음을 깨우치고 있는 시인들이 있으니.

 

김명수 시인의 말처럼 시는 참다운 사람 세상이 밑거름이 될 수 있음을, 또 그 시를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들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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