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곡장...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호곡장이라는 글이 있다고 했지. 박지원은 만주의 드넓은 평원을 보고서 한 번 울어볼 만하다고 했다지.
아이들이 처음 태어나 우는 것 역시 무섭고 두려워서가 아니라, 넓은 세상에 나왔다는 기쁨의 울음이라고도 하니, 기쁨과 울음이 꼭 상반되는 개념은 아니다.
모모한 시상식장에서 상을 받는 사람들, 꼭 눈물을 흘리지 않던가. 기쁜 날에 오히려 울음을 터뜨리는 것, 그것이 사람의 감정인지도 모른다.
울음을 슬픔과만 연결지으려는 것은 사람들을 자꾸만 힘듦에 가둬두려는 속셈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고.
그렇게 이 시집의 제목처럼 '좋은 날에 우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으련만, 아직도 우리는 슬픔에 분노에 울음을 터뜨리고 있으니.
제발, 좋은 날에 울음을 터뜨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조재도 시인의 시집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내게 조재도 시인은 시인으로서라기보다는 교사로서 먼저 다가왔다고 해야 하나. 물론 그의 시를 통해서 교사인 그를 만났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아주 오래 전부터 조재도는 나에게 '너희들에게'라는 시로 교사이자 시인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계속 그런 이미지로 나에게 남아 있었다. 이번 시집을 읽으면서도 자꾸만 '너희들에게'를 되뇌이게 되었는데...
시인이 오래 전에 기대했던 그 너희들이, 여전히 핍박받는 삶을 살고 있고, 그래서 좋은 날에 울 수가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으니... 좋은 날에 울 수가 없다는 말은 울 수 있는 좋은 날이 여전히 오지 않았다는 얘기다.
너희들에게를 먼저 보자.
너희들에게
싹수 있는 놈은 아닐지라도
공부 잘 하고 말 잘 듣는 모범생은 아닐지라도
나는 너희들에게 희망을 갖는다
오토바이 훔치다 들켰다는 녀석
오락실 변소에서 담배 피우다 걸렸다는 녀석
술집에서 싸움박질 하다 끌려왔다는 녀석
모두 모두가 더없는 밀알이다.
공부 잘 해 대학 가고 졸업 하면 펜대 굴려
이 나라 이 강산 좀먹어 가는
관료 후보생보다
농사꾼이 될지 운전수가 될지
공사판 벽돌 나르는 노동자가 될지
모르는 너희들에게 희망을 갖는다.
이 시대를 지탱해 가는 모든 힘들이
버려진 사람들, 그 굵은 팔뚝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나는 너희들을 믿는다.
공무원 관리는 되지 못해도
어버이의 기대엔 미치지 못해도
동강난 강산 하나로 이을 힘이 바로 너희들
두 다리 가슴마다 깃들어 있기에
나는 믿는다, 통일의 알갱이로 우뚝우뚝 커가는
건강하고 옹골찬 너희 어깨를.
교육출판 기획실 편, 내 무거운 책가방, 실천문학사. 1988년 3판. 128-129쪽.
그런데 이들이 '건강하고 옹골차'게 커나갈 수가 없게 되었다. 이들은 공부 잘하는, 모범생들에 의해 재판을 받고 교도소에 가거나, 그들이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기득권, 민중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들에 반대하다가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시인이 기대했던 너희들은, 기대하지 않았던 그들에 의해 지금까지도 핍박받고 있다. 자신들의 주장 한 번 내세우기 위해서는 '불법'이라는 소리를 듣고, '손해배상 소송'에 휘말려야 하며, 경찰에 검거되어 검찰에게 기소되고, 판사에게 판결을 받아 수감되는 생활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니 울 수 있는 좋은 날이 어디 있겠는가. 오히려 울분에 차서 울부짖을 수밖에 없는데... 그들의 울음을 닦아줄, 아니 분노에, 억울함에 울지 않게 하고, 기쁨에 즐거움에 울게 해야 하는데...
시집의 제목을 보며, 이 사회는 거꾸로 가고 있으니, 마음이 암담하고, 참담하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면 안 되는데... 정말로 그러면 안 되는데...
우리들 모두가 좋은 날에 울을 수 있어야 하는데...